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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ng Dec 13. 2020

GOD 4집 타이틀 곡 - 길

그때 그 시절 추억 속으로 

 누구나 나의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가수 GOD의 4집 앨범 타이틀 곡인 '길'을 들을 때가 그러하다. 현재 음악 리스트에 있는 곡들이 지겨워질 때면 종종 옛날 노래들을 찾아서 듣곤 하는데 오랜만에 이 노래를 다시 들었다. 역시 명곡임을 느끼면서 어김없이 나의 유년시절이 생각이 났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1학년 운동회 때 달리기 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운동을 시켰다. 다들 결승점을 향해 죽어라 뛰는데 나는 뛰는 방법을 몰랐는지, 아니면 뛰기 싫었는지 몰라도 손목을 축 늘어뜨린 채로 휘적휘적 저으면서 헤실헤실 웃으며 천천히 뛰어갔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아이고 귀여워라" 였지만 엄마에게는 "어머나 세상에 왜 저러니" 였을 것이다. 나에게 운동신경이 없음을 확인한 엄마는 내 건강을 벌써부터(?) 걱정하며 나를 빙상장으로 데려갔다. 왜 수많은 운동 중 굳이 '스피드 스케이팅'을 골랐을까? 문득 궁금증이 생겼지만 딱히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는 과천 시민회관에 있는 빙상장에서 첫 스케이트를 시작했다. 처음엔 가볍게 일주일에 2번 정도 다녔는데 생각보다 내가 너무 재밌어했다. 수업이 끝나도 2시간을 혼자 얼음 위를 헤집고 다니며 놀았다. 그때 당시 선수반 팀이 있었는데 내 수업 1시간 뒤부터 훈련을 시작했었던 것 같다. 처음에 몸 풀기로 워밍업을 10바퀴 정도 도는데 그게 멋있어 보였다. 소위 말하는 '아이돌 칼군무' 같다고나 할까? 제일 고학년에 잘하는 멤버가 맨 앞에서 리더 역할을 하는데(맨 앞에서 타는 게 속도 조절이 필요한 일이라 쉽지 않다.) 그때 그 오빠(?) 참 반짝반짝 빛이 났다. 


 어려서 그랬을까, 어느새 나는 그 꽁무니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맨 뒤에서 몰래 쫓아가면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이었다. 처음부터 따라가면 티 나니까 한 5바퀴 즈음 돌 때 뒤에 살짝 붙었다. 그때 그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짜릿했다. 몇 번 그러다 보니 내 앞에서 타던 아이가 어느 순간 나를 경계하며 티 나게 짜증을 냈다. 말은 안 했지만 '야 너 뭔데 자꾸 붙냐?' 딱 이 표정으로 순간순간 뒤를 돌며 나를 째려봤다. 하지만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팀의 코치가 엄마에게 제안을 했다. 자기네 팀으로 날 보내라고. 


 선수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는 학교를 6교시 중 4교시만 하고 퇴근(?)을 했고 학교 대표로 시합도 나가게 되었다. 그때 입었던 얇은 쫄쫄이(=트리코라고 부른다)는 빨간색으로 오른쪽 종아리 부분에 'OO초등학교'라고 써져있었다. 기념으로 갖고 있어도 좋았을 텐데 언제 버렸는지 모르겠다. 나는 재밌어 한 만큼 실력도 빨리 늘었고 맨 뒤에서 타다가 앞에서 5번째까지 올라갔다. 


 우리는 시합을 나가면 큰 버스를 빌려서 타고 갔는데, 가고 오고 하는 동안 나의 GOD4집 앨범 테이프는 제 역할을 톡톡이 해주었다. 인트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곡까지 우리 멤버(?)들은 가사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따라 불렀다. 그중에서도 다들 '길'을 가장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이 곡을 들으면 그때 그 느낌이랄까 그런 게 몽글몽글 생각난다. 내가 앉았던 자리, 시끌벅적함, 힘들어서 입맛은 없지만 먹어야 해서 먹었던 엄마표 김밥, 새벽 공기, 링크장 얼음 냄새, 차가운 공기, 태릉선수촌 첫 훈련날, 처음으로 1등 한 날, 합숙 담력훈련 등 여기에 다 적을 수 없을 만큼 많은 기억들이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내가 6학년 때 그만두었으니 나의 초등학교 시절은 전부 스케이트로 꽉 차있다. 사실 그만두게 된 계기도 나의 선천적인 무릎 관절 때문이었으니 이것만 아니었다면 더 오래 탔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정말 후회 없이 열심히 탔기 때문에 실력도 좋았고 잘 탔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내가 관둔다고 했을 때 코치님이 집까지 찾아와서 매달리셨다고 한다. 아까우니 조금만 더 시키라고.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이 시절을 꼽을 것이다. 그냥, 어떤 수식어도 붙일 필요 없이 짧게 표현하자면 "그때 재밌었어"라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엄마한테도 가끔 그때 어땠냐고 물으면 힘들긴 했는데 재밌었다고 말한다. 엄마는 더운 여름에 동생 유모차에 태우고, 내 훈련 가방 메고, 비닐봉지에 얼음 넣어서 본인 하나, 나 하나 목에 얹고, 지하철을 타던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길래... 내 자식은 그렇게 못 키울 거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가족들은 그때 그 시절을 꽤 또렷하게 기억한다. 엄마도 나도 그때 묵묵히 돈 벌어주던 아빠도, 그리고 빙상장을 놀이터처럼 뛰어놀던 귀여운 내 동생에게도 모두 빛나던 순간이었기를.


 결혼을 하고 한 가지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다. 남편의 고향이 과천인데 자기도 어릴 때 시민회관에서 수영을 배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 나도 거기서 훈련했었어!"라고 말했더니 "진짜? 그럼 그때 내가 비웃었던 애들 중 한 명이었을 수도 있겠네"라고 말하며 껄껄 웃었다. 남편은 수영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이랑 매점에서 핫바를 주로 사 먹었다고 했는데, 매점은 빙상장 층이랑 같은 층에 있어서 핫바를 먹으며 쫄쫄이를 입은 우리들을 보며 쟤네 웃기다며 한참 구경하다가 갔다고 한다. 참 재밌는 인연이다. 


 나에게 소중한 추억과 인연을 선물해준 엄마에게 늘 감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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