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엄마의 어릴 적 이야기 중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있다. 어릴 때 들을 때도 ‘나 재밌으라고 지어냈나?’ 속으로 생각하고 믿지 않았는데 최근 엄마 집에서 수다를 떨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그 얘기 좀 다시 해달라고 졸랐다. 엄마의 아버지, 즉 나의 외할아버지의 외갓집은 그 옛날 성북구 장위동에서 넓은 마당에 방 여러 개가 있는 부잣집으로, 집안 살림 도와주시는 분도 두 명이나 있었다. 마당에는 개랑 고양이 여러 마리를 자유롭게 풀어놓고 키웠는데 그 집 개, 고양이들은 유독 사이가 좋았다. 평화로운 그 집에도 옥에 티가 있었으니, 바로 식모 언니다. 이 언니는 성격이 못 되가지고 동물들을 못살게 굴었다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반갑다고 꼬리 치며 쫓아오는 애들을 귀찮다며 발로 차고, 주인 없는 곳에서 몰래 때리고 그랬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일요일 아침, 집안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집을 비우고, 식모 언니는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일거리를 끝내고 안방에서 한 숨 자야겠다 생각하며 대자로 뻗어 잠을 자고 있었는데, 한참 자다가 머리맡에 뭐가 있는 것 같이 쭈뼛쭈뼛 신경이 곤두서서 눈을 뜨고 올려다보니 마당에 있어야 할 개랑 고양이들이 안방으로 하나 둘 모여들고 있었다. 너무 놀란 식모 언니는 벌떡 일어나서 저리 가라고 손을 휘저었고, 동물들은 시끄럽게 짖으면서 공격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꼼짝없이 당할 상황이니 얼른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갔는데 넓은 장소로 가면 금방 붙잡힐 거 같아서 급하게 다락방으로 피신했다. 그리고는 방 안에서 문고리를 잡고 벌벌 떨고 있었는데, 어느새 뒤따라온 동물들은 다락방 문을 손톱 발톱으로 격하게 긁기 시작했다. 결국 식모 언니는 장장 두 시간이나 그 안에 갇혀있어야만 했다.
집에 돌아온 가족들은 식모 언니가 보이지 않자 찾기 시작했는데, 집 안은 이상하리만치 너무 조용했다. 찾다 찾다 다락방 문 앞까지 와보니 문이 엉망진창이 되어있었고 사람 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안심한 식모 언니가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문을 열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식모 언니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자고 있었는데 다짜고짜 동물들이 자기를 공격했다고 말하며 맥없이 주저앉았다. 결과적으로 다친 곳은 없었지만 그날 일은 식모 언니에게 큰 정신적 트라우마를 안겨주었고 며칠 지나지 않아 일을 그만두었다. 결국, 개와 고양이들이 힘을 합쳐 식모 언니를 쫓아낸 샘이다. 엄마도 어릴 때 할머니한테 들은 이야기였다는데 마치 전래동화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이 재밌어서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내용이 딱 현대판 권선징악 스토리다.
어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어이구 얼마나 못살게 굴었으면 갸들이 그리 협심을 해서 사람 하나를 해코지 해~"
"갸들도 사람하고 똑같은 생명 인디 그러면 안되지~"
"그나저나 세상에나 참 신기하네~ 어쩜 이런 일이 다 있나~"
그들은 언제부터 작전을 세웠으며, 어떻게 협공을 할 생각을 했을까? 또 신기한 점은 주인이 있을 때가 아닌 없을 때를 노려서 그랬다는 점이다. 본인들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당했으니 똑같이 갚아주고 싶었나 보다. 아직도 참 신기하다. 너무 뻔한 이론이지만, 동물들도 사람처럼 감정이 있고 자기를 좋아하는 이가 누군지 싫어하는 이가 누군지 다 안다. 아직도 동물을 잔혹하게 학대하는 사람들은 넘쳐나고 제대로 처벌조차 받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이렇게 보복을 당하지 않더라도 살아서든 죽어서든 결국 대가는 치르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 언니는 지금쯤 할머니가 돼있거나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거나 둘 중 하나일 텐데, 살아있다면 그때 그 일을 기억할까? 얼마나 반성하며 살았을까?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