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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y Jun 05. 2023

내 몸이 긍정하는 공간

시그니엘에 살 운명은 아닌가 보다 

내가 다니던 학교 도서관 옥상에는 각종 나무와 꽃이 심어져 있는 작은 정원이 있고, 벤치와 큰 평상이 여러 개 있어 학생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나는 이 평상에 가만히 누워 햇빛과 바람을 맞으며 낮잠 자는 것을 좋아했다. 햇빛을 맞는 것만으로도 몸이 따스하게 데워져 마음이 녹아내리고, 시원한 바람은 내가 가진 모든 근심과 걱정을 날려 버리는 듯했다. 


나는 항상 햇빛이 들고 바람이 통하는 공간을 좋아했다. 


아직 에어컨이 가동되기 전 학교에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는 걸 좋아했고, 점심 먹고 햇빛과 바람을 맞으며 회사 주변을 산책하는 시간을 좋아했다. 



나는 대학원을 다니면서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처음엔 내가 연구와 맞지 않아서라고 생각했고, 그다음엔 사람들과 잘 맞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교를 떠나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온 나는 나와 잘 맞는 일을 하고, 좋은 사람을 만났음에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특별히 불행한 것은 아니었지만 회사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순간이 가장 기뻤고, 방문을 열고 들어와 침대에 몸을 누이는 순간 안도감을 느꼈다. 



그녀는 더 이상 의지나 열정 같은 말에서 의미를 찾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기대야 하는 건 자기 자신을 몰아붙이기 위해 반복 사용하던 이런 말들이 아니라, 몸의 감각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가 어느 공간을 좋아한다는 건 이런 의미가 되었다. 몸이 그 공간을 긍정하는가. 그 공간에선 나 자신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그 공간에선 내가 나를 소외시키지 않는가. 그 공간에선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가. 
-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에서 작가는 '몸이 긍정하는 공간'이라는 표현을 썼다. 내 몸이 편안해하는 공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행복한 공간. 내가 학교와 회사에서 그리 행복하지 않았던 이유는 두 곳 모두 내 몸이 긍정하는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해가 들고, 바람이 통하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공간을 좋아한다. 창이 없거나 블라인드로 가려져 있고, 사람이 많아 공기는 답답하지만 환기는 공조장치를 통해서만 이뤄지는 공간을 근본적으로 좋아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 드는 생각은 아 나는 시그니엘에 살 운명은 못 되는가 보다였다. 아무리 좋은 집이라도 창문이 열리지 않는 집에서는 살지 못하겠구나. 그리고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바로 창문이 열리지 않는 집이구나. 


이런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직업을 구해서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작업을 시작했답니다!라는 결말이 나왔으면 참 좋겠지만. 아쉽게도 나는 이 생각을 오늘 연휴 전날이라고 빠퇴해서 집에 도착해 햇살 가득한 내 방 문을 열면서 했다. 그저 내가 이 공간들을 답답하게 여기는 이유를 이제서라도 이해하게 되어서 기쁘고, 이제라도 내 몸이 긍정하는 공간을 찾기 위해 노력해 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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