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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송 Dec 28. 2020

이런 거 틀리면 멍청이

피아노 레슨만 마치면 아이 어깨가 축 처져있다.
"선생님이 나보고 이런 거 틀리면 멍청이. 4학년인데 이런 거 모르면 바보. 자꾸 이래."
어린 학생들을 많이 가르치시는, 연세도 지긋한 선생님이라 당연히 노하우도 있으실 걸 안다. 선생님이 정색하고 이런 말을  했다기보다는 어떤 뉘앙스로 말씀하셨을지가 떠오른다. 그렇지만 아이는 몇 번이나 나에게 선생님이 그런 말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마음을 전해왔다.
선생님께 이런 말씀을 드리기가 죄송해서 몇 번의 하소연을 듣고 나서야 조심스레 이야기를 전했다. 다행히 선생님은 아이가 그랬느냐고 하시며 흔쾌히 내 말에 귀 기울여 주셨다. 알려줘서 고맙다고까지 해주셔서 오히려 내가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으로.

"선생님이 더 친절히 이야기해 주시겠대."
아이를 다독였고 바로 다음 레슨 때에는 선생님이 엄청 달라졌다고 나에게 이야기해주었다.
그 이후에는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고 한번씩 레슨은 어땠냐고 물으면 잘 받았다고 답해주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아이는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했고 집에서 혼자 한 번씩 치면 나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엄청난 호응을 해주곤 했다.

오늘도 피아노를 배우는 날이었다. 레슨을 마치고 와서 저녁을 먹는 얼굴이 유쾌해 보이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니?"
평소에도 자신의 감정의 높낮이를 바로바로 드러내지 않는 아이는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그럼 왜 그렇게 속상해 보일까?" 내가 묻자
"그냥 힘들어서 그래."라고 한다.
초등학교 4학년인데 엄청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무엇이 그리 힘들다는 것인지?
"숙제할 게 많아서?"라고 묻자
"아니 피아노 선생님이 너무 힘들어."라고 한다.
"어떤  면이? 가 엄마에게 이제 괜찮다고 했었는데?"
그러자 자기가 틀리면 "이렇게 좋은 곡을 망치고 있다", "거기 그 음이 왜 나와?"라고 하고 갑자기 큰소리를 꽥 지르기도 한다며 봇물이 터졌다. 전에도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지나갔다고.

그때 시기적절하게도 마침 최근에 보았던 강연과 토크들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유은정 정신과 의사의 <내가 예민한 게 아니라 네가 너무한 거야> 책 제목도 떠오르고, 사람의 수치심이 건드려지면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는 말도 떠올랐다. 사람의 느끼는 정도는 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기준을 정해놓고 네가 예민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라고 했다.

아이는 부드러운 성향을 가졌고 싫은 소리는 돌려서 말하며 잘 참고 상대의 감정을 예민하게 읽고 잘 챙겨주는 어린이이다. 나는 직설적인 성향이 기에 가끔은 아이가 답답해 보일 때도 있다. "싫으면 싫다고 해", "참지 말고 그냥 바로바로 말을 해."와 같은 말을 엄마라는 내가 참 많이도 해왔던 것 같다. 결국 "너는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구니?"와 같은 말을 계속 해온 셈이지 않나 싶다. 싫으면 싫다고 바로 말할 수 있는 것도 성향인데 그게 어려운 사람에게 "왜 그렇게 하지 못하니?"라고 말한 셈이다.

아차 싶었다.
이번엔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말아야겠다고 순간 결심했다.
"그렇게 느꼈구나. 선생님이 좀 더 부드러운 표현을 하셨으면 좋았을걸."
아이는 피아노 치는 것은 좋다고 했다. 자기도 모르게 자꾸 틀리는데 "곡을 망친다"라고 하는 것은 너무 하다고 말이다.
"만약 네가 아가 사촌동생을 가르친다고 치면 안 그럴 거야?"라고 묻자 자기는 "이러이러하게 해보자."라고 말할 거란다.
"선생님은 계속 그랬어. 처음에 엄마가 말했을 때만 안 그랬지 원래 그런 건 바뀔 수가 없어."라고 한다.
이 아이 뭐지? 인간의 성향은 바뀔 수 없다 뭐 그런 걸 벌써 터득한 걸까?
선생님은 아마도 나처럼 직설적인 이 있는 분일 것이다. 바로바로 팩트 폭격 피드백을 날리기도 하는. 선생님도 아이괴롭히려던 것은 아닐테다. 그렇지만 아이와 같은 성향의 사람에게는 정반대 성향의 사람이 날리는 팩폭은 방식이 달라도 너무 다르니 충격의 강도도 클 수 있다.

"어떨 땐 내가 좀 많이 틀리긴 해."

아이의 말에  나는 손을 잡고 말해줬다.


"네가 그렇게 힘이 든다면 좀 더 맞는 선생님을 찾아볼 수도 있어. 그리고 선생님이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씀을 하셨을 때 그런 ''로 인해 가 속상함과 슬픔에 빠지기보다는 피아노 칠 때의 어떤 점을 신경 쓰라는 것인지에 더 집중하도록 하자. 꼭 피아노 선생님이 아니라 그런 비슷한 어떤 상황이 있더라도 말이야. 상대방이 너에게 안 예쁜 표현을 했다면 그 사람이 너무한 거지 네가 예민한 것이 아니야. 당연히 더 나은 방식으로 말해줄 수 있는 거야. 그것은 그 사람의 문제야.

그리고 네가 자꾸 틀린다고 너를 자책하고 속상해할 필요는 없어. 모르니까 배우는거고 안 되면 두 번  세 번 치고 그래도 안되면 열 번 치면 되는 거지.  생각에 그렇게 소리를 꽥 지를 일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앞으로도 혹시 있을 때 그런 ''을 마음에 담아두고 슬픔에 빠지지 않길 바래. 너의 마음은 평온을 잃지 않기를. 너는 그대로 여전히 가치 있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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