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 갔을 때 나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지쳐 있었다. 주말부부 8년 차, 큰 아이 8개월 때 시작된 독박육아가 큰아이가 초등 입학을 앞두면서까지 지속되어 그동안 쌓인 육아 스트레스가 말도 못 하게 쌓여 있을 무렵이었다.
몸은 하나인데 엄마를 찾는 아이는 둘이니 늘 수면부족에 밤거리를 걸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라 차가운 밤공기를 쐬고 싶어 애 둘 재우고 나와 '분리수거'를 하고 들어간 적도 있었다. 이 시기엔 아이는 크느라 바쁘고 엄마는 키우느라 바쁘고 아빠는 먹여 살리느라 바쁘고 모두 다 바쁜 시기였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 날, 발리에서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러 택시를 불러 나갔다. 사람 많은 꾸따에서 벗어나 조용하고 한적한 바닷가 옆 해산물을 먹을 수 있는 식당으로 가고 싶었다. 당시엔 일부러 검색을 해서 찾아갔던 곳인데 아무리 기억하려 애써도 이곳의 지명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신 이곳의 분위기와 음식, 몇 안 되는 사람들 그리고 석양이 진하게 기억난다.
기사가 데려다준 곳에는 이미 문 닫은 허름한 음식점 두 곳과 내가 찾아간 이 식당이 있었는데 두 테이블에 있던 손님도 곧 일어나 우리가 마지막 저녁 손님이었다. 살아있는 게를 고르고 깔라마리 튀김과 새우구이를 주문해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과 모래사장에서 맘껏 뛰고 모래에 글씨를 쓰며 놀았다.
유쾌한 사장님이 새우를 굽고 오징어를 튀기며 호탕한 웃음과 함께요리를 내어주고 먹는 사이밝았던 하늘은 어스름한 노을로 바뀌고 이내 사람도 몇 없는 해변가에 옥수수 구워주는 리어카가 등장을 했다. 버터를 발라 숯불에 노릇하게 구운 콘옥수수 두어 개를 사서먹으며 석양이 짙게 내려앉은 발리 하늘을 보는데 어? 기분이 이상하다. 발리에 오면 많이들 하는 명상을 하거나 따로 요가를 한 것도 아닌데 답답했던 머리가 맑아지고 내 속에 건강한 에너지가 가득 채워져 있는 걸 느꼈다.
마사지를 매일 받은 것도 아니고
숙소에서 주는 간단한 식사로 아침을 먹었고 매일 브런치로 거하게 먹은 것도 아니다.
단지 신선한 과일을 다양하게 많이 먹었고 햇볕을 쬐며 물놀이를 많이 했고 아이들과 거리를 구경하며 많이 걸었다.
꾸따에서 짬을 내 이틀 동안 호캉스 하기 좋다는 누사두아도 다녀왔다. 발리에서 가장 럭셔리하다는 누사디아. 번잡한 꾸따에 있다가 누사두아로 오니 쾌적하고 화려함에 눈이 돌아간다. 해변 앞 고급 호텔들이 주욱 늘어서있고 꾸따나 우붓처럼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없고 오로지 호텔들과 바다, 수영장이 있어서 이쪽저쪽 각자 다른 매력의 호텔들 구경하기엔 좋지만 호텔 수영장에서 종일 물놀이만 하면서 지루함도 느꼈다.
발리 문화를 온몸으로 흡수하며 다니던 지저분했던 꾸따거리가 곧 그리워졌다. 왜? 왜지?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던 누사두아 호텔 앞 놀이터의 그네와 작은 놀이기구 두어 개 있는 이곳에서 모처럼 그네를 타며 여유를 즐겼다.
꾸따 어느 곳. 강렬하게 아름다운 노을 스폿은 아니지만 붉게 타오르는 노을이 시작되고 해 가지기 직전의 하늘, 그 색감도 공기도 잊히지 않는다. 발리에서의 마지막 하늘을 보며 찌들었던 내가 이곳에서 새롭게 변화했음을 느꼈다.
새로운 에너지가 내 몸을 가득 채웠던, 그 찰나의 어스름조차 아껴서 기억 속에 두고 오래 간직하고 싶다.
나의 지친 마음을 다독여준 발리, 나에게 정말 치유가 되었던 그곳에서의 열흘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