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수도 국내성을 하루종일 다녀요

by 선재

5월4일

국내성과 환도산성 답사 날이지만..그 전 날 술을 먹고 늦게 기상할거 같다는 걱정을 했다. 그러나 내 걱정과 달리 집안에 간다는 설렘덕분인지 식사시간보다 1시간 일찍 넉넉히 일어났다.


5월 3일에 삼겹살 이후 정말 모든 식사가 입맛에 너무 잘맞았다.

빠르게 씻고 아침 식사하러 갔는데, 아침 식사는 훌룡했다. 그 전날 식사로 나온 삼겹살 이후로는 모든 식사가 다 마음에 들었다. 그 덕분에 입국하고 몸무게를 재어보니 살이 쪘다. 아무튼 샌드위치든 또띠아든 맛있게 먹은뒤 곧 통화시에서 집안시로 이동했다. 1시간 정도 소요 됬으며 길이 막히지도 않아서 금새 이동한 것 같았다.


집안에 도착했다는 가이드님의 말을 듣자마자 구글맵을 켜봤다. 북한과 굉장히 가깝다. 압록강 넘어 북한 공장이 보여 조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군복무 시절 gop에서 복무해서 북한땅, 북한인의 실루엣을 처음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군인도 아닌 북한 민간인, 북한의 민간 시설을 본 건 처음이라 기분이 남달랐다. 보는 내내 김구,여운형,김규식 선생님들이 분단을 막기 위해 노력한 것과 뒤틀린 남북관계등이 떠올랐다. 북한과 가까운 만큼 이 땅이 한때 고구려의 영역이란게 잘 체감되기도 했다. 환도산성 가는 길에도 민가에 고분들이 조금씩 보였고 집안시 자체가 고구려를 관광 상품으로 만들려고 굉장히 노력중인게 잘보였다.


환도산성 가는길, 왼쪽에 버스 앉으신 분들이 고분이 보인다고 했는데 나는 잘 보이지 않았다.


이 날 무척 날씨가 좋았는데, 내리자 마자 감탄이 나왔다. 사진에는 다 담기지 못했지만 높은 산에 있는 성벽과 그 아래 끝없이 이어지는 고분군은 보자마자 나를 사로 잡았다.


내리자마자 적석총 고분군과 성벽이 함께 보였다. 고구려 성벽과 고구려 고분이 함께 있는걸 보니 정말 제대로 찾아왔다고 생각됬다. 어서 보고싶어졌지만 장거리 이동을 했기에 잠깐 화장실에 들린뒤 다들 모여서 가기로 했다. 화장실에서 나온뒤 소장님은 나에게 "많이 봐두고, 잘 기억해라, 사료나 논문 보고 치밀하게 공부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와서 느껴보는것도 정말 중요하다" 라고 여러 차례 강조하셨다. 그리고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되는건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한 눈에 봐도 고구려 성벽 특징인 "치"가 잘 들어났다. 성 벽 중간에 저 튀어나온 방어시설은 공격하는 군대에게는 측면을 허용하는 치명적인 곳이다. 치를 보니 중학생 시절 고구려 관련 다큐를 보고 집에 있던 레고 성에다 치를 설치하겠다고 싹 해체하고 재조립했던 기억이 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고구려 하면 설레고 들뜨는게 신기하다. 앞으로도 그럴까?



이 우물은 의례용 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이 곳은 전쟁 당시 방어시설이니 승리를 기원하는 의식을 이 곳에서 했을려나?



전형적인 고구려 성벽 모습. 항상 전공 책,ppt에서 사진으로만 보던게 내 눈앞에 있다. 괜시리 한번 만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날 날씨가 정말 좋아서 사진을 어떻게 찍어도 이쁘게 나왔다. 산세가 험한 곳인데도 선선한 바람과 따스한 햇살로 인해 모든것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나 내 감성을 철저히 파괴한 존재가 있었으니 중국 공안이였다. 중국 공안은 김용만 소장님부터 해서 한국인들이 해설하는건 물론이오, 본인들이 제공한 해설판만 읽어도 발작을 했다.


중국인이 한국인을 비하할때 "가오리 빵즈" 라고 하는데 이게 고구려 몽둥이 놈이라는 말을 들었었다. 중국 공안이 뭐라고 할때마다 연개소문에 빙의해 머리를 몽둥이로 치고 싶었지만 그럴수 없는 현실, 그냥 화를 참으면서 관람했다.


성안에는 작은 천이 흐르고 있다. 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계곡을 따라 흐르는 것이라 한다. 이런 물이 있으니 장기전에 유리한 곳이다. 거기에 성벽도 튼튼하고 남문 앞에는 통구하 라는 강이 흘러 천연해자를 하고 산의 능선에 따라 성벽은 높다. 고구려를 보고 성(成)의 나라 라고 많이 하는데 정말 과언이 아니다.


보는내내 성벽이 굉장히 두껍다고 느꼈다. 또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출입이 금해서 성벽을 따라 산성위로 올라가지 못했다. 성 위에서 고분군을 내려 다 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 즈음 중국공안이 무섭게 또 제지를 했다. 이런 제지가 환도산성 관람 내내 이어졌다.


이건 장대지 라는 곳이다. 처음 보기엔 적석총 같았는데 장수들이 병사를 지휘소 라고 한다. 입구에서만 있는줄 알았는데 이 곳의 직원들이 안내를 하고 있었다. 직원들 대부분이 고구려식 의복을 입고 있었다. 전에 이 곳을 온 분들도 이런적이 없다 했는데 고구려식 옷을 입고 있으니 신기했다. 다만 저들이 무슨 발언을 하고 있을까 감히 생각하면..갑갑해졌다.




자칫 지나칠뻔 했는데 건물을 만든 흔적이 있는 기단석이라고 한다. 이런것까지 알아봐야 고구려 전문가인가. 공부는 정말 한도 끝도 없구나.


한참을 성벽쪽을 보다 궁궐터로 발을 돌렸다.


환도산성은 전쟁이 났을때 피난 오는 곳이니까 궁궐이 작을수밖에 없다 생각했다. 그런데 왠걸 생각보다 궁궐터 크기가 유난히 커보였다. 오녀산성 보다 후대 성이라 그런지 건물터가 더 발전된 느낌이 더 들었고 보는 내내 붉은 기와를 한 고구려 왕궁이 있을 상상을 계속 하게 됬다.


계단과 터를 보며 고려 만월대 같은 건축물이었을려나? 하고 혼자 궁시렁 거렸는데 바로 옆에서 김용만 선생님이 아주 정확하다고, 그런 건축물이었을거라고 말해주셨다. 고구려을 전공한 박사님이 내 말이 맞다고 해주시니 중학생때부터 대학생까지 역사를 공부한 보람이 느껴진 하루였다.


왕궁이 남아 있었다면 정말 어떤 모습이였을까...

궁성터만 남은걸 보니 자연스래 관구검과 모용황이 고구려를 침략한게 상상이 갔다. 때 마침 김용만선생님이 모용선비족 이야기를 해서 귀 기울여 들었다. 고국원왕이 방어한 남쪽이 저쪽 일것이라며 가르키길래 고개를 돌렸다.


저 방향이 내가 삼국사기에서 수없이 읽은 그 남쪽 길이다.


왕은 아무 무를 보내 정예군 5만 명을 거느리고 북쪽 길을 막게하고,자신은 약한 군사를 이끌고 남쪽 길을 방비하였다.-삼국사기 고국원왕 본기


고무가 거느린 5만 정예군 중 1만이라도 고국원왕 휘하에 있었다면..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한편으론 모용황이 이 길로 쳐들어 왔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면서 길이라고 하기엔 너무 험해 보여 모용황도 고생을 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당시 저 길에 연 군이 보였을때 고구려인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고무가 이끄는 고구려 주력군은 아직 남하 하지 않았고, 태왕이 이끈 부대는 패하여 돌아온 상태에 저 곳에 연나라 깃발과 군사들이 보인다면 굉장히 위기감을 느꼈을것이다. 나에게는 모용선비 족이 쳐들어 오지는 않았지만 대신 벌레가 나왔다. 아무래도 산이라 너무 벌레가 많이 나왔다. 하도 아래에 지네같은 벌레가 나와서 10마리는 밟아 죽였다.


벌레들을 죽이다가 어서 이곳에서 사진을 한 장 남기고 싶었다. 평소 여행을 가면 내 사진을 안찍고 풍경만 찍어오는데 고구려 답사때는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일행분들에게 사진을 찍어달라 하니 그냥 자연스럽게 걸어가보라고 하시더니 사진을 이렇게 찍어주셨다. 주변에서 이 사진 보고 진짜 행복해보인다 하고 나도 잘나온거 같아서 만족스럽다. 주변에 있는 고구려 성벽도 잘나왔다.

사진 찍고 나니 왠지 뭔가 빨리 한 바퀴를 돈 거 같았다. 역시, 내가 전망대쪽을 보지 않고 그대로 내려온곳이었다. 다른분들은 어서 보고 오라고 해서 황급히 보고왔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환도산성, 고국원왕이 이곳에서 갑옷을 입고 모용선비족과 대치했을까?

모두가 환도산성을 둘러 보고 산성하고분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중국공안이 정말 끈질겼는데 우리 일행을 계속 따라왔다.


내가 한참 사진을 찍고 보니까, 용만선생님을 비롯한 분들이 이건 중국측에서 재현한 모조품이고 진짜 고구려인 무덤은 곧 나온다고 하셨다. 이 말을 듣고 굉장히 당황했다.


드디어 고분군 입구로 나왔다. 고분군 입구로 와서야 왜 앞서 본것들이 모조품인지 알게됬다.


진짜 고구려 고분들은 레플리카와는 확연히 달랐다. 돌의 색깔부터 달랐다. 빛깔이 천년을 넘는 세월을 견딘 무덤과 21세기에 조급하게 만든 모조품이 저절로 구분이 갔다.전에도 언급한 듯이 유홍준 선생님의 답사기를 보면 오녀산성과 산성하고분군에서 고구려의 기상이 잘느껴진다 하셨다. 정말이었다. 산 사이에 뻗어진 이 평야에 많은 고분군들을 보니 고대 국가 고구려가 확 느껴졌다.



일행 초등학생 어린이와 비교샷, 정말 되게 컸다.

적석총들은 실로 거대했다. 규모 면에서는 왕릉급인 천추총이나 장군총보다는 작지만, 그 위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토록 웅장한 무덤들이 과연 어떻게 조성되었을까. 저 무거운 돌을 어떤 방식으로 옮기고 쌓아 올렸을지, 자연스레 고구려인의 기술력과 집단 노동의 면모를 떠올리게 한다. 이성적으로는 그러한 구조적, 역사적 궁금증이 일었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지금 고구려인의 무덤 앞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깊은 감동을 느꼈다. 답사기를 쓰는 이 순간에도 가슴 한켠이 설레고 있다. 서울에 갈 일이 생긴다면, 고구려 무덤 대신 백제의 적석총이라도 꼭 찾아가 보고 싶다.


좀 더 깊숙히 들어오니 적석총이 아닌 고구려 고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반 흑무덤도 있고 굴방무덤이 나오고, 정말 다양한 무덤들이었다. 이렇게 무덤 종류가 다양하니 고고학 시간에 고구려 고분들을 공부할때 조금은 힘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이 즈음에서 소장님이 낸 책이야기가 나와서 어느분이 절판된 책들 개정판 안내시냐고 물어보셨다. 원고는 계속 고치는데 아직 성에 안차서 안된다고 하셔서 내가 냅다 "소장님 그러다 제 졸업이 먼저겠어요~'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몇몇 일행 분들이 다 웃었다.


공동묘지 임에도 불구하고 심하게 아름다워 보였다. 보면 볼수록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이 함께 있는 곳이었다. 죽은자와 산 자가 함께 있는 곳이라 생각하니 "죽은자가 산자를 살릴수 있는가?"라는 한강 작가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이 곳에서 전쟁을 준비하는 고구려인들도 죽은 조상들의 지혜로 자신이 사는 경험을 했을지 모른다.

대부분 고구려 유적을 말하면 광개토태왕릉비, 오녀산성,장군총,태왕릉 등을 떠올린다. 더 유명한 유적들에 밀려 환도산성은 존재감이 적었다. 나 또한 그랬는데 만족감이 상상 그이상이였고 날씨도 좋아 보는 내내 좋았다. 평양을 가지 못하는 지금 고구려의 성과 궁궐터를 볼수 있는 곳은 오녀산성과 이 환도산성뿐이다. 오녀산성때보다 훨씬 발전한 국가 느낌이 나서 고구려의 국력이 더 강해졌음이 몸으로 느껴졌다.


이 곳을 떠날때도 쉽사리 발이 떠나지 않았다. 몇몇분들이 담배를 피셔서 잠깐 시간이 나 주차장에서 환도산성과 고분군을 바라 봤다. 담배 피신 분들이 다 피셔서 이제 가야한다는 가이드님이 말이 들려 버스에 올라타러 갔다. 버스에 발을 올리기전에 한번더 내 육안으로 저 곳을 바라 본뒤 온전히 버스에 몸을 맡겼다. 언젠가 다시 보기를 간절히 바란다.


점심은 불고기였다. 뚝배기 불고기를 떠올렸지만, 실제로는 숯불에 구워 먹는 형태였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지만, 오히려 훨씬 더 만족스러웠다. 은은한 숯향이 배인 고기는 마치 야끼니꾸를 연상케 했고, 나는 이 고기를 고구려의 전통 음식인 ‘맥적’이라 여기며 더욱 맛있게 먹었다.


식사 도중엔 뜻밖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오갔다. 동행하신 소장님께서 과거 대하드라마 연개소문의 자문을 맡으셨던 일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작가 이환경 씨와 있었던 일화를 들려주셨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개인적으로 태조왕건을 만든 작가로서 좋게 생각한 사람이였는데 그런 비화가 있을줄이야. 연개소문 드라마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사극 전반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고, 영화 안시성이 언급되면서 고구려의 고당전쟁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로 번져갔다.


식사를 마치고는 일행들 사이에 장난기 어린 분위기가 감돌았다. 소장님께 “연개소문보다 더 이상한 작품인 광개토태왕이나 태왕사신기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라고 짓궂게 물었더니, 소장님은 정말 기겁을 하시며 자리를 피하셨다

식당에서 횡단보도 하나 건너니 압록강이 내 눈앞에 흐르고 있다. 저 강을 건너 북한이 보인다.


북녘땅을 보는데 차 타고 지나가는사람, 달려가는 사람들이 육안으로 보였다. 군대때 봤던 북한 군인이 아닌 평범한 북한인, 저 사람들도 남한에서 태어났으면 어쩌면 분단이 되지 않았더라면 좀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았을것인데 라는 안타까움도 들었다.


압록강을 쭉 보니 지난 학기때 썼던 내 세미나 글이 생각났다. 9월에 압록강이 얼어붙어 잘 방어하던 연남생이 대패한 전투를 쓸때 압록강을 한번은 직접 보고 싶었다. 이렇게 눈 앞으로 보니 괜히 저 북한땅에 고구려군 막사가 있는 상상이 된다. 물론 당시 계필하력이 집안일대까지 배를 타고 와 넘어온것은 아니겠지만.


가이드님께 이 곳에서 위화도가 머냐고 물어봤는데 차 타고 꽤 가야한다 했다. 아쉽다. 차 타고 지나가다 위화도가 보이기를 빌었는데, 아무튼 다들 압록강 구경을 하다 집안박물관으로 향했다.



집안박물관은 되게 가까웠다. 버스로 이동한게 아니라 압록강에서 횡단보도 하나 건너니까 바로 집안박물관이였다. 볼거리가 많았지만..집안박물관은 촬영을 일절 허용하지 않았다. 외국인은 여권까지 확인하는걸 보니 너무 철저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https://kr.trip.com/moments/detail/ji-an-2467-131185147/

(구글링을 통해 내부 사진 첨부합니다.)


그렇지만 박물관안에 그렇게 촬영을 금할정도로 외부에 유출되지 말아할 유물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굉장히 잘만든 고구려 박물관인것은 분명하다. 특히 태왕릉에서 출토된 유물들과 고구려 무사 동상과 뒤에 그려진 고구려 개마무사들을 보고 조금은 흥분됬다. 분명히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이정도는 할수 있으면서 안하고 있으니, 이런거는 마음에 들었다. 한편 그러면서 사진 촬영 안할정도로 특별함은 없다고 생각할때, 고구려 고분 벽화를 똑같이 복원해놓은것을 봤다.


오회분 4호분 벽화를 복원해놨는데 정말 고구려 고분 벽화에 들어온 것 같았다. 동서남북에 있는 주작,청룡,백호,현무 그위에 존재하는 수많은 신령들, 그외에 악귀를 짓누르는 수많은 용들과 하늘에 존재하는 신들, 그리고 가장 한 가운데 무덤의 정점을 지키는 황룡까지! 특히 황룡을 보고 좀 많이 놀랬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황룡이 있다는 것을 아예 까먹고 있었고 있었다. 나중에 한번더 온다면 집안박물관도 반드시 가고싶다.


집안박물관을 더 둘러보던중 어느 분이 나를 고구려사 전공 대학원생으로 보시고 "연구계획이 어떻게 되시냐"라고 여쭤보셨다. 내가 미쳐 학부생이라고 답하기전 옆에 다른 분들이 학부생이라고 "아직 애기여~학부생 맞죠?"라고 대신 답변해주셨다.

집안박물관에서 보고 나온뒤 민주 유적지를 보러 왔다. 솔직히 진짜 이번답사 이전에는 들어본적이 없다. 거대한 건축물이 있던곳으로 추측된다 해서 아불란사가 떠올랐다. 이곳일까? 이 민주 유적지는 원래 민가에 있었다하는데 최근에 그 민가를 싹 밀고 민주유적지만 남겨놨다고 한다.

민주유적지를 본뒤 칠성산 211호분에 왔다. 이 무덤은 도굴되어 상태가 매우 안좋다. 무덤이 한 개임에도 도굴때문에 쌍분으로 보일정도다. 이걸 가지고 서천왕 혹은 미천왕 무덤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 나 또한 그런 의견을 들은적 있다. 어떤 책인지 기억이 안나지만 개론서였던걸로 추측한다. 고구려 고분에 대한 설명을 하다가 훼손 되어 있으니 서천왕 혹은 미천왕 무덤으로 추정된다는 이야기가 나와있었다. 읽자마자 이건 아니지 않나? 라고 육성으로 뱉었다. 고구려가 무덤 수리도 안한다고? 시조묘에 가서 참배 하고 무덤 관리를 하는 고구려인들이? 도무지 납득 안되는 견해들이다. 생각이 통했는지 버스에 내리기전 김용만선생님도 서천왕,미천왕 무덤이라는 견해에 강하게 비판하시고 내렸다.


이 곳은 울타리가 쳐졌지만 근처 언덕에서 올라 고분을 한눈에 보기 쉬웠다.


너무 훼손이 심해 정말 쌍릉처럼 보인다. 이때 내려 오고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큰 뱀을 보고 잠깐 겁을 먹었다. 고구려 고토는 뱀도 남다르게 큰 거 같다.


칠성산 211호를 보고 나서 천추총을 보러 왔다. 천추총을 볼즈음 배터리가 극히 조금밖에 없어서 사진을 많이 못찍었다. 천추총은 소수림왕이나 고국양왕 무덤으로 추측되는 무덤인데 가까이서 보지 못하는게 아쉬웠다. 집안시 내에서도 좀 외진 곳에 있던데 관리 하기가 힘이 들었나보다.


천추총까지 둘러보고 호텔 근처에 있는 국내성으로 향했다. 처음엔 국내성 성벽은 아주 조금 남아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다르게 성벽이 아주 잘 남아 있었다. 성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으며 아파트 단지 그 일대를 두르고 있었다. 나는 정말 3m도 안되는 작은 담장으로 남아 있다고 생각했었다. 아마 사진에 나온 성벽 일부만 보고 이게 전부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정말 맹인이 코끼리 만지듯이 생각했었다. 직접 보니 이렇게 다르다. 아파트와 있는것을 보며 서울에 있는 풍납토성이나 몽촌토성이 떠올랐다. 부여계 국가들의 도성은 아파트와 함꼐 하는 것일까?


저 구멍에 고구려의 성문을 넣어 문을 열고 닫았다고 한다. 저 문을 통해 수많은 고구려 군대가 나가고 들어왔음을 상상했다. 백제와 후연등 고구려 주변 국가들을 정벌하러 출정한 광개토태왕의 군대, 당군을 막기위해 국내성에서 요동전선으로 달려간 군대 그리고 연남생이 당나라에 항복한 이후 연남건과 싸우러 출정한 군까지..수없이 많은 고구려 군이 이 문을 지났을거라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걷는 내내 국내성 성벽이 나를 따라 오는 거 마냥 느껴졌다. 꽤 많이 걸었다. 생각했어도 여전히 이 벽은 뻗어 있고 중간 중간 치를 뽐내고 있었다. 이렇게 잘남아있는 것을 다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럽다. 걷다보니 환도산성 성벽만큼 국내성의 성벽도 굉장히 두껍다고 생각됬다.

치 도 굉장히 많고, 성벽도 이리 두꺼워서 유사시 환도산성에서 피난을 못가도 여기서 응전해도 막을수는 있겠다고 생각이 계속들었다. 이 성벽을 도는데 1시간 정도 걸렸나? 이만 버스에 타 식사를 하러 떠났다.

저녁식사는 이외에도 더 많이 나왔는데 대체적으로 맛있었다. 특히 가지 튀김과 떡튀김이 내 입맛에 맞았다. 되게 맛있게 먹고 호텔로 향했다.

호텔 앞에 코끼리 동상 표정이 심상치 않다.

호텔에 왔는데, 호텔 입구에 있는 코끼리 모형이 심상치 않았다. 되게 열심히 비웃는 표정이라 사진을 찍어뒀다.

평상시면 호텔 체크인 하고 모든 일정이 끝난다. 하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그전 날 김용만 선생님이 혹시 내 방에서 컴퓨터에 티비를 연결해 일행분들에게 고구려 고분벽화 사진 고화질 본으로 보여 드려도 괜찮냐고 여쭤보셨다. 예전 답사에서는 연배가 있으신분들 중에는 이런 것에 불편함 느낀 분들이 많으셨다고 해서 성인중에 제일 어린 나에게 조심스럽게 여쭤보셨다. 그래서 이 날은 내 방에서 고구려 벽화를 보는게 일정의 마지막이였다.

짐을 풀고 씻은뒤 문을 열어놨다. 다 모이기전에 일행 분 중 1분이 로밍을 안하셔서 통화에 문제가 생겨서 내 핸드폰으로 통화 시켜드렸다. 그리고 점점 내 방에 한 분씩 찾아오셨다. 티비화면으로 고구려 벽화를 보며 술 마시며 이야기 하니까 금새 2시간이 흘렀다. 벽화고분을 다 본뒤 일행 2분이 양꼬치를 먹자고 해서 좋다고 나갔다.


진짜 달았던 망고

일행분들이 망고도 사셔서 망고도 조금 먹어봤다. 중국은 과일이 맛있는 나라인듯 하다. 망고가 너무 맛있어서 고구려의 명물 망고를 운운하는 헛소리를 조금했다.




개인적으로 양꼬치가 정말 좋았다. 처음 나온것은 양이 되게 적었지만 육향도 좋고 괜찮았다. 이어서 나온 것은 씹는 맛이 좋았지만 다른분이 집은것은 되게 질기고 별로라고 했다. 얼마나 별로인가 싶어서 한입 먹어봤는데 오..내가 굉장히 운이 좋은 편이었다. 닭날개 구이는 왠지 버팔로 윙 같았다. 다들 꼬치구이가 식어가니 결국 망고와 해바라기씨를 안주로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내일 이른 아침에 국내성 일대 새벽 시장을 보자고 한뒤 숙소에 돌아왔다. 아까 다들 드신 맥주가 널부러져 있어서 좀 치우고 양치 한뒤 누워서 다음 일정을 생각했다.



내일 일정은 어린시절부터 그토록 간절히 보고 싶던 광개토태왕비와 태왕릉,장군총을 찾아 가는 날이다. 잠자리에 들기전부터 "정말? 정말?" 을 수없이 되뇌였다. 믿기지 않을 만큼 벅찼다. 나의 인생 드라마 대조영의 엔딩에서 대조영이 신하들과 함께 광개토태왕비 앞에 무릎을 꿇고 "한 사람에 꿈은 불과 꿈에 불과하지만 만인의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라는 대사를 내뱉었다. 이후 후손들을 지켜봐달라고 한 장면은 정말 나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그 장소, 한국인 모두가 알고 고구려의 기상이 웅축된 광개토태왕비를 본다 하니 다시 잠자리에 들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잠이 들었고 또 하루가 마무리 됬다.







keyword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