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빠와의 평범한 일상 그리고 행복
아빠에게 남자 친구와 결혼한다고 말하던 날, 아빠는 “헐?”이라고 대답했다. 반응이 그게 뭐냐며 배꼽 잡고 웃었는데, 그 뒤에 덧붙인 말이 기억에 남는다. “처음 하는 연애라길래 시간 지나면 금방 헤어지겠거니 했더니만, 결혼까지 하는 거니?...” 아빠의 반응은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본인의 소중한 딸을 이제 보내줘야 한다는 생각에 당황스럽고 속상하고, 갑자기 쓸쓸한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싶다.
엄마 말에 의하면 나는 어릴 때부터 유독 아빠를 잘 따르고 좋아했다고 한다. 가끔 부모님이 부부싸움을 할 때는 아빠 무릎에 앉아서 노래를 불렀고(기억은 안 나지만, 아빠를 괴롭히지 말라는 내 나름의 표현인 듯) 금요일 저녁, 친구들과 노느라 늦게까지 집에 오지 않는 아빠를 기다리며 화가 나 있는 엄마에게는 “차가 엄청 막히나 봐!”라고 말하며 아빠를 보호했다.
아빠는 둥글둥글한 성격의 소유자로 비교적 순한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사람들이 늘 많고, 친구들 모임도 중학교, 고등학교, 군대, 회사동기 등 엄청 나눠져 있다. 지금 말로 표현하자면 ‘핵인싸’ 랄까? 부모님은 비밀 사내연애를 했는데 결혼한다고 깜짝 발표를 하던 날 회사에서는 직원들 사이에 아빠는 분명 잡혀 살 거라는 작은(?) 소문이 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아빠와 성격이 정 반대여서 유들하지 않고, 어떤 종류든 맺고 끊음이 칼 같다. 아마 두 분은 서로 반대의 모습에 끌리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마찬가지로 그랬으니까.
부모님은 나와 동생을 키우면서 딱히 큰 애정표현을 하시는 편은 아니었는데, 아빠는 더 그랬다. 그렇다고 무뚝뚝한 편은 아니지만 살가운 편도 아니었다. 그래도 아빠의 영원한 팬이었던 나는, 어릴 때 사진을 보면 아빠 옆에 찰싹 붙어서 찍은 사진들이 유독 많다. 그러다가 사춘기에 접어들어서는 늘 엄마의 잔소리에 예민해져 있던 시절이라, 아빠가 가끔씩 묻는 나의 안부(요즘 공부는 잘하고 있니, 교우관계는... 등등)가 부담스럽고 싫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 ‘갑자기 왜 물어보지?’ ‘알려주면 제대로 이해는 할까?’ 어쩌면 이런 날 선 생각들이 그대로 드러나 아빠에게 상처를 줬을지도 모른다. 가끔씩 그런 순간들이 떠오르곤 하는데, 기억하는지 물어보면 모른다고 답한다. 이럴 때는 둔한 성격이 도움이 되려나 싶지만, 아마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나는 영영 모르겠지.
그렇게 사춘기를 보내고 20대 중후반으로 접어드니 조금씩 철이 들었을까, 부모님의 잔소리도 마냥 듣기 싫은 소리가 아니게 되고, 어느덧 나를 이만큼 고생해서 키워주셨다는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런 마음이 켜지게 된 가장 큰 동기는 ‘결혼’이 아닐까 싶다. 결혼을 준비하며 아빠는 이렇다 할 큰 액션은 없었는데, 축사를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다고 엄마에게 전해 들었다. 그리고 몇 번의 수정 끝에 완성된 축사는 영원한 나의 보물이 되었다. 하지만 식 당일에 들을 때는 울지 않았는데, 아빠가 엄청 서운해했다.
“너 왜 울지도 않고...”
“아.. 나 발이 너무 아파서...”
그렇다. 나는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입장했는데 발이 정말 부러질 듯이 아팠다. 사람이 많아 정신도 없었고, 정신력으로 아픔을 참고 있던 중이라 울 수는 없기에 열심히 웃고 있었다. 내가 눈물이 터진 때는 신혼여행지에 도착해서 방에서 짐 정리하다가 아빠 글씨가 적혀 있는 폐백 봉투를 보고 난 후였다. 편지를 쓴 것도 아니고 그냥 딱 “정아에게”라고만 적혀있었는데, 함께한 모든 일상과 추억들이 순간 파노라마처럼 휘리릭 하고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이제 집에 돌아가면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그 짧은 순간에 아빠가 어떤 마음으로 축사를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 글을 쓰기 3주 전 친구의 아버지가 사고로 급작스럽게 돌아가셨다. 나와 같은 첫째인 친구는 한순간에 가장이 되어버렸다. 친구는 어떤 표정을 지으며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을까, 만약 울고 있는 걸 본다면 나도 그 자리에서 대성통곡할 것 같았다. 이런 상상과는 달리 담담한 모습으로 맞아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찌 그 속이 담담할 수 있을까. 감히 어떤 말로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가만히 밥만 먹고 있었는데 아빠한테서 전화가 왔다. 평소에 용건이 없으면 전화는 하지 않는 편이라 무슨 일이지 싶었다. 밖으로 나와서 전화를 받았는데, 하이톤 목소리에 꼬부라지는 말투를 듣자 하니 술을 잔뜩 마신 듯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오랜만에 중학교 동창모임을 나가서 딸 자랑을 한 모양이다. 그 덕에(?) 얼굴도 모르는 아저씨들과 돌아가면서 인사를 했다. 엄마한테 또 쿠사리 먹지 말고 집에 빨리 가라고 인사를 하고 끊으려는데, 아빠가 나지막이 내 이름을 부르더니 사랑한다고 말했다. 헐! 내 인생 통틀어 직접적으로 들은 적은 처음이라 놀라웠다. 아빠도 이제 나이 들었구나~ 생각하다가 문득 친구의 모습이 떠올라 울컥 눈물이 났다. 부끄럽지만 나도 용기를 내어 사랑한다고 답해줬다. 그리고 살아계시는 동안 더 잘 지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음날 아빠에게 카톡을 보냈다. 잘 들어갔는지 걱정도 되었고, 분명 통화한 걸 기억할 텐데 부끄러울 듯하여 먼저 연락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빠는 멋쩍은 듯이 허둥지둥 오타까지 내가며 답을 해왔다.
가끔 아빠의 축사를 꺼내서 읽곤 하는데, 읽을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부분이 있다.
“너와 함께했던 평범한 일상들이 아빠는 모두 좋았다.”
생이 유한하지 않기에 언젠가는 떠나시겠지만 후회하지 않도록 늘 최선을 다하고 싶다. 나 또한 아빠와 함께했던 평범한 일상들이 모두 좋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