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사라진 지 1400여 년 된 이 국가가 나에게 각인 됐을 때 내가 7살이었을 때였다. 그 당시 방영하던 <주몽>, <대조영>, <연개소문>등 사극은 칼싸움을 좋아하는 또래 남자아이들이 부모님 옆에서 자주 봤지만 다른 아이들보다 유난히 나는 그 드라마들에 더 몰입됐다. 특히 드라마 <대조영>에서 나온 당나라 대군을 물리치고 개선하는 연개소문과 양만춘, 그리고 화려하게 멸망된 고구려를 발해라는 나라로 부활시킨 뒤 광개토왕비 앞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대조영의 모습을 보고 처음 겪는 설렘과 웅장함을 느꼈다. 이때부터였을까. 어느 고생물 학자가 티라노사우루스 골격을 본 순간부터 과학자를 꿈꿨듯이, 나도 역사학도를 꿈꾸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학교에 들어갔고 어느새 역사를 배우게 됐다. 초중등 교육에서 배우는 것으로 만족 못한 나는 계속 역사학도를 꿈꾸었고 기어이 역사학과에 갔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은 나름 재밌었다. 대학 수업에서 오히려 교양이 힘들었다. 전공에서 어려움은 한문실력이 부족한 것 이외에는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재밌게 들었다. 공부가 재밌으니 이젠 직접 그 현장에 가고 싶었다. 한국인들의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그려지는 "드넓은 만주벌판에 있는 고구려 유적"들을 직접 목격할 수 있다면 소원이 없다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가 학교에 들어간 2020년 전 세계가 역병에 휩쓸렸고 나는 고구려 유적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렇게 학년이 올라가고 취직, 졸업등 현실적인 문제에지쳐 한 학기 휴학을 했을 때였다. 내가 학창 시절 읽던 역사교양서의 저자이자 고구려사로 학위를 받은 박사님께서 직접 데려가는 고구려 유적 답사를 모집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곧바로 신청을 하였고 마침내 5월 1일 나의 첫 고구려 유산 답사가 시작됐다.
나는 이 답사를 스스로 고구려 답사 혹은 요동 답사라고 지칭한다. 저 머나먼 고구려의 고토인 요동,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만주벌판은 크게 매력적인 관광지가 아니다. 현재는 한국과 직접적으론 관련 없는 중국 땅에 불과하다. 속된 말로 시설도 좋지 않고 장기매매 되기 딱 좋은 곳으로만 여겨지며 더더욱 볼 것은 없는 곳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광 대상으로 보지 않는 곳이다. 나의 주변인들도 대부분 그랬는데, 다들 하나 같이 거기를 뭐 하러? 와 몸조심하라는 말 뿐이었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언젠가 가보고 싶은 땅, 아니 성지에 가까운 곳이었다. 고구려때와 다르게 이젠 저 땅을 청나라 이후 만주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도 "만주벌판 달려라 광개토대왕"이라는 가사처럼 만주라고 자주 하지만, 난 여전히 요동과 고구려 국내성 일대라고 자주 지칭한다. 굳이 옛 고구려의 땅을 청왕조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만주라는 말로 지칭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고구려 혹은 요동으로 떠난다는 표현이 훨씬 내 마음에 와닿았다.
설레는 마음을 다스릴 겸 도넛을 하나 사서 커피와 먹었다. 최근에 크리스피 도넛을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어 다른 걸 먹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갓 나온 도넛은 따끈하고 달달하니 최상의 맛이었고 출국의 설렘이 더해져 맛이 더 좋게 느껴졌다. 도넛을 먹은 뒤 잠시 면세점에서 미리 선물을 사볼까 했지만 대학생 신분으로 감히 살 엄두도 안나는 가격대가 대부분이었다. 면세점 둘러본 뒤 자리에 다시 돌아오고 이후 답사 일행분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답사를 이끄시는 박사님이 일행 중 유일한 대학생이라고 하자 다른 박사님들과 일행 분들 모두 다 "젊은이" 대우해주시니 신이 났다. 이후 그 신이 난 마음을 함께 한 채 비행기에 탑승했고 난 고구려로 떠났다.
비행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비행기를 타니까 이렇게 가까운데 그동안 한 번도 오지 못한 게 아쉬우면서 곧 내렸으면 하는 내면의 외침이 계속 맴돌았다.
간체자로 선양이라고 적힌 공항을 보니, 중국에 왔다는 게 체감이 됐다. 비행기가 완전히 멈춘 뒤 가방을 챙겨 나왔다. 입국할 때 일본과 비슷하려나 생각했다. 일본처럼 딱히 핸드폰으로 하는 건 없지만 생각보다 입국심사가 걸렸다. 일일이 여권 보고 확인하는데 되게 오래 걸렸다. 이 앞에서만 30분 걸린듯했다. 빨리 오녀산성을 가고 싶었는데 여기서 너무 오래 걸리는 게 시간 아까웠다. 이후 짐을 찾는 건 굉장히 빨리 찾았다. 짐을 찾은 뒤 마중 나오신 가이드님을 만났다. 이제 버스를 타러 나가는데... 갑자기 비가 내린다.
놀랍게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이드님은 걱정하지 말라면서 선양에서 환인까지는 3시간 이상 걸린다고 그곳 날씨는 다를 거라 확신하셨다. 안심하고 차를 타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가이드님이 비행에 지쳤을 것이라며 간식을 주셨다.
생긴 게 비슷해 한국 과자 후레쉬베리 같은 맛이 날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카스타드와 맛이 더 가까웠다. 달달한 과자를 먹으며 드넓은 요동벌판을 달리니 본격적인 답사가 시작된 게 체감됐다. 지금까지 답사는 대부분 학교 답사에서 가는 답사 혹은 개인적인 답사였는데, 이런 답사는 처음이라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 색다른 기분의 8할은 "고구려"답사라는 점이 차지한다 생각한다.
한참 이동을 할 즈음 후배들이 굉장히 DM를 많이 보냈다. 이 날이 쉬는 날인걸 까먹고 다 같이 학교에 있니? 하고 물어봤다가 아니라고 해서 머쓱했다. 카톡을 하다가 알게 된 게 고구려 고토 지역이 시차가 난다는 것이었다. 어째서 시간 차이가 나는지 모르겠지만, 후배들이 한국은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진다고 조심하라 했다. 다행히 선양을 빠져나가자마자 비가 내리지 않아서 안심을 했었다.
신빈 이라는 도시를 통과할 즈음 멈춘 비가 더 굵게 내렸다. 정말이지 장마라고 생각할 정도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가 미친 듯이 내리니 "오녀산성을 올라갈 수는 있을까, 연무로 혼강이 보이지 않으면 어떡하지? 설마 출입이 통제되는거 아니야? 최악으론 오녀산성이 보이지도 않는 거 아니야? " 등등 별 생각이 너무 들었다. 아직 환인, 그러니까 졸본에서 멀리 있으니 희망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나의 희망을 보란 듯이 꺾는 듯이 비가 너무 격하게 내렸다. 환인에 왔음에도 비가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녀산성을 올라갈 때 반드시 등산화를 신으라고 했는데 말 안 듣고 운동화를 챙긴 게 걱정이 되면서 답사의 설렘은 긴장과 불안으로 가득 찼다. 안 그래도 비가 오면 한없이 우울해지는 사람이라 더욱 그랬다.
그리고 한참을 달리니 잠시 잠에 들었다. 깊은 잠에는 들지 못해 약간씩 주변 소리가 들리는 램수면 상태였는데 가이드님의 말이 내 귀에 꽂혔다.
여러분 드디어 도착했네요, 저기 보이는 곳이 고구려 첫 수도 오녀산성입니다.
나의 눈이 확 떠지며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비구름에 오녀산성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비구름에 가려진 채로 고구려 유적을 처음 맞이했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