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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ng Jul 07. 2021

알고 있었지만

돈거래는 애초에 시작을 말아야 하거늘

 오늘은 소중한 나의 휴가 날이다. 한껏 여유를 부리며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는 동생한테서 카톡이 왔다. 혹시 이번에도 돈 빌려달라는 내용인가 싶어서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확인했다.


“언니 지금 바빠요?”

“아니~ 청소 중에 잠깐 쉬고 있어”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어요?”

“뭔데? 일단 들어는 볼게~”

“제가 대출을 받았는데 제 계좌가…”


 이전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최근에 동생의 어머니가 차를 뽑았는데 본인이 대출을 해서 돈을 보태주었다고 한다. 딱 봐도 무리해서 받은 티가 났지만(회사 메신저로 주고받은 내용으로 짐작-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함) 마지막으로 해드리고 다음에 또 부탁하시면 딱 잘라서 거절하라고 조언하고 말았다. 깊이 관여해봤자 머리만 아프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없기에. 


 그런데 그 일을 알고 난 후 어느 날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동생에게서 톡이 왔다. 자기가 대출 때문에 돈이 없다고 10만 원만 빌려줄 수 있냐기에, 얼마나 힘들었으면 나한테까지 얘기할까 싶어서 선뜻 빌려줬다. 그리고 월급날 동생은 바로 돈을 갚았다. 그 이후에도 한 번은 점심시간에 빨리 은행을 다녀와야 한다고 택시를 타야 한다는데 카드를 잃어버려서 나에게 택시비를 빌려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나는 별생각 없이 해주었고 어김없이 동생은 바로 돈을 갚았다.


 원래 나는 돈거래는 하지 않는 것이라고 배웠다. 내가 부탁하는 경우도 없었고, 주변에 그런 친구도 없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머릿속으로는 답을 알고 있어도 막상 닥치면 반대로 행동하고 감정에 이끌리며 옳은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 상황이 그러하다. 사실 아무리 소액이고, 내 주머니 안에서 해결할 수 있었어도 처음부터 거절했었어야 했다. 그게 답이었다. 


 돈을 빌려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떼인 것도 아니고 바로바로 갚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혹시 갚지 않으면 어쩌지..' '주머니 사정 어려울 때마다 나한테 계속 빌리려고 그러나..?' '나중에 더 큰 금액을 요구할 수도 있을 텐데 그땐 어떻게 잘 거절해야 할까..' 그러다가 '에이 모르겠다. 한국인은 삼세판이지!' 하면서 세 번째로 요구하면 마지막으로 빌려주고 이제 더는 금전적인 부탁은 들어주지 않겠다고 해야지 생각했다. 


 오늘 카톡으로 받은 부탁이 딱 세 번째 부탁이었다. 근데 솔직히 이번 건은 내 예상을 뛰어넘은 폭탄 수준이었다. 내용인즉슨, 대출받은 돈을 계좌로 받아야 하는데 자기 계좌로는 받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왜 인지 물어봤으나 명확히 알려주지 않음) 내 계좌로 받았다가 다시 본인한테 이체해주면 안 되냐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전화 한 통만 받아주면 되는데, 내 주민번호와 통신사만 알려주면 된다고 했다. 참 기가 찼다. 기분이 나빴다. 이건 거절을 고민할 수준이 아니었다. 나를 쉽게 봤거나 아예 개념이 없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이번 부탁은 들어줄 수 없다고 거절했더니 “그럼 하지 마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필시 내가 부탁을 들어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라서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는 조심스럽고 신중해야 되는데, 심지어 예민한 돈문제를 얘기하면서 너무 아무렇지 않게 내 신용정보를 요구하고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음에 짜증을 내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날 나쁜 언니로 만든 기분이 들어서 화가 났다. 대화 마지막에 부탁 거절해서 미안하다고 보냈는데 읽씹을 당했다. "언니 무리한 부탁 요청해서 미안해요 신경 쓰지 마세요." 이런 말이라도 했으면 이렇게까지 어이가 없지는 않았을 텐데 참 이건 뭐지 싶다. 나는 결국 호구였나? 이러면 안 된다 구구절절 잔소리하고 싶지도 않다. 지금 태도를 보아하니 어차피 꼰대 짓이라 느낄게 뻔하다. 


 내일 출근하면 얼굴을 봐야 할 텐데 불편하고 껄끄럽다. 이럴 땐 인간관계에 회의감을 느낀다. 역시 회사에서는 일만 해야 하는 게 맞는구나 싶다가도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경우도 많았기에, 그냥 이번엔 이런 경우가 있기도 하는구나 하고 스스로 잘 소화해 넘겨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또 한 번 마음에 새기게 된다. 어떤 경우에도 돈거래는 처음부터 시작하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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