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은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1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가끔 친구들과 고등학교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뭘 할까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다. 요즘은 누구와 얘기해도 과거로 돌아가 비트코인이랑 삼성전자를 사야 한다로 귀결이 되지만, 그런 금전적인 요소를 제쳐놓고 보았을 때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고 싶느냐 그러지 않느냐는 항상 의견이 갈렸다.
그리고 내 의견은 항상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이다.
나는 교육열이 꽤 극렬한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공부 잘하는 아이가 가장 선망을 받는 곳, 그 누구도 왜 공부해야 하는지를 묻지 않고 공부가 그저 당연한 곳. 밤새서 시험공부를 하고,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연달아 학원을 가는 게 당연한 곳에서 학교를 다녔다.
이런 곳에서 학교를 다녔다고 하면 나를 굉장히 불쌍하게 보기도 하는데,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그리 불행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모두가 스마트폰을 쓰던 시절이 아니었고, 또 공부를 잘하면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아직 남아있었던 시절이기 때문에(이렇게 말하니 엄청 옛날 같은데 10년도 안 된 이야기이다) 나는, 그때 함께 학교를 다녔던 우리는 모두가 이렇게 살고 이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밖을 넘어선 세상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그냥 삶이란 이런 거라고 생각했다.
대학에 진학해 세상을 좀 더 알아가면서 공부는 절대 성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걸 나만 모르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제야 고등학교 시절의 내가 조금 안쓰러워졌다. 공부가 뭐라고 그렇게 내 인생을 갈아 바쳤을까, 운동도 좀 하고, 취미생활도 좀 하고, 친구들이랑도 좀 더 놀러 다닐 걸. 내가 좋아하는 것도 찾아보고 세상 공부도 좀 해 볼걸.
하지만 안쓰러운 것과 별개로 내 고등학교 시절이 후회스럽지는 않다. 그때의 나에게 주어진 정보는 한정적이었고, 나는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으니까.
내가 고등학교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그 시절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고등학교 시절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 후회 없이 살았고 지금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결코 그때만큼 열심히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이런 주제가 생각이 난 건 요즘 들어 과거에 내가 이런 선택을 했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상황을 상상하고 있다가 문득 이 모든 가정들은 내가 대학에 들어온 이후의 상황만 가정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대학을 들어온 이후에 이걸 할걸, 저걸 할걸 하는 생각은 많이 했지만 고등학교 때 이걸 했어야 했다 저걸 했어야 했다 하는 생각은 한 적이 없다. 고등학교 시절의 일은 비록 그게 지금 보기에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더라도 그때는 어쩔 수 없었고, 다시 돌아가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거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차이일까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다가 결국 차이는 내가 주어진 것에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의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의 나는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다들 이렇게 살고 그게 맞는 삶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내가 가진 모든 걸 불태우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대학교에 들어와 아는 게 많아지자 오히려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 길이 맞는 건지, 다른 길을 택해야 하는 건 아닌지, 남들이 택하는 길을 나도 따라가야 하는 게 아닌지. 노력은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데 노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꼭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 걸까. 복잡한 정보 속에서 나는 갈팡질팡 했고 결국 그 무엇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대학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때의 선택이 틀린 선택이었을지라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불태우며 살았다면 적어도 나는 지금 과거를 후회하고 있진 않을 거다.
결국 내가 고등학교 시절을 후회하지 않는 것도 그때의 선택이 꼭 옳아서가 아니라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니까.
물론 늘 그렇듯 후회는 의미가 없다. 백날천날 가정을 한들 과거를 되돌릴 기회는 돌아오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먼 미래의 내가 오늘을 후회하지 않도록 열심히 사는 것뿐이니까.
고3 시절 항상 스터디 플래너에 11월 13일(수능날)에 오늘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도록 이라고 적어 두었던 기억이 난다.
10년 후에 오늘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