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 분으로부터 상담 의뢰가 있었어요.
자세한 내용은 언급할 수 없지만 한국은 아직도 학력 사회이니 통번역사로 일할 때도 좋은 대학을 졸업해야 하지 않을까 걱정하셨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2년제 전문대를 졸업했고 4년제 지방대학으로 편입하여 졸업했습니다. 이런 제 학력이 통번역사로 일하면서 장애가 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생각했고, 오히려 제 일에 도움이 된 적도 있습니다.
통번역대학원을 입학해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지금까지 저의 직업이 자랑스러운 이유 중 하나는 이 업계는 정말 공정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인맥이 많다고 일이 더 많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로지 본인의 노력과 실력, 그리고 운도 따라야 하겠죠.
저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인맥이 없어서 일이 없는가 고민도 많이 했죠. 그런데 통번역이라는 것이 상품 하나 팔아주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인맥이 있다고 해도 실력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 다시 일을 의뢰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인이 큰 회사의 대표라고 해도 그 회사에서 통번역할 일이 없다면 그 인맥이 일로 이어지지는 않겠죠.
통번역 업계의 좋은 인맥이 있다면 물꼬는 틀 수 있겠지만 그 일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은 그 통번역사가 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학력 역시 통번역대학원을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은 석사과정을 공부하기 위해 필요한 학사, 즉 4년제만 졸업하면 됩니다. 그 이후에는 오로지 학교에서 실시하는 입학시험에 합격하면 됩니다.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통번역대학원 졸업은 고객분들에게 저희를 선택하는 최소 조건일 뿐 어느 통번역대를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통번역사를 선택하는 기준은 다양하지만 결코 학력이나 인맥은 아닙니다. 저의 짧은 경력을 바탕으로 말씀드리면 고객이 진행하는 행사의 분야와의 관련성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 분야의 통역이나 번역을 한 적이 있는지, 그에 관련된 공부를 한 적이 있는지. 고객에 따라 다르겠지만 100개의 통역 경력보다 관련 분야의 통역 경험 1~2개를 가지고 있는 통번역사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운도 따라줘야 하겠죠. 이건 어떤 분야이든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한 행사장에서 저에게 명함을 달라고 했던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급하게 통역사를 찾는데 어디서 찾아야 할지 막막한 상황에서 행사장에서 통역사를 만나 다행이라며 연락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1년에 1~2번 정도 정기적으로 열리는 행사라 지금까지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매년 연락이 올 때마다 명함을 드리던 그 순간을 떠올립니다. 명함을 드릴 때는 그 행사가 매년 정기적으로 열리는지 몰랐으니 이렇게 좋은 인연으로 이어진 것은 100% 운이었습니다. 그 운이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행사가 지속적으로 실시되는 것인지, 단발성인지는 처음에는 모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렇듯 내가 맡은 통역이 지속적으로 열리는 것도 어떻게 보면 운이죠. 하지만 본인이 평소에 준비가 되어있지 않거나 실력이 없다면 그 좋은 운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없는 것 역시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제가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통번역 업계는 공정하게 경쟁하는 곳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직업을 선택하고 싶은 분들은 더 좋은 학교로 편입을 하기보다 더 큰 목표를 위해 계획을 세우고 시간과 노력을 집중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