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미학
나는 바라나시(Varanasi)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바라나시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갠지스 강에서 목욕하면 모든 죄가 씻긴다.”
“강에는 시체가 떠다닌다.”
“죽음을 앞둔 이들은 바라나시로 향한다.”
신비롭기도 하고, 충격적이기도 한 이 이야기들이 과장인지, 사실인지 나는 직접 확인하고자 하는 갈망이 있었다. 그리고 직접 바라나시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 모든 것이 단순한 소문이 아니라 현실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
바라나시는 힌두교 신자들에게 가장 신성한 도시로 여겨진다. 그래서 '인도의 성지'라 하면 바라나시가 대표적인 곳으로 손꼽힌다. 힌두교의 경전에 따르면, 이곳에서 죽으면 ‘모크샤 또는 목샤(Moksha)’라고 해서 즉,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수많은 신자들이 생애 마지막 순간을 이곳에서 보내기 위해 모여든다. 거리마다 힌두교 수도승(사두)들이 명상을 하고 있었고, 향 냄새가 공기 중에 퍼지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라나시를 향해 가다 보면 흰색과 주황색 복장을 한 사람들이 차도에서 걸어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대부분 바라나시 순례자들이다. 저마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바라나시로 향하게 되는데, 특히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들의 시체를 들고 바라나시로 걸어가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바라나시가 신성한 이유는 단순히 종교적인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이곳에서는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 어떤 이는 강에서 목욕을 하며 정화 의식을 치르고, 어떤 이는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며 가족과 함께 조용히 앉아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조용히 보고 있는 나에게는 갠지스 강이 단순한 물줄기가 아니라, 수천 년간 이어진 신앙과 삶의 터전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된다.
강변으로 내려서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온몸을 담가 기도했고, 어떤 이들은 강물을 떠서 얼굴과 머리에 끼얹었다. 심지어 몇몇 신자들은 그 물을 마시기도 했다. 어린 친구들은 갠지스강에서 수영이나 다이빙을 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갠지스 강은 단순한 강이 아니다. 그것은 신성한 강이며, 모든 죄를 씻어주는 정화의 수단이다. 바라나시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 아침 갠지스 강에서 목욕을 하고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나는 그들에게 있어 이 물이 단순한 물이 아니라, 신의 축복이라는 사실을 직접 눈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신성한 강에서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플라스틱 쓰레기와 폐기물이 떠다니고, 바로 옆에서는 사람들이 그 물로 빨래를 하고 있다. 옷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빨래를 하는 건지 더럽히기 위해서 빨래를 하는 건지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간혹 동물들조차 강에서 물을 마시고 몸을 담그고 있다. 특히 지나가던 개들은 날이 더우면 수영을 하기도 한다. 개들은 수영을 못한다는 진리는 인도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이런 갠지스강은 과연 신성한 물인가? 아니면 그저 더러워진 오염된 물인가? 누구든 바라나시에서 있다면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져볼 것이 분명하다.
바라나시에는 ‘마니카르니카 가트(Manikarnika Ghat)’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인도의 가장 유명한 화장터 중 하나로, 매일 수많은 시신이 이곳에서 불에 태워진다. 화장터에 다가가자 장작 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검게 탄 재가 공기 중에 퍼지고 있었다. 가족들은 조용히 기도를 올리며 마지막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고, 사두들은 나지막이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화장되지 않는 시신들도 있었다는 점이다. 힌두교 전통에 따르면, 어린아이, 임산부, 수도승, 독사에 물려 죽은 사람 등은 화장되지 않고 강에 그대로 떠내려 보내진다고 한다. 실제로 갠지스 강 위를 천천히 떠다니는 시신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갠지스강에서 수영하는 인도인들은 가끔 물 안에서도 시체를 보기도 한다고 한다.
인도인이 아닌 외부인에게는 이 상황은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인도인들 그리고 바라나시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장면들을 당연한 듯 받아들인다. 이곳에서는,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바라나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 중 하나는 ‘갠지스 아르티(Ganga Aarti)’ 의식이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강가에서 화려한 불꽃 의식이 열린다. 사제들은 램프를 들고 기도를 올리며 강가를 따라 일렬로 서서 춤을 추듯 의식을 집전했다. 신자들은 손을 모아 기도하고, 여행객들은 넋을 잃은 듯 그 장관을 바라본다.
바라나시는 낮에는 죽음을 마주하는 도시였지만, 밤이 되면 축제의 도시가 된다. 삶과 죽음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는 그곳에서 인간의 삶이 유한하지만, 그 믿음과 정신은 영원히 흐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도인들의 삶을 대하는 자세는 우리와 상당히 다르다. 특히 '죽음'이라는 것에 상당히 깊이 있는 의미를 부여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기 때문에 인도인들은 누군가의 죽음에 축복을 기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의 장례식은 축제와 같은 분위기를 낼 수 있는 것이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나는 인도인들의 사고방식에 찬사를 보낸다. 누군가의 죽음이 아직 이 세상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지만, 조금만 생각을 달리해 본다면 모두가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기분 좋은 마음으로 어디에서든 각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바라나시 여행은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처음에는 당황스럽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곳의 모든 것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갠지스 강은 단순한 물줄기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품고, 신앙과 전통을 이어주는 상징이다. 화장터에서 타오르는 불꽃, 떠다니는 시신, 강물에서 목욕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모든 것 속에서도 여전히 웃으며 살아가는 사람들. 바라나시는 나에게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준 곳이다.
이곳에서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두려움보다는 수용과 관대함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바라나시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을 마주할 수 있는 장소라는 것에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