프런트 오피스 편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룰이 있다.
1. 워크인(미리 예약하지 않은 당일 체크인) 손님은 최대한 거르기.
2. 해외에서 출장오는 분들의 여자 손님에게는 모르는 척 키 내주기.
3. 여자 혼자 투숙하는 손님은 웬만하면 받지 않기.
프런트에서 일한 지 3년, 술 취해서 여자를 데리고 오는 허세 가득한 남자들이나
홍콩에 아내와 아이들이 있음에도 한국에 출장 올 때마다 여자친구와 투숙하는
뱅커들에게 키를 내어주는 일 쯤은 이제 놀랍지 않은 연차가 되었다.
그날도 일상적인 체크아웃과 체크인이 교차하는 그런 하루였다.
오후 8시, 1객실이 아직 체크인을 하지 않고 남아있어 골치가 아팠다.
혹시 당일 노쇼면 예약실이랑 실랑이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예약실장 얼굴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손님께 전화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스크에 서서 예약시스템에 있는 손님 번호를 누르려던 순간 시트러스 향이 훅 날아왔다.
"저기요. 체크인을 좀 하고 싶은데요."
한 여자가 검은색 긴 생머리에 가느다란 실 목걸이를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서있었다.
조금 파인 블라우스를 입은 덕에 여자의 쇄골뼈가 유난히 여려보였다.
여자는 다른 짐 하나 없이 볼록한 검은 숄더백 하나 뿐이었다.
"아,네, 예약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실까요?"
여자는 내 상냥한 웃음에 아무 대답 없이 그저 신분증을 내밀었다.
"확인되셨습니다. 프리미어룸 1박으로 저희 호텔 최고층에서 운영 중인 라운지도 이용 가능하십니다.
혹시 동반 투숙객분은 있으실까요?"
"카드키 주세요."
이런 손님부류를 안다. 돈 내고 왔으니 내가 왕이다, 시키는대로 하라는 식의.
"네, 잠시만요. 여기있습니다. 더 필요하신 부분 있으시면 객실 내 전화기의 '0'번으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그녀는 키를 받자마자 차갑게 돌아서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나는 기분 나쁜 마음에 프런트 오피스로 들어가 그녀가 탄 엘리베이터 CCTV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가 볼 걸 알았다는 것처럼 CCTV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모니터로 눈이 마주친 나는 깜짝 놀라 그만 화면을 꺼버렸다.
뭔가 기분 나쁜 게 옮겨 붙은 느낌에 어깨를 털었다.
오늘 하루 일진이 안 좋았다 생각하며 서둘러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동료 A가 와서 말을 걸었다. "저기, 아까 체크인 받았던 여자 손님 말이야.
'0'번으로 전화가 와서 물건을 장기간 맡아주는 서비스도 하냐고 물어보길래.
전자기기나 식품이 아니면 가능하다고 했는데 뭔가 괜히 찝찝하네.
체크인 할 때 별일 없었지? 여자 혼자인 것 같아서 더 그래."
나도 뭔가 걸리는 느낌은 있으나 입 밖으로 꺼낼만한 단서는 없어서 별일이 없다고만 답변했다.
퇴근하는 내 등 뒤에 대고 동료 A가 다시 한 번 외쳤다.
"혹시 몰라서 라운지도 확인해봤는데, 이 여자 라운지에 한 번도 안왔데."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그 여자가 있는 방부터 확인했다. 아직 체크인 중.
전날 복도 CCTV부터 돌려본 결과, 그녀는 체크인 이후 방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마음 속에 준비하며, 다른 손님들의 체크아웃을 도왔다.
14시, 체크아웃 시간이 3시간이나 지났음에도 그녀는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방에 전화를 여러 차례 걸었으나 연결이 되지 않고, 남겨진 폰 번호는 없는 번호였다.
결국 체크인을 도운 나와 시니어 지배인이 함께 객실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실례합니다. 체크아웃 시간이 지나 연락 드렸으나 부재중이라 방문드렸습니다."
다른 손님들이 있는 층임에도 고요하고 적막하다.
"세번 도어벨 울렸으며, 체크아웃 시간이 지나 객실로 들어가겠습니다."
마스터키로 문을 열고, 들어선 객실에서는 그녀의 시트러스 향이 났다.
객실은 암막 커튼이 쳐있고 불이 꺼져있어 매우 어두웠다.
카드키를 꽂자, 블라인드가 올라가고 커튼이 좌우로 열리며, 방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용한 흔적이 없는 객실.
그리고 침대 한가운데 놓인 유골함과 메모, 그리고 볼록한 검은색 가방.
그녀가 메고 온 것이었다.
'1년 동안 보관 부탁드립니다. 그 뒤에 찾으러 올게요. 꼭'
가방에는 현금으로 1억이 들어있었다.
지배인과 나는 말을 잃은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지배인은 프런트 오피스에 전화를 걸어 우선 그녀가 투숙했던 객실은
다른 손님에게 배정하지 말고 홀드하라고 지시했다.
우리는 관제실로 향했다.
모든 CCTV를 돌려보았다.
그녀는 나가지 않았다. 아니 CCTV에 나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호텔 방은 창문이 없는데 그녀가 유골이 되지 않았다면 도대체 어디로, 왜
기억 했어야했다.
선배들이 명심하라고 했던 암묵적인 룰
3. 여자 혼자 투숙하는 손님은 웬만하면 받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