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라는 이름의 폭력

by 전략가 김재훈

배려는 아름다운 단어다.

누군가를 생각하고, 먼저 챙기고, 불편하지 않도록 마음을 쓰는 것. 우리는 어릴 때부터 배려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배웠다. 배려심이 깊다는 말은 칭찬이다. 그래서 우리는 배려라는 단어 앞에서 쉽게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 배려라는 이름 뒤에 전혀 다른 것이 숨어 있을 때가 있다.

"다 너를 위해서야."

이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가족에게서, 친구에게서, 직장 상사에게서. 이 말은 대부분 상대방의 선택을 막거나, 상대방의 의견을 묵살하거나,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것을 강요할 때 나온다.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반박하기가 어렵다. 나를 위한다는데, 어떻게 싫다고 하겠는가. 배려라는 포장지가 저항할 언어를 빼앗아버린다.


이것이 배려 뒤에 숨은 폭력의 첫 번째 얼굴이다. 상대방의 선택권을 빼앗으면서,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 배려는 때로 통제의 다른 이름이 된다.

"네가 힘들까봐 내가 대신 결정했어." "그건 네한테 안 맞을 것 같아서 말리는 거야." "나는 그냥 네가 잘됐으면 해서."


이 말들은 얼핏 따뜻하게 들린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상대방을 하나의 독립된 인격으로 보지 않는 시선이 있다.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는 사람, 보호받아야 할 사람, 내가 이끌어줘야 할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그것은 배려가 아니다. 우월감이다. 진짜 배려는 상대방의 선택을 존중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틀린 선택이어도, 그것이 상대의 선택이라면 그 선택을 지지할 수 있는 것이 진짜 배려다. 내 기준으로 상대의 삶을 설계하려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침범이다.


군 생활을 하면서 이런 장면을 많이 봤다.

부하를 아끼는 상관이 있었다. 그는 늘 부하를 위한다고 했다. 힘든 임무는 대신 처리해주고, 중요한 결정은 자신이 내려줬다. 처음엔 다들 감사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일이 생겼다. 그 부하들은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잃어갔다. 작은 결정도 상관의 눈치를 봤다. 배려가 성장을 막아버린 것이다.


진짜 아끼는 마음이라면, 때로는 불편하게 두어야 한다. 실패하게 두어야 한다. 스스로 일어서게 두어야 한다. 그 과정이 사람을 만들기 때문이다. 편하게만 해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사랑이다. 가장 교묘한 배려의 폭력은 죄책감을 심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신경 쓰는데 왜 몰라줘." "너를 위해 이만큼 했는데." "내가 다 포기하고 너를 챙겼잖아." 이 말들은 상대방에게 빚을 만든다. 배려를 받은 것이 아니라 빚을 진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그 빚은 상대방의 자유를 조금씩 갉아먹는다. 미안함 때문에 싫다는 말을 못 하게 되고, 고마움 때문에 내 감정을 숨기게 된다.


이것은 관계가 아니라 거래다. 배려를 통화로 쓰는 거래. 그렇다면 진짜 배려는 무엇일까.


조건이 없는 것이다. 돌아오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먼저 묻는 것이다. 내가 해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 그 차이가 배려와 강요를 가른다.


진짜 배려는 조용하다. 티를 내지 않는다. 상대가 편안한지 불편한지를 살피고, 상대의 속도에 맞추고, 상대가 원하지 않을 때는 물러설 줄 안다. 그것이 전부다.


오늘 내가 누군가에게 건네는 배려가 진짜인지 한 번쯤 돌아보자.

그것이 상대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나를 위한 것인지. 상대의 필요에서 시작한 것인지, 아니면 내 불안이나 욕구에서 시작한 것인지. 그 질문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한 번 더 솔직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배려는 아름다운 것이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 아름다운 이름 뒤에 숨으면, 폭력은 더 오래 살아남기 때문이다. 진짜 배려는 상대를 내 뜻대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옆에 있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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