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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잃으면, 몸도 마음도 결국 직장도 잃는다.

잠이 보약이 말이 진짜였다니

by 육백삼홈


2025년부터 새롭게 일을 시작했다. 10년 전, 다시는 이 분야의 일은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며 혼자 화려한 퇴사를 했지만, 결국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 그 일을 하고 있었다. 물론 같은 회사는 아니고, 같은 업종의 일이었다. 제안으로 시작했지만 이분야의 나름의 전문성이 있다고 자부했고, 재밌어하는 일이기도 했다.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는 건 아니고, 그때부터 다시 불면의 밤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할 참이다.


아무래도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일(교육 관련)이다 보니, 생각하지 않는 게 어려워졌다. 잘 때는 일할 때의 생각 스위치를 끄고 온전히 잠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니 몸도 마음도 아프기 시작했다. 24시간 편의점처럼 뇌가 쉬지 않고 24시간 움직이는 듯했다. 잠을 자도 뇌는 계속 깨어 있는 느낌이랄까!


원래 예민해서 잠을 잘 못 자는데, 일 시작하고 나선 더 심해졌다. 잠을 잘 못 자니 두통과 어깨 통증이 잦아졌다. 정형외과에서 검지손가락 길이의 바늘을 어깨에 찔러 넣었다. 6군데를 맞는데 너무 아파서 의사 선생님께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심한 욕을 할 뻔했다. 메니에르라는 증상(이명, 난청, 심한 어지러움의 증상이 나타남)도 가지고 있는데 이 또한 잠을 잘 자지 못하면 증상이 심해진다. 증상이 스멀스멀 나타나고 있었다. 전에 없던 치통이 와서 이에 문제가 생겼구나 싶어 치과에 갔더니 이 또한 잠을 못 자서라고 했다. 부인과 쪽이 계속 불편해 오래 병원을 다녔는데 이 또한 수면 부족 때문이라고 했다. 이제 어디가 아파서 병원을 가면모두 다른 분야의 각기 다른 의사들은 입을 모아 같은 말을 한다.

"요즘 피곤하신가 봐요. 잠을 잘 못 주무시죠?" 와!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듯 같은 말을 한다. 신기할 정도다.


"All roads lead to Rome."

치과를 나오면서 문득,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불면이 모든 병의 근원이 된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치과에서조차 수면이야기를 들을 줄 꿈에도 몰랐다.


세바시인생질문에서 신원철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는 잠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 뇌는 전체 에너지의 약 30%를 쓰고, 심장 박출량의 25%가 뇌로 전달된다. 정말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지만, 우리 뇌는 체중의 5%밖에 안된다고 한다. 단일 면적당 제일 많은 에너지를 쓰는 장기가 뇌이다. 많은 에너지를 쓰나 찌꺼기가 많이 생긴다. 깊은 잠을 자는 동안에 뇌에서는 림파틱시스템이 뇌폐물, 염증 물질등을 모아 배출해 주고, 글림파틱시스템은 뇌의 독성단백질을 배출해 준다. 이는 깊은 잠을 잘 때만 활발히 작동한다. 그런데 잠을 잘 자지 못하면, 독성물질이 많이 쌓이고, 뇌가 손상되고, 노화가 급속되고 치매를 유발한다. 55세 이후 5시간 이후 수면자는 치매 발생위험이 2배가 높다고 한다. 잠은 찌꺼기를 제거하고, 세포의 망가진 것들을 치유하며 수리하고 회복하는 중요한 시간이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몸에 찌꺼기가 쌓이니 이곳저곳이 아픈 게 너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은 지금 온통 찌꺼기로 가득차 있다.

나름 수년간, 잠을 잘 자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조명, 향기, 베개, 이불, 운동, 영양제... 여러 가지를 하다 보니 가장 중요한 게 운동과 마음 챙김이었다. 편안한 날은 잠과 함께 잘 잘 수 있었고, 불안한 날은 잠도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잠이란 놈이 참 간사스럽게 느껴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이었던 건 요가와 명상이었다. 하루 종일 돌아가던 머릿속 톱니바퀴가 서서히 멈춰가는 느낌이랄까. 요가 매트 위에서 천천히 호흡하며 몸을 이완시키면, 마음도 차분해지고 그날은 자연스럽게 잠이 찾아왔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면서 규칙적이던 루틴이 깨졌다. 운동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거기에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다시 뒤척이는 밤이 시작됐다.


불면이 가져오는 여러 증상이 있는데 그중 두 가지가 등장하니 집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커졌다. 몇몇의 이유가 있었지만, 결국 불면도 크게 한몫을 해 자발적 퇴사를 했다. 겨우 생활리듬에 맞게 잘 지내고 있었는데 입사로 그 균형이 깨져버린 것이다. 결국 일을 버리고 건강을 택했다.


2025년 반이 지났는데 반년을 불면에 시달렸더니 아직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다. 아침에 일어나도 피곤하고, 기분도 좋지 않다. 그러니 가족들에게 자꾸 예민해진다. 이러다 보면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겠지 싶어 남은 반년은 잠자는 데 온 힘을 쏟겠다 작정한다.


적당한 운동, 마음 돌보기 절차에 다시 돌입해야겠다. 그러기엔 한여름의 열대야라는 난제가 있지만, 이참에 열대야까지 정복해 보리라!

잠잘자는 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진정한 휴식을 해볼 계획이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한 나를 위해 나에게 맞는 휴식과 마음 챙김을 무조건 할 작정이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깊은 잠도 나를 찾아와 주겠지? 건강한 잠 없이는 결국, 아무것도 지속할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으니까. 남은 반년, 나와의 약속을 지켜보자.


오랜만에 큰 다짐을 해본다.

파리여행 중 오르세에서 마주한 마네의〈올랭피아〉

이런 금발의 신을 신으면, 과연 잠이 잘 올까?

누워 있는 그녀를 바라보다 문득, 내 잠이 그리워졌다. 그림 하나에도 잠이 생각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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