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눈내리는 백두산

by 선재


백두산은 우리 민족이 영산으로 받들어온 산이다. 애국가에도 등장할 만큼 상징적인 존재이며, 비록 현재는 중국과 북한이 나눠 점유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우리의 땅으로 여기고 있다. 백두산을 신성하게 여긴 것은 우리 민족만이 아니다. 특히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 또한 이 산을 영산으로 숭배했다. 이처럼 백두산은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 전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산이다.


『고려기』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마다산"이 나라 북쪽에 있다. 고려에서 이 산이 가장 크니, [그 골짜기] 30리 사이를 필마로만이 다닐 수 있으며, 구름과 안개가 뭉게뭉게 피어올라 종일 개지 않는다. -한원
고려 선조 주몽이 부여로부터 이곳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말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는데, 길을 가다 이 산에 이르러 갑자기 말떼가 굴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몸집은 작으나 [생김새는] 빼어났다. 이 때문에 마다산이라 부른다-한원

고구려 역시 그러했는데, 백두산을 마다산으로 부르며 시조 추모왕이 부여에서 내려오며 이곳에서 말을 얻었다는 설화가 생겼다.


그런 백두산이 3일차 코스의 전부였다. 민족의 영산이자 광활한 천지, 웅장한 천지가 보고싶어저인지 눈이 일찍 떠졌다. 물론 난방이 잘안된 이유도 있겠지만..아무튼 눈이 일찍 떠져 씻고 짐을 챙겼다. 천지를 보기 위해서는 일정이 타이트 했다. 식사하고 체크아웃하는게 아닌 짐을 다 챙겨나온뒤 식사하고 바로 버스를 타고 백두산을 향해 가는 계획이었다. 다행히 일찍 일어나서 그렇게 타이트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 날의 아침은 전날 대비 만족스러웠다. 이상한건 없었고 아침부터 양꼬치가 나왔는데 괜찮았고 토마토 달걀 볶음도 밥에 올려 먹으니 괜찮았다.


일행분들과 식사를 하는데 역사 전공자분들께서 내가 사학과 학생인걸 알고 관심을 갖고 말을 거셨다. 대화하다가 군대는 언제 가냐고 물으셔서 갔다왔다고 답변하자 모두 놀라셔서 당황했다. 무려 나를 20살,21살로 봐주신 것이다. 이 글을 통해 다시 감사드린다. 이때 들은 과찬을 근거로 하며, 후배들이 나이먹었다고 놀리면 제3자 시선엔 나랑 너네가 동갑으로 보인다고 당당히 주장중이다. 아무튼 김용만선생님 어떻게 아냐, 역사가 언제부터 좋아했냐, 고구려 답사 오니까 어떠냐 등 여러 질문을 하셨다. 사학과 학생이고 답사 일행에 미성년자들을 제외하면 성인들중 가장 어려서 그런가 질문에서 굉장히 애정이 묻어나셨다. 나 또한 최대한 예의 있게 답변하면서 즐겁게 이야기하며 식사를 마무리 했다. 그뒤 버스에 올라 백두산을 향해 출발했다. 그런데 가이드님이 하는 말씀이 충격적이다.


백두산에 눈이 왔다고 합니다...폭설이..그래서 천지를 못본다고 합니다.


예? 5월에 눈이요? 귀국후 알아보니 무려 백두산은 7월에도 눈이 오는 산이라고 한다. 물론 5월이 넘어가면 극히 희박하다고 하지만 아쉬운건 어쩔수 없다. 이 답사에서 유일하게 아쉬운건 백두산 천지를 못본거 뿐이다.


백두산 가는 티켓을 가이드님께 받았다. 워낙 철저히 관리해 표와 여권도 동시에 검사한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처음엔 눈이 왔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불과 10분도 안되서 산이 눈으로 덮혔다. 아 봄중에도 눈이 오는 백두산..이 광경을 보니 나도 모르게 군대에서 4월말까지 눈치운게 생각났다.

내가 사는 광주는 이미 벛꽃이 피고 졌는데 설경을 보니 너무 신기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백두산의 풍경이 아름다웠다. 이 산 중턱만 해도 아름다운데 천지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감히 상상히 가지 않았다.

버스에 내리자마자 눈이 휘둥그래졌다. 설경이 너무 아름답고 웅장했다. 아니 웅장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였다. 우리 민족과 만주족이 과히 영산이라고 추앙하는게 바로 납득이 된 산이였다.


실물로 봐도 어색해 눈을 만져봤다. 정말 눈이다.


우비를 안입으면 못갈 수준으로 눈이 계속 내린다. 설경이 너무 아름다워 옆에 계신분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이 분이 사진에 되게 능통하셔서 정말 사진이 내 마음에 들게 나왔다.


산이 미친듯이 크다. 글로는 설명이 안되게 웅장한 곳이였다. 설경을 한참 보다 우리 일행이 출발한다고 해서 따라갔다. 사람이 너무 많아 길을 잃을꺼 같다고 생각할때


가이드님이 센스 있게 삼족오 깃발을 가져 오셨다. 삼족오 따라오면 된다고 길 잃을일이 없다고 하셨다. 삼족오 깃발을 따라 올라가니 베이스캠프?같은곳에 왔다. 매점과 기념품 숍, 화장실등이 있었는데 진짜 사람이 쏟아지듯 많았다.

백두산에 있는 온천지대, 얼어붙은 산과 대비되어 신기했다.


장백폭포를 올라가던 중 눈이 너무 내린다고 출입금지를 먹었다. 아쉽지만 설경을 보면서 하산해야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됬다.


문제는 하산을 하는 길이...너무 미끄러웠다. 심지어 내 운동화 밑창이 많이 닳아 있어서 다리에 힘을 많이 주지 않으면 쉽게 미끄러졌다. 먼저 걸어간 사람들의 발자국을 그대로 밟으면서 걸어갔지만..폭설로 인해 그 발자국들도 금새 사라졌다. 힘들게 힘들게 걸어가니 어느순간 나 혼자 있었다. 나 혼자 있을때를 자각했을때 부터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길이 더 미끄럽다. 한 발 한 발 내딛을때마다 넘어지니 도무지 답이 없었다. 결국 난 한 가지 방법뿐이었다. 진화론을 역주행하여 4족보행을 택했다.



정말 이렇게 백두산을 기어 내려왔다. 비록 맨손이라 손이 시려웠지만, 방법이 없었다. 이미 내 다리는 이 미끄러운 내리막을 견딜 힘이 없었고 이동할 방법은 두 다리, 두 팔을 모두 이용해 내려가는 방법이였다.


문득 옆을 보니...그 많은 인파중 4족보행을 하는건 나뿐이였다. 어린아이들은 미끄러우면 썰매타듯이 내려가다가 중간에 다시 걸어가고, 대부분 사람들이 넘어질뻔하더라도 주변 사람들끼리 의지하며 어떻게든 걸어내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일행과 떨어진 나는 방법이 없었다.


힘들게 내려왔다.

그렇게 5분간을 4족보행하며 내려오는데 어느 중국인아저씨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물론 나는 못알아먹지만 손짓발짓을 하는걸 보고 일단 두 발로 일어 서라는거 같아서 허리를 피고 일어났다. 그 아저씨는 손짓으로 오른쪽 길이 오히려 눈이 많지만 안미끄러우니 더 괜찮을거라는? 식으로 표현했다. 4족보행하다가 허리가 아팠던 나는 그 아저씨 말을 믿고 온 힘을 짜네 오른쪽 길로 몸을 옮겼다. 다행히 아저씨 말 처럼 눈이 깊을뿐이지 미끄럽지는 않았다. 나는 고마워서 "쎼쎄" 이랬더니 그 아저씨는 "코리아 굿굿 " 하고 순식간에 아래로 하산했다.



힘겹게 내려오니 김용만 소장님과 일부 몇분은 이미 내려오셨고, 대부분 다른분들은 아직 하산중이셨다. 아마 내 신발이 문제라 유난히 내가 힘들었던거 같다.


맨손으로 눈을 만지며 내려오니 몸이 으슬으슬해졌다. 추위를 덜타는 몸이지만 뭐라도 먹고 싶었다. 매점에서 계란은 줄이 너무 길고해서 소세지를 사먹었다. 이걸 너무 허겁지겁 먹다가 가이드님과 눈이 마주쳤는데 둘다 웃음이 터졌다. 온몸에 눈이 쌓인채 먹고 있는 내 꼴도 웃겨서 할말이 없었다. 이후 소천지나 작은 폭포를 보고 점심을 먹은뒤 하산하기로 했다. 점심때 몇몇 선생님들이 인삼주를 좀 주셨는데 먹으니 속이 따뜻해서 좋았다. 더 마시려다 참았는데 귀국하고 후회중이다.


하산하려면 버스를 타야했다. 버스를 타러가며 김용만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취직문제,대학원 진학문제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선생님은 내가 책을 내는 작가가 되고 싶다니까 아낌없이 조언을 해주셨다.


1. 서평을 많이 써봐라
2. 챗gpt를 잘 활용해라
3. 글쓰기 책을 많이 참고해라(보유한 책-유시민,이오덕,역사글쓰기 이외에 박종인 기자 책 추천)


조언을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었는데 두고두고 피가 되고 살이 될 조언이다. 현재 대학원 준비하고 브런치에 글을 쓰는 지금 너무 도움되고 있다.


백두산에 뜬금없던 맘모스


하산하는 코스중에 뜬금없이 맘모스 박물관이 있었다. 여기를 나오고도 버스를 총 2번 타야했다. 첫 번째 버스를 타고 내린뒤 중간에 맘모스 박물관을 통해 나오면 2번째 정류장이 있다. 그곳에서 한번 더 타니 백두산 입구쪽에서 내려줬다.


버스를 두번이나 갈아타니 매우 피로해졌다.

백두산 최고 광견

피곤한 몸을 이끌고 우리 버스로 있는곳으로 향하던 중 저 개가 갑자기 우리 일행을 공격하려 했다. 가이드님이 쫓아내셨지만 너무 놀랬다. 근처 개고기 식당이 있다면 저 개가 그곳으로 필히 들어가기를 바란다.


천지를 못봤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백두산을 떠났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바로 잠이 든거 같다. 1시간정도 푹 수면을 하니 온 몸에 피로가 풀렸다. 버스에서 잤어도 목베개가 있어서 그런거 같다.


그전날 호텔에서 산 젤리를 먹으며 가방에 있던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저 젤리가 참 맛있었는데 저 이후로 본적이 없다. 아쉽다.


한참을 더 달려 통화시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 날 식사는 "삼겹살" 즉 한식이다.

처음엔 내가 고기를 구웠다. 주변에서 후배들 고기 좀 구워줬나봐요~ 라는 말이 나와서 왠지 부끄러웠다. 고생을 하고 오랜만에 한식을 먹으니 정말 평소보다 더 들어갔다. 미친듯이 먹다가 선생님들이 고량주를 따라줬는데 그냥 그것도 벌컥벌컥 먹었다. 45도 정도로 강한 술이였는데 삼겹살과 먹으니 되게 괜찮았다. 나중에도 삼겹살에 고량주를 한번 먹어봐야겠다.


술과 함께 먹으니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다른 선생님들이 코로나를 겪은 20학번의 대학생활이 궁금하신지 대학생활 관해서 엄청 많이 물어보셨다. 그래서 1학년때부터 지금까지의 학교 생활을 간략히 이야기 하고 중간중간 웃겼던 썰등을 풀고, 지금은 어떠냐고 해서 24학번과 주로 다닌다고 했다. 내 이야기를 들으신 어느 분이 나 보고 "후배들에게 좋은 형이네~" 하셔서 되게 감사했다.


숙소 체크인을 할즈음 천지를 못간 비용으로 마사지를 받는다 해서 받으러 갔다. 마사지는 나쁘지도 엄청 좋지도 않았지만, 마사지사가 팁을 내놓으라고 난리를 쳐 실랑이를 벌였다. 현금 환전을 많이 안한 나는 그냥 안줄건데 어쩌라고? 이런식으로 나갔지만 결국 옆에 계신 다른분이 내 팁까지 내주셨다. 참...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일이다.


이 안좋은 기분을 풀려고 중국 유명 아이스크림인 미쉐에서 오레오소프트콘을 배달해 먹었다. 아 물론 배달시킨건 가이드님이고 나는 나중에 돈을 드렸다.


일행분들중에 중국식 찜닭인 황먼지 혹은 양꼬치를 먹자고 해서 밖에 나왔는데 거리가 너무 무서웠다. 결국 호텔로 복귀.




결국 아쉽게도 혼자 그 전날에 산 대동강맥주와 평양맥주를 아이스크림과 감자칩을 안주로 먹고 언능 잠에 들었다. 빨리 잠에 든 이유가 피곤해서도 있지만 다음날 목적지가 너무 설레서 어서 가고싶었다.



다음날 목적지는 바로 집안 이다. 고구려의 2번째 수도 국내성 말이다. 비록 천지는 못갔어도 고구려인들이 3일날 일정은 고구려 유적을 보지 않았지만, 4일차에는 수없이 볼 예정이다. 국내성,환도성,집안박물관,고구려고분까지..어쩌면 가장 많은 일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들뜬 마음으로 잠에 들지 않을까해서 술을 좀 빠르게 들이켰고 술기운이 올라오자마자 잠에 들며 답사를 마무리 했다.




고구려 국내성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지난주 올리지 않았어서 바로 다음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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