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첫 날 광주에서 인천, 인천에서 중국까지 장거리 이동에 피로가 누적됬는지, 숙소에서 무려 10시간이나 자고 일어났다. 식사가 6시 반부터 된다 했는데 그보다 1시간반이나 일찍 일어났다. 혼자 쓰는방이라 눈치볼게 없어 크게 하품을 하고 바로 씻으러 갔다. 어제 자기전 챙겨둔 옷으로 갈아입고 짐 정리를 했다.
창밖 새벽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산세가 험악하게 보이지만 한국과 큰 차이는 없아보였다. 그럼에도 호텔에서 본 환인의 풍경은 확실히 낯설었다. 심지어 한국과 시차까지 나니까 고구려 역사에 대해 약간 거리감이 들었다. 머릿속에서 "이 지역에서 시작했다고? 멀기도 하다.." 이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식당으로 이동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체크아웃할때 까지도 몰랐는데 이제보니 엘리베이터 구조가 상당히 답답해보인다.
중국에서 첫 아침은 호텔식 조식이였다. 한입 먹자마자 기대를 버렸다.
속된 말로 맛대가리가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건 맛이 예의없는 수준이다. 볶음밥은 오로지 기름지기만 하고, 볶음면은 차갑고, 만두는 차갑고 퍽퍽하다. 오로지 먹을만한 것은 삶은 달걀이었다. 삶은달걀만 두 개를 빨리 먹고 화급히 올라갔다. 빨리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올라와 한국에서 챙겨온 비상식량 하나 까먹었다.
체크아웃을 하러 엘레베이터를 탈때 일행분들을 만났다. 일행중에 초등학생 아이를 데려온 분이 계셨는데 그 아이가 "왤캐 차만 타고 다녀" 라고 투정을 부렸다. 그 분이 당황하며 머쓱하길래 분위기 풀어줄라고 "고구려 라는 나라가 너무 커서 그래 조상님들좀 이해해주라" 라고 했다. 아버님 분이 "크긴 크네요"라고 받아주셨다.
호텔 앞에서는 혼강이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어제는 칠흑같이 어두워 평지인줄 알았다. 하지만 평지가 아니라 혼강이였다. 가기전에 사진을 남겼다. 혼강을 찍으면서 박사님이랑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데, 기억이 안나는걸 보니 역사이야기는 아닌거같다.
아무튼 혼강을 찍은뒤 버스에 다시 올라 둘째날 답사가 시작됬다. 버스가 출발하기전 박사님이 갑자기 "신민부 참의부 그 다음이 뭐였지?" 라고 물어보셔서 얼떨결에 "독립군 단체면 정의부요..! "라고 답변했다. 이따가 설명해야할건데 갑자기 기억이 안나신다해서 나에게 사실확인차 물어보셨다. 순간 중학생 시절 학교 역사선생님과 대화가 떠올라 웃움이 났다.
둘째 날 첫 답사 장소는 미창구 장군묘다. 그동안 난 고구려사에 관심이 많았지만 이 무덤은 생소하다. 박사님의 설명을 들으니 "환인 지역 유일 벽화 무덤"이었다. 고구려 벽화를 실물로 볼수 있나 싶었는데 아쉽게 그건 안된다고 한다. 그렇게 버스로 이동하는중 가이드님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셨다. 중국인들의 풍습? 요즘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시다가 가이드님이 시진핑 정권에 대해 강한 비판을 날리셨다. 답사 도중 가이드님이 끌려갈까봐 걱정됬다.
한국 시골 민가 같은데에서 하차했다. 쭉 직진하면 미창구 장군묘 가 나온다고 한다. 정말 관광차원에서 여행사를 끼고 왔다면 여기를 와보지도 못했을것인데 오기를 정말 잘했다.
쭈욱 걸어가다 큰 언덕같이 보이는게 저 멀리 보였다. 언덕이 아닌 무덤이였다. 처음 보는 고구려인의 무덤 이라 좀 넉 놓고 봤다. 남한 지역에는 이런 고구려 대형무덤이 없다. 내가 몇번씩 가는 서울에도 고구려가 땅을 차지했고, 그곳을 차지하기 위해 병사들이 피는 흘렸지만, 저런 무덤은 상류층의 무덤은 없다. 첫 대면하는 고구려인의 무덤이라 기분이 오묘했다. 그토록 좋아하던 고구려의 사람을 실제로 보는 것 같았다.
이 무덤의 주인을 고구려 시조 추모왕, 반란을 일으킨 발기왕자등으로 추정하는 경우가 많다한다. 다만 추모왕의 무덤으로 보기엔 연도가 안맞고, 고국천왕의 동생 발기 무덤이라고 보기엔 반역자 무덤을 만들어준다는게 이해가 안갔다. 결정적으로 벽화 내용이 5세기 후반에 유행한 것이라 5세기 고구려 왕족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놀랍게도 이 무덤의 안내판에는 고구려 황(皇)실 의 무덤이라 적어놨다. 신기했다. 우리나라만 해도 고구려를 제국이라고 하는건 많이하지만, 칭제를 한적이 없기에 황실 운운하면 바로 유사역사학 취급인데 무려 중국에서 이런 표현을 쓰니 신기했다.
고구려 왕족의 무덤이면 광개토왕이나 장수왕의 인척일거라 생각하고 박사님께 여쭸더니 대화가 잠시 엇나갔다. 광개토왕과 장수왕의 관계를 물어본것으로 들으시고 둘은 부자관계라고 하셨다. 무덤 주인 이야기 라고 다시 말한뒤 정정했다.
미창구 장군묘를 아래에서만 둘러본느게 아니라 장군묘 위에 올라가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묘 맞은편 산을 '용산'이라고 한단다. 추모왕의 장사를 지낸 곳이 저 곳이라 생각하니 어제 본 오녀산성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함께 떠올리니 풍경이 신화속 명장면 같았다. 구름속에 휘감아진 오녀산성, 이름 그대로 용처럼 생긴 용산, 그리고 땅에서 계속 피어오르는 수증기 까지. 놀라운 곳이었다. 마치 초기 고구려 유적이 신화와 역사의 중간을 나에게 보여주는것 같았다.
무덤 위에서 내려올떄 이전에 중국을 갔던 후배들의 조언이 났다. 후배들은 고구려 고토는 험난하다는 무조건 운동화, 아니 등산화를 챙기라고 했다. 등산화가 없는 나는 일정이 험난한 날에는 운동화, 무난한 날은 컨버스를 챙겼다. 오늘 일정은 무난하다고 생각해 컨버스를 신었는데 무덤 위로 올라갈꺼라 생각을 못했다. 조금 미끄러지긴했지만 무사히 잘 내려왔다. 그리고 다음 답사지 하고성자성으로 이동했다.
금방 하고성자성지에 도착했다. 이 곳에는 정말 간판말고는 아무것도 없다.이 곳이 고구려의 첫 도읍이었을것이란 표지판만 있을뿐이다.
그렇지만 하고성자성에서는 오녀산성이 멀리서 잘보였다. 글로만 읽던 고구려의 이중 도성체제가 새삼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됬다. 넓은 평야에 있는 평지성, 그리고 해발 800m나 되는 오녀산성, 이렇게 두 개의 도성을 유지한다는거구나 싶었다. 이러한 이중 도성체제가 국가의 힘을 분산시키는게 아닌가 하는 궁금증이 새삼 생겼다. 곧 바로 근처에 있는 상고성자 무덤떼를 보러 갔다.
아쉽지만..이 곳도 출입을 금했다. 문앞에서만 봐야할뿐이었다. 고구려인들의 무덤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지만 육안으로 보면 돌무더기만 있는거 처럼 보인다.
초기 고구려인들이 묻혔던 무덤을 좀 더 가까이 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고구려 초기 무덤일것인데 적석총-석실봉토분으로 발전했다는거만 기억하니까 박사님 설명없이는 관람이 힘들정도였다. 아는만큼 보인다는데 아는게 적다보니 아쉬웠다.
이후 점심을 먹으러 왔다. 식당 건물이 학교 근처에 있는 열도지 라는 식당과 굉장히 유사했는데 식사는 어제 먹은 점심,저녁과 유사했다. 크게 맛있지도 그렇다고 심각하게도 맛이 없는것도 아닌 식사였다.
점심을 먹고 다음 답사지 자안산성을 갔다. 아쉽게도 자안산성은 보지 못했다. 관계자들이 아직 외국인에게는 공개를 안한다는 이유로 가로 막혔다. 외국인에게 공개 안한다는 말도 어이가 없는데, 중국측에서 당신들이 어떻게 여기를 알고 있냐는 이유로 추궁 한뒤 공안을 불러냈다. 순간 억울하고 화가 났다. 한국인들이 고구려 성을 보고 간다고 중국의 동북3성이 남한에 넘어가는것일까? 그렇지만 여기서 화를 내면 상황이 안좋아지니 그저 참고 나왔다.
주차장에 고구려 고분벽화를 저런식으로 해놨다. 고구려를 관광자원으로 쓰려는 중국의 의지가 느껴지면서 가장 큰 고객인 한국인은 출입을 금하니 현실이 야속할 뿐이다.
따라오는 공안을 따돌린뒤 이동하면서 자안산성을 창밖에서 바라만 봐야했다. 멀리서 보는거지만 성벽이 온전해 보였다. 국내성 북쪽을 지키는 성 중 하나였을것이라는데..올라가보지도 못하니 아쉽다. 원래는 마지막 날 보는 백암성과 비교할 생각이었는데 근처에서 쫓겨나니 아쉽고 아쉽다
사실상 이 날 답사는 이렇게 마무리 되고 쭉 이동할뿐이었다. 남은 일정은 오로지 끝 없는 이동이였다. 환인에서 이도백하까지 거리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보다 더 멀었다.
한참을 달리다 어느 휴게소에 왔다. 이 휴게소는 특이하게 중국군 업적?을 기념하는 곳이었다. 거기에 북한군과 중국군이 함께 싸운걸 캐릭터로 만든뒤 베개커버로 파는걸 보고 당혹스러웠다.
중국 휴게소에 의외로 한국과자가 많다. 심지어 까르보 불닭볶음면도 판다. 다 아는 맛이기에 굳이 안샀지는 않았다. 대신 음료수를 살려고하는데, 음료수 일부만 냉장고에 넣어두고 대부분은 실온에 두어 판매한다.
다행히도 냉장고에 넣고 파는 극소수 음료수가 있어서 그중 하나를 샀다. 중국에서는 콜라가 굉장히 싸다고 하다. 그럼에도 요즘 탄산을 줄일려고 해서 이온 음료를 샀다. 맛은 이프로랑 똑같다.
또 한참을 달렸다. 환인에서 이도백하까지는 가까울줄 알았는데 거리상..서울에서 부산까지 정도 거리였다. 대체 고구려는 얼마나 영토가 광활한 것인지 모르겠다.
한참을 달려 6시가 넘어갈즈음 이도백하에 도착했다. 식사는 조선족분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해결했다.
중국식 식사가 좀 지겨워졌는데, 여기 음식은 마음에 들었다. 특히 삼겹살같은게 있어서 만족하고 먹었다.
눈에 들어온건 이 식당에서 판매하는 북한 맥주다.
이 짤이 생각난 나머지 바로 구매했다.
숙소에 와서는 내일 백두산 등산을 위해 우비를 하나 산 뒤 누워서 책이랑 유튜브좀 봤다. 초기 고구려 관련 글이랑 내일 볼 백두산 천지 풍경이든 여러개를 찾았봤다. 맥주를 한잔 하고 잠에 들려 하는데 호텔의 난방이 부족했다. 그래서 다 쓴 패트병에 따뜻한 물을 담아서 껴안고 잤다. 그렇게 이틀째 답사가 마무리 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