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녀산성이 보이지 않으니 다들 실망한 분위기가 여력 했다. 눈앞에 있어야 할 오녀산성이 보이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적당히 가려진 게 아닌 먹구름이 산 전체를 집어삼켜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운도 지지리 없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차가 좀 더 달려 오녀산성 바로 아래에 있는 오녀산성 박물관에서 하차했다. 이곳에서는 오녀산성이 잘 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은 오녀산성과 너무 밀접해 있기에, 오히려 성의 외관을 전혀 볼 수 없는 위치다. 나는 고구려 답사가 처음이라 이것 또한 비 때문인 줄 알았다. 오녀산성의 외관이 보이지 않아 아쉬운 채 오녀산성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들어간 오녀산성 박물관은 고구려 유물로 가득한 곳이었다. 비가 와서 실내가 굉장히 습한 게 흠이었지만, 사방이 다 고구려 유물이었다. 한국에서 고구려 유물을 전시하면 유물의 수가 적어 무척 아쉬운 경우가 많았다. 반면 어딜 둘러봐도 보기 힘든 고구려 유물이라 구경할 게 많아 좋았다. 관구검기공비를 보며 고구려를 침략한 관구검에 대한 분노가 차오를 즈음 다른 일이 일어났다.
박물관에서 버스를 타고 오녀산성 입구까지 이동해야 했기에 버스기사가 계속 관람을 빨리 끝내라고 재촉했다. 기사님의 서투른 "빨리빨리"가 점점 커져 다급하게 이동하느라 전시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포장도로를 통해 해발 800미터의 산 위로 올라갔다. 나는 버스와 포장도로를 통해 쉽게 올라가지만 고구려 때는 비포장도로에 사람이 직접 걸어갔어야 할 것을 생각하니 저절로 고단해졌다.
한 10여분을 달려 오녀산성 입구에 왔다. 입구에서도 오녀산성을 올려다봤는데.. 여전히 안개가 심해 보이지 않았다. 날씨는 비바람으로 인해 춥고 여전히 연무는 심하고, 이 쯤되니 기대감이 배신감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우산을 받쳐 들고 오녀산성을 오르기 시작했다. 혹시 산 정상에 오르면 풍경이 달라질 것을 기대한 채 오르기 시작했다. 다른 고구려답사기나 영상을 보면 정말 힘들어하던 곳인데 비가 와서 미끄러워 정말 위험하다고 여겼다. 정말 가파르고 높아 금세 쉬는 분들이 많아졌다.
쉬는 일행분들은 뒤로 하고 이 악물고 산을 올랐다. 혹시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산을 올랐다.
그러나 나의 기대를 짓밟듯이, 위로 올라가니 연무가 더 심해졌다. 비와 연무 때문에 신선이 나올법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 사진을 본 누군가는 추모왕으로 인해 비가 내려 죽을 위기에 쳐한 송양왕 시점이라 했는데 당시에는 앞이 보이지 않아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신선이 나올법한 분위기 다 보니 정말 여기서 사람이 어떻게 산 거지 한 경외감이 들었다. 동시에 초기 고구려의 척박함도 동시에 느껴졌다. 상시 거주하는 성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기에 성을 쌓고 살 생각을 했고 그걸 실천한 게 대단하게 느껴졌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내가 어떻게 올라온 것이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정말 높아서 차마 산 아래로 눈을 돌리지 못했다. 보통 높은 게 아니라 여기서 발 헛디디면 바로 죽을 거라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다들 힘들게 올라오고 답사를 이끄시는 박사님이 해설을 하셨다. 남아 있는 고구려 성벽 쪽으로 데려가시더니 고구려의 성벽 건축기법을 설명하셨다. 그동안 배웠던 고구려 성벽 양식이 잘 드러나 있다. 조금밖에 안남고 규모가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여기 해발 800m 이상에 성을 쌓은 곳이다. 우리가 아는 대형 성벽을 쌓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작은 성벽이지만 거의 2천 년 전 초기 고구려의 성벽이 지금까지 남은 기술력에 감탄을 했다.
이 구멍을 통해 문을 닫고 열 수 있다고 했다. 즉 내가 서 있던 그곳에서 고구려 병사들이 문을 지킨 곳이다.
오녀산성 문의 전반적인 모습이다. 성벽이 무눠져 조금 볼 게 없네?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미 드높은 산 위에 더 쌓을 이유가 없을 것 같다. 이미 여기까지 올라온 시점에서 이미 지쳐 쓰러지지 않을까?라고 판단했다. 이런 내 생각을 읽으셨는지 박사님이 여기를 딱 한번 고려말에 이성계만 함락시켰다고 말하셨다.
태조 이성계, 고려말 전쟁영웅인 건 분명 알고 있었지만 이곳을 함락시켰다는 것을 알게 되자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한 나라의 태조가 된 인간을 내가 너무 얕잡아 봤던 것일까?
성벽을 둘러보고 평야지대를 좀 걸으니 주몽 동상이 나왔다. 보자마자 든 생각이 주몽이 막 내려올 때는 20대 초반일 것인데 너무 늙게 나온 게 아닐까 하고 웃고 넘겼다. 당시 이 말을 일행분들에게 했는데 주몽의 나이도 아냐고 해서 똑똑한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왠지 모르지만 관우 모형이 오녀산성에 존재했다. 중국에서 신앙의 대상이기에 둔 거 같지만... 그래도 고구려의 첫 수도에 관우 모형이 있다는 게 한국인으로서 불편했다. 평소에는 촉한정통론자로 불릴 정도 고 삼국지 중 촉나라를 좋아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아니었다. 관우가 고구려 수도에 존재할 인간은 아니다. 저 동상을 관우가 지키던 형주로 보내고 싶었다.
이 샘이 있기에 고구려인들이 험난한 곳에서 살 수 있었다. 험준한 성에 이런 샘이 있으니 대무신왕 대에 고구려와 한나라의 전쟁 설화가 생각났다.
한나라가 쳐들어왔는데 고구려가 위나 암성에서 버티며 장기전에 돌입했다. 한나라는 고구려가 오래 못 버틸 거라 판단했지만 고구려가 한나라군 진영에 물고기를 잡아 받치니 전투 포기하고 한나라가 포위를 풀은 일이다. 물론 그 전투가 벌어진 성은 오녀산성이 아니라 위나암성, 즉 졸본에서 천도 이후 일어난 일이지만 말이다.
고구려의 건물지다. 굉장히 대형 건물지다.
온돌도 보인다. 기억상 이곳을 고구려의 내무반 같은 곳이라 생각하면 편하다고 설명하셨다. 이후 박사님이 이곳을 설명하다 혼강 전망대? 같은 곳이 있으니 그곳에서 조금은 좋은 경치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다들 탄식하면서 아쉬워했다.
실망한 채로 오녀산성의 다른 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혼강은 보이지 않았지만 바로 옆에 큰 절벽은 제대로 보였다. 내 걷어찬 돌이 이 아래로 떨어졌는데 돌이 떨어진 소리가 들리지 않아, 여기서 떨어지면 오체분시가 디폴트일 거 같아 겁을 제대로 먹었다. 여전히 비가 내리는 하늘을 원망하던 차 누군가의 말이 내 귀에 꽂혔다.
어 보인다!
놀랍게도 바람이 불어 갑자기 혼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만 없었다면 이 경치를 만끽했을 것인데 아쉬웠다.
힘들다는 이유로 혼강이 들어났을 때 전망대로 오지 않으신 분들도 있으셨는데 아쉽다. 일부 구름에 가려진 풍경일지언정 아름다웠다.
황급하게 사진을 찍었다. 낯을 많이 가려서 원래 모르는 분에게 사진 찍어달라고 정말 말하기 힘들어하는데 이 순간은 그냥 냅다 찍어달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이 사진을 찍고 10초 정도 뒤 혼강은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혼강에서 사진을 찍고 다시 평지 쪽으로 오니 다른 고구려 건물지가 나를 맞이했다. 초기 고구려인만큼 건물의 규모가 클 거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컸다.
전반적으로 다 둘러보고 내려와야 하는데 운동화가 큰 곤혹이었다. 비가 와서 원래 내려 갈려던 곳으로는 못 내려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올라온 곳으로 다시 내려가야 하는데... 올라가는 건 어떻게 해서든 올라가면 되지만, 내려가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등산화를 신으라는 경고에도 불과하고 그냥 운동화만 챙긴 게 큰 잘못이었다. 그것도 내 운동화가 밑창이 닳은 것을 챙겼기에 더욱 위험했다. 게다가 비가 올 것을 전혀 예상하지 않은 난 미끄러운 산길을 내려갈 생각에 걱정이 이만저만이었다.
한 발 한 발 조심히 걷는데.. 중간정도 내려갈 즈음 굉장히 돌이 미끄러울걸 체감했다. 여기서 넘어졌다가는 이대로 먼 타국에서 죽을 거라고 확신이 들어 더 조심조심 내려왔다. 이 글을 보는 누군가가 오녀산성을 갈 계획이 있다면 반드시 등산화를 신으시라, 운동화를 신는다 해도 오래된 것은 결코 안된다. 밑창이 닳은 신반을 신고 갔다가 정말 죽을뻔했다.
다행히 무사히 내려왔다. 사람이 다칠 위기에서 벗어나니 만족함을 모르고 또 아쉬움이 올라왔다. 아 정말 오녀산성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가는 건가? 기대했던 거만큼 보이지 않으니까 많은 미련이 남았다. 나도 모르게 "진짜 지겹게 안 보이네.. 너무하다.."라는 뉘앙스의 말을 읊조렸다. 이 말을 내뱉은 지 얼마 안돼서 기적이 일어났다. 갑자기 바람이 불더니 구름이 좀 걷어지며 오녀산성 윗부분이 드러났다.
내 혼잣말을 들은 가이드님이 "추모왕이 징징거리는 거 듣고 해줬나 봐요"하고 웃었다. 정말 가이드님 말대로 나의 한탄을 추모왕이 들어준 걸까? 갑자기 전혀 보이지 않던 오녀산성 윗부분이 모습을 때마침 모습을 드러냈다.
적어도 올랐음에도 오녀산성의 외관을 제대로 보지 못한 대참사는 막았다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아쉽다 생각하던 차였다. 아쉬운 채로 하산하던 중 박사님과 가이드님이 혹시 오녀산성이 보인다면 내려서 구경하자고 하셨다. 말로는 알겠다고 대답하면서 멀리 서는 안보이겠지.. 라 생각하며 기대를 저버렸다. 주차장으로 이동한 뒤 버스를 타고 이동하였다. 기쁨과 아쉬움이 공존하던 그때 박사님의 한 마디가 들렸다.
여기서 보면 되겠다.
이후 버스가 멈췄고 가이드님도 환하게 한 마디 하셨다. "졸본성 보시면 됩니다!" 그 말을 듣자마다 곧장 안전벨트를 풀고 가장 먼저 발걸음을 내디뎠다. 하늘에는 여전히 연무가 자욱하여 불안한 마음을 품은 채 고래를 돌려 멀리 바라보았다.
고구려 첫 도읍, 오녀산성 그 존재 자체만으로 웅장한 저 성 이 조용히 나를 반기고 있었다.
밤 12시에 버스에 몸을 맡긴 뒤 아침에 비행기를 타고 차를 타고 달려왔음에도 연무로 인해 오녀산성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줄 알았다. 그리 체념하고 가던 중에 모습을 보니 더욱 감동적이었다. 정말 사진을 찍을 생각을 못하고 한참을 보았다
저곳이 고구려의 첫 도읍 오녀산성, 주몽 아니 추모왕이 나라를 저곳에서 나라를 세우며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고구려가 시작됐다. 저 웅장한 모습을 보니 조금씩 쌓였던 불만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 순간의 감동을 위해 10년 넘게 역사를 좋아했고 보이지 않다가 모습을 드러낸 것일지 모르겠다. 저 높은 산 위에 쌓은 성을 보는 것만으로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이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독수리가 절벽 위에 둥지를 트는 것은 적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세상의 위로 날기 위해서다. 이미 요동지역까지 치고 들어온 한족들이나 평원을 차지하고 부유한 삶을 추구하고 있는 부여족에게 이곳은 눈에게 차지 않는 지역이겠지만, 주몽은 이곳에서 위대한 가능성을 보았다. 그것이 눈앞의 이익만 좇는 지도자와 웅지를 품고 모험을 꺼리지 않는 영웅의 차이였다.
-임용한 저 한국고대전쟁사 1권 p38
오녀산성을 생각하면 대학교 1학년때 읽은 『한국고대전쟁사 1』의 구절이 늘 생각난다. 고구려는 험난한 요새에 도읍을 한 이유는 단순히 방어만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었다. 당장은 방어에만 올인한 것으로 보여도 주몽의 눈에는 훗날 요동과 여러 제(諸)국들에 진출하기 위한 확실한 교두보였고, 교두보로서 이곳은 적합했다. 그리고 이 성에서 버틴 고구려는 훗날 요동과 여러 나라들을 다 영역화 한 제(帝)국으로 성장한다.
도착한 내내 아쉬움을 느끼다 절정을 찍은 뒤 기대감을 채우니 모든 게 달라 보였다. 그토록 원망스럽던 구름은 추모왕이 타고 간 용처럼 보여 오녀산성을 수호하는 거 같았고 산 전체가 거대한 성벽으로 보였다. 저 웅장한 모습 자체로 "이것이 고구려다"라고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저 오녀산성 자체만으로 그동안 역사책을 읽으면서 상상만 하던, 사극으로 배우들의 연기로도 느끼던과 결이 다른 "진정한 고구려의 기상"을 느꼈다. 일행들도 보면서 다들 "와..." 이런 단마디를 내뱉으며 감탄하며 저 성을 봤다.
답사 가기 전 유홍준 선생님의 『국토박물관 순례 1 』을 읽었는데 유 선생님은 오녀산성과 고구려 고분군을 보면 고구려의 기상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처음엔 초기 고구려 유적인데도 그럴 수 있다는 게 의문이었는데 선생님의 말이 맞았다. 그야말로 백문이 불여일견이었다.
오녀산성을 감격하며 보니 순식간에 20분이 지나니 가이드님이 이제는 식당으로 이동하자고 했다. 한분씩 버스에 올라타는데 나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분들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어서 시선은 오녀산성에 꽂힌 채 버스로 조금씩 움직였고 버스 문 앞에서 5초간 더 바라보다 탔다.
내가 버스 계단에 발을 올리고도 10초간 더 바라보고 버스에 올라타니 가이드님과 김용만소장님이 많이 아쉬우세요? 하고 웃으셨다. 버스가 떠나가면서도 나는 창밖으로 오녀산성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보는 내내 "이제 이곳을 또 언제 와볼까.." 하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그렇게 고구려 유적과의 첫 만남을 마무리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언젠가 다시 볼 날이 있기를 기약한다.
오녀산성에서 30분 정도 버스가 달려 식당에 도착했다. 저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메뉴로 나왔는데 케첩맛이 강한 깐풍기가 내 취향이었다. 여기서 식사를 하면서 일행분들과 대화를 처음으로 제대로 나눴다. 젊은 분이 이런데 와서 신기하다, 어디 살아요 등... 그리고 박사님들께 "우리 역사 최고의 명장이 누구냐"등 재밌는 질문에 답변하는 걸 같이 들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이때 여러 일행분들이 나를 무려 "20살 혹은 고등학생"으로 보셨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이동했다. 호텔로 이동해서 키를 받은 뒤 씻고 잠들었다. 원래 9시에 일행끼리 근처 마트에서 주전부리라도 사기로 했는데 장거리를 이동한 여독으로 기절하듯이 잠들었다. 그렇게 고구려 답사 첫날을 마무리했다.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