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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백삼홈 Sep 14. 2022

캠핑 이야기 2_남편의 오랜 꿈을 이루던 날

이게 꿈일 줄이야!

분명하다. 귀뚜라미가 귓속에 들어갔거나, 내 이불속에 숨어 있었을 것이다. 백지영의 "내 귀에 캔디"도 아니고, 귀뚤귀뚤 울어대는 "내 귀에 귀뚜라미"와 여름 끝자락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뜬 눈으로 첫 캠핑의 아침을 맞이했다.


SUV 차량이지만 짐칸이 좀 좁은차라 평생을 갈고닦은 테트리스의 실력을  본의 아니게 뽑내게 되었다. 차에 빼곡히 안들어갈 듯 들어갈 짐을 싣고, 캠핑장에 도착했다. 집에서 가까운 10분 거리라 몸도 마음도 가뿐했다. 캠핑장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고 예약된 사이트에 도착했다. 짐을 꺼내고, 테이블과 의자 세팅을 먼저 하고, 점심해 먹을 정신은 없을 듯 하여 사온 김밥을 야무지게 먹고 텐트를 쳤다. 남편이 거의 매일밤 눈으로 익힌 시뮬레이션 덕에 금방 텐트를 쳤고, 워낙 손이 빠르고, 아빠를 닮아 작업을 잘하는 내 주특기가 발휘되어, 둘이 손발 척척 초보 캠퍼의 티는 덜 나게 순조로웠다.

풀 세팅을 하고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남편은 너무 좋다는 말을 반복적로 했고, 아이들도 여기 너무 좋다며 시작도 안한 캠핑이 너무 신난다고 설레발이다. 그런 모습을 보니 며칠 사이에 몇 백을 쓴 것 같지만, 남편에게 얼마나 들었냐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던 자신을 칭찬했다. 어자피 쓸 돈, 어자피 올 캠핑에 기분나쁠 일 없으니 더 없이 좋았다. 지나가는 여름과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듯 높고 맑은 하늘, 시원한 바람까지 날씨요정까지 우리 가족의 첫 캠핑을 반겨 주는 듯했다.

초기 세팅을 마친 후, 캠핑장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냇가에 가서 물고기도 잡고, 잠자리도 잡고, 미리 준비한 간식까지 맛있게 먹었다. 코펠에 밥해본 적이 없어 캠핑 가기 전날, 낮에 집에서 코펠밥 연습을 했다. 친구들은 남편보다 내가 더 캠핑에 진심인 거 같다며 실소를 터뜨렸다. 연습 덕분인지 첫 코펠 밥은 성공적이었다. 캠핑에서 주로 데워먹는 밥을 먹는다고하는데, 그런 인스턴트밥에 우리 가족의 건강을 맡길 수 없다는 교만을 부려본다.

어둠이 내려 저녁을 먹고, 드디어 아이들이 기다리는 불멍의 시간이 돌아왔다.  아주 자연스럽게 장작에 불을 붙이고, 불 감상을 하다 고구마도 구워 먹고, 쫀드기와 마시멜로우도 구워 먹으며 우린 캠핑 체질인가 보다며 자신감 가득하게  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불멍을 하면서, 남편은 가족 캠핑이 자신의 오랜 꿈이었다고 했다. 지금 너무 좋다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여러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그동안 여행을 할 때마다 함께 하지 못한 시어머님 생각에 죄송했고, 불안했다. 여행 전에 드실 음식을 다 준비해 놓고 가야만 했다. 길어봤자 1박 2일인데 우리 가족만 다녀왔으니 저녁은 집에서 먹어야 한다는 귀가에 늘 서둘렀고, 조급했다. 그리고, 집에 오는 길이 그리 기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면 그동안 쌓여있는 설겆이와 집정리를 해야하니 여행 후 더 피곤했다.

하지만, 여행 가기전에 집안을 깔끔히 정리해 놓고, 텅 빈 집의 단도리만 잘 하고 나가면 밖에서 한 달을 자고 돌아와도 불안함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편안했다. 그동안 나보다 더 마음이 쓰였을 남편에게 고마운과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타오르는 장작불 속에서 무거웠던 마음 하나하나를 내려놔 본다.



유쾌 했던 불멍의 시간이 끝나고 잠자리에 들었다. 요즘 날씨는 밤에 춥다는 캠핑카페의 조언으로 전기장판까지 모두 풀 세팅을 하고 잠을 자려는데 너무 추웠다. 아이들은 이미 잠이 들었고, 남편은 계속 뒤척였고, 추위에 약한 대비한 구스 조끼와 바람막이를 입고 누웠는데도 추워 양말까지 신었다. 추위가 좀 가실 때쯤에는 밤늦게 화장실을 가는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귀뚜라미 소리, 고라니 소리 온갖 자연의 소리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이기 시작했다. 캠핑하면서 준비 못한 게 귀마개였다. 그 누구도 준비물이라고 말해주지 않은 귀마개가 절실했다. 어쩌면 이런 소리에 잠들려고 하는게 캠핑일텐데 이런 소리에 잠을 못자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생각해 보니 가방 속에 에어 팟이라도 꼽고 잘 것을 이제야 생각이 났다. 다른 가족은 캠핑용 베개를 가져갔지만, 집에서 소중히 챙겨 온 베개도 소용없었다. 추위 때문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보아하니 남편도 잠이 든 것 같아 혼자 덜덜 떨며 꼴닥 샌 듯 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닭이 울고, 주변이 조금 밝아지는 듯 싶어 아침이 오는구나 싶어 화장실을 가려고 텐트에서 빠져나온 시간이 5시 55분이었다.

일어난 소리를 듣고 깬 남편이 아무말 없이 텐트를 나가 무엇을 찾는 듯했다. 찾아온 것은 히터! 그러고 보니 우린 히터를 사놓고 틀지 않았다는걸 아침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어제까지 우린 초보 캠퍼가 아니라는 초긍정평가는 조용히 내려두자. 히터 생각조차 못하고 바들바들 떨며, 내 귀의 귀뚜라미와 함께 잠도 첫 캠핑의 밤을 보낸 우리는 초보중에 초초보캠퍼였다. 감사하게 아이들은 춥지 않았다고, 잘 잤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밤새 잠도 안 자고 애들 이불 덮어주는 불침번을 썼으니 감기 안 걸려 다행이었다.


캠핑 카페에서 1박 2일은 집에 갈 때 정리할 때가 제일 힘든다고 하는데 그 말이 딱 맞았다. 정리하는 데가 준비할 때 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린듯 하다. 둘 다 제대로 못 잤으니 더 피곤함이 느껴졌다. 대충 정리를 하고, 집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아이들이 언제 또 캠핑 갈꺼냐고 묻는 통에  추석 연휴에 잡아두긴 했다는 말에 아이들은 이미 다른캠핑장을 향해 가고 있었고, 너무 재밌었고 기대된다는 말에 속으로 경악을 했다.


캠핑! 진짜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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