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송 Jun 18. 2021

물에 빠진 사람 구해놨더니

문득 지인의 안부가 궁금했다.

1년여 만에 안부 메시지를 보내고 반갑게 안부를 주고받았다.

"참, 물어볼 게 있는데.."

라고 시작한 상대방의 말.

요약하자면 뭔가를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자신의 현재 상황설명으로 시작한 장문의 문의와 요청 톡이 연속해서 울렸다.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물론 물어볼 수 있다. 듣고 조언해줄 수 있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하지만 그렇게 끝날 일이 아니었다. 일처리를 요청하는 내용이었고 나의 일상에 숟가락만 하나 더 얻으면 되는 일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내 품을 들여야 하고 또 다른 전혀 다른 누군가를 통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런 부탁을 1년여 만에 내가 먼저 한 대화에서? 자신이 먼저 한 연락도 아닌데 그것도 통화가 아닌 톡으로?


어찌 됐건 나는 빠르게 알아봐 주었고 알맞은 곳으로 소개를 해주었다. 그리고 너무나 간단한

"감사합니다."가 톡으로 왔다.


일의 중요성이나 수고로움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한, 마치 떨어진 물건을 주워줬을 때 정도의 피드백이라고 할까?


그리고서 며칠 후 직접 전화가 왔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제야 통화라도 하려고 걸었나 반가운 마음에 받았더니 다급한 목소리의 내용인즉슨 그다음 진행이 더디게 되고 있단다. 이어서 자신의 TMI 고충을 털어놓는다.

실상 그다음 진행은 내 소관이 아니었다. 처음에 내가 도와준 부분이 어렵지 그 이후는 시스템상 갑자기 오류가 나지 않는 이상 절차에 맞게 진행이 될터였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다.


내가 거기서 스톱하고 굳이 알아봐 주지 않아도 됐지만 소개해준 곳에 연락해보니 지인의 일정이 잘 잡혀있더랬다. 그래서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로 내가 전달받은 세부사항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돌아온 대답은

"네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톡으로.

아, 이번에는 커다란 이모티콘이 함께 있었다.


그 이후 아무 연락도 없었다.

기대하지도 않았고 잘 진행되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그러나 나도 사람이기에 떠올리면 유쾌한 기억은 아니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해 내가 갖고 있던 신뢰도는 하락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위치에 있고 인정받는 직군에 있는 사람이 도리어 이런 행동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만히 있어도 늘 받는 것이 생활화되어 그럴까?


도움을 줄 때의 상황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1. 도움을 청하는 이와 받는 이가 서로 기꺼이 행하는 경우


 무언가를 열심히 구하고 찾다가 어려움을 느끼고 절실할 때에 콕 집어 도움을 받는다면 서로에게 가장 이상적이다. 도움을 주는 입장에서는 소중한 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기쁘고, 받는 이는 절실했던 부분에 도움을 받았기에 고마운 마음이 배가 된다.


2. 도움을 청하는 이가 절실하지는 않을 때


 만약 도움을 원하기는 하나 아직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을 전혀 안 해본 상태라면 엄청난 도움을 받더라도 그것이 실상은 얼마나 값진 것인지 모를 수 있다. 그냥 생각난 대로 물어봤는데 마침 큰 도움을 받았다면 그 자신의 행운이다. 하지만 일의 경중을 자세히 잘 알지는 못하더라도 어린아이가 아니고서야 전혀 모를 수는 없다.


3. 도움을 청하기도 전에 도움을 주려는 경우


 아예 상대가 원하기도 전에 먼저 오지랖을 부릴 때가 있다. 선 경험자로서 좋았던 것을 미리 알려주고 도와주려 하지만 이럴 때에는 백발백중 상대가 충분히 고마워하지 않는다며 섭섭한 마음이 들 수 있다. 주로 부모님이 말씀하시고 자식은 듣기 싫어하는 경우와 비슷하다고 할까? 가족도 그런데 타인에게 이런 오지랖을 부리려거든 상대가 아무런 피드백이 없어도, 흘려듣는 것 같아도 모두 괜찮다면 해도 좋다.



이번 경우는 2번이었다.

상대방은 우연히 물어본 나에게 도움을 받았으니 행운이었다. 상대방은 일이 해결되었다는 안도감에 나를 해결의 실마리로 잡고 이후 또 요청을 해 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상대방의 마음의 피드백을 충분히 받지 못한 나머지 사무적으로 응대하게 된 부분이 없지 않기에 입장을 바꿔본다면 상대방도 뭔가 섭섭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시 한번 수고를 해주었지만 두 번째에도 나는 충분한 피드백을 받지 못했다.


상대방에게 섭섭한 것만 찾지 말고 나 스스로 생각을 전환한다면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자체를 스스로 감사할 일이긴 하다. 그리고 두 번째 전화가 왔을 때 내 소관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지점에서 선을 그었다면 내가 섭섭한 감정을 또다시 느끼는 일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관계에는 늘 여러 가지 각자의 감정이 실타래처럼 교차하기 때문에 그 안으로 들어가서 보면 누구나 타당하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일이 있다면 이것만은 꼭 지키면 좋겠다.



1. 개인적인 부탁은 당사자가 직접 말로 전하자. 특히나 큰 부탁일 경우 톡이나 문자는 금물.


지나가며 말할 정도의 가벼운 부탁이 아니라면 본인이 먼저 연락을 해서 물어보는 것이 예의이다.

상대방이 늘 하는 일 속에 내 것을 부탁하는 것이라도 고마워해야 마땅하다. 하물며 상대가 나로 인해 따로 시간과 품을 들여야 하는 일을 요청할 때엔 당연히 더 정중하게 전해야 맞다. 목소리로 직접.



2. 감사의 표현도 내 목소리로 직접 전달하자.


마더 테레사처럼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고서야 사람은 본능적으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마음을 되받고 싶은 것은 이기적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내가 이것을 주었으니 너는 나에게 이만큼을 줘야지가 아니라 서로 간에 적재적소에 조금씩의 배려가 있으면 이런 생각을 갖지 않는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좋은 마음에 도움을 주었다고 해도 돌아오는 마음이 없다면 성인군자가 아니고서야 서운하기 마련이다. 설상가상으로 '물에 빠진 사람 구해놨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처럼 상대가 그다음을 쉽게 기대만 하는 모습을 마주한다면 마음 한편이 씁쓸하다.


일상적인 일이라면 친한 사이에 가볍게 톡으로도 고마움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도움을 받았다면 게다가 아주 가깝지만은 않은 사이라면 바로 부터 들자.





작가의 이전글 삼촌과 베트남 커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