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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백삼홈 Aug 31. 2022

캠핑 이야기 1_친호텔적인 내가 캠퍼가 될 수 있을까?

캠핑 간다니 주변에서 다 말린 설!

카드키를 대고 문을 열면, 깨끗하게 정리된 방안, 폭신한 침대와 침구, 심지어 직접 청소나 정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호텔을 좋아한다. 여행을 가서 잠자리는 유독 까다롭게 정하는 게 우리 집 룰이 될 정도였다.

유독 더러움에 취약하고, 잠자리에 예민해서 친정 갈 때 베개 싸들고, 이불도 챙기며 유별나단 소리를 들었다. 그렇다고 엄청 좋다는 베개도 아닌 그냥 남들이 다쓰는 평범한 베개에 불과하지만, 언젠가 부터 늘 가지고 다녔다. 월드컵 때였나 손흥민 선수가 베개를 안고 가는 사진이 싣린 덕에 베개가 누군가에게는 무척 소중하다는것임이 알려져 개인적으로 고마운 생각이 든다.


베개 이야기를 하려고 한건 아니지만, 잠자리에 유별난 사람이 방도 아니고, 천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잠시 머무는 것이 아닌, 먹고, 자고 해야 한다니 생각만으로도 날샌 기분이다.

몇 해전 한참 너도 나도 캠핑을 시작할 무렵 남편에게 무작정 캠핑을 해보자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집을 벗어나고 싶은 시간들이었기에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의외로 남편은 별 흥미도, 반응도 없었다. 우리가 시어머님 두고 무슨 캠핑을 가냐 싶어 그 후로 다시 캠핑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몇 주전 남편이 갑자기 캠핑 이야기를 꺼냈다. "캠핑 어때?"라고 물었을 때 "아이들 좋아하겠다. 재미있겠지 뭐... "라며 다소 평이한 대답을 해 놓았는데 이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이날부터 캠핑 장비를 알아보느라 남편은 퇴근 후 영혼을 빼앗기고 있었다.

결혼 전에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당시 큰 유행을 이끌었던  DSLR카메라도 있었고, 만삭사진, 아이들 돌, 백일 사진도 직접 찍어 주곤 했었다. 휴대폰 사진의 활성화되면서 부터 남편 서랍에 유물이 되었지만, 그것도 결혼 전 취미이니 얼마나 열심히인지 몰랐다. 너무 진지하게 캠핑에 관해 검색을 하는 것 같아 진심으로 시작 할 것 같은 불길함을 직감한 후 "캠핌 처음 할 때 돈 많이 든데... 혼자 그거 다 하려면 많이 힘들 텐데... 이제 중학생 되면 잘 안 따라다닌데... " 여러 가지 부정적인 말을 가져다 붙이며 말리고자 했으나, 내 말은 남편의 왼쪽 귀에서 오른쪽 귀로 그냥 흘러 빠져나가는 듯 보였다. 그 전에 잘 보지도 않는 유튜브와 캠핑 초보 카페를 수 없이 들락 거리기 시작했다.


결혼 12년 만에 이렇게 무언가에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남편의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처럼 어색하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해서 말리는 일은 중단했다. 평소 술 담배도 안 하고,자신을 위해 돈도 잘 쓰지 않고 살았던 남편의 12년을 응원해 보기로 했다. 적극적으로 캠핑에 가담하기 시작하자 남편은 신이 난듯 주말마다 캠핑장비 투어에 나섰다. 일 년에 남편의 개인적인 택배는 두 세 번이 전부인데 하루가 멀다 12년치 택배가 매일 집에 도착하는 듯 했다.



캠핑에 열심히 인 것도 놀랐지만, 추석에 캠핑을 가자고 해서 더욱 놀랐다. 캠핑 한번 가보지도 않고 덜컥 2박 3일 일정을 잡고, 유명하다는 캠핑장은 보통 오픈 1-2분 컷으로 마감되는데 그런 곳도 핼러윈 파티를 해준다며 10월 예약을 빛의 속도로 광클릭으로 성공하는 남편의 열정에 뜨거운 갈채를 보낼 뿐이었다.


9월이 다가오자 남편은 조금씩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늘어가는 캠핑장비에 베란다는 발 둘 곳조차 없어져 갔다. 이 장비를 차에 다 싣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매일 밤 고민하며, 몇 가지는 가지고 내려가 실어 보기까지 하는 정성을 보이고 있었다. 텐트는 한번 쳐보고 가야 하다며, 2박 3일은 온전히 밖에서 자야 하는 남편의 부담감은 더없이 커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니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캠핑장 생각이 뻔쩍 났다. 추석전에 짧게 시범 캠핑이라도 한번 해보자는 제안에 남편은 반색했다. 대신 밤에 너무 불편하면 택시 타고 집에 올 거라는 농담을 곁들여 줬다. 남편은 뭔가를 빠르게 결정하고 실행하는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바로 캠핑장을 예약하는 모습에 '이 남자 캠핑에 진심이네.' 싶어 실소가 터졌다. 눈으로 했던 사전 시뮬레이션과 카페에서 알려주는 소소한 팁을 몽땅 익혀 거의 이론상으로는 캠핑 프로에 가까운 마음으로 금요일 야심한밤 짐을 내려 차에 싣고, 토요일 아침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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