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학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는 탓인지, 의사와 그 준비 단계 격인 의대생에 대한 선망이 늘어나는 것 같다. 그러나, 의료계와 의대생들이 느끼는 실상은 일반 대중이 느끼는 환상과는 거리가 있다. 상상만큼 낭만적이지도, 슬기롭지도 않은 의대생의 일상을 써 내려가 보고자 한다.
본과 2학년이 된 지금에서야 비로소 예내기 시절(*의대는 예과 2년 본과 4년의 커리큘럼으로 학업 부담량이 비교적 덜한 예과 때를 대학 새내기에 비유하여 '예내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 교양과목의 교수님이 말하던 '단무지=의사'라는 말씀이 어떤 의미였는가 슬슬 체감이 된다. 큰 시험이 끝나면 '더' 큰 시험이 기다린다는 의대 커리큘럼을 파이널 시험 격인 국가고시를 치고 끝내고 나면 또다시 병원의 최하위에 속한다는 인턴부터 레지던트까지 인생의 황금기로 불리는 20대를 그렇게 시험에 쏟아붓고 나면 비로소 단순 무식 지루한 '단무지'형 의사로 숙성(?)된다는 논지였다. 나를 포함해 그 당시 그 수업에 깨어있던 동기들도 대부분 '난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격주 시험에 한 시험당 천장을 돌파하는 PPT 양에 우리는 단무지로 잘 숙성되어가고 있다. 의대를 꿈꾸던 고등학교 시절과 입학 초에는 의대생 방학을 찾아보고는 대외활동을 풍성하게 하는 일반 대학생들과 달리 왜 이렇게 검색 결과가 적을까 갸우뚱했는데 본과생이 되어보니 그 답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학기 중에 숨 가쁘게 시험을 패스하는데 급급하다 보니 짧디 짧은 방학에는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집에서 늘어진 채 잠만 잘 것이라는 동기들이 대부분이다. 헬스, 여행 등에 힘쓰는 동기들도 개중에는 있지만, 일반 대학생보다 도전의 폭이 좁은 것은 사실이다.
그럼 글쓴이 넌 달랐어?라는 궁금증이 들 시점일 텐데, 음... 답부터 드리자면, 단무지 공장 4년 차로 숙성과정을 잘 밟고 있는 무씨이다. 숙성 과정에서 이탈해보고자 상해로 어학연수를 떠나고 HSK 자격증을 따기도 했고, 고등학교 친구 따라 팔라우로 떠나서 오픈워터 다이빙을 하기도 하고 그 이듬해 겨울에는 그 친구 따라 호주를 가보기도 하고 모기와 싸우며 미얀마 의료봉사를 가고, 예과 때 해부 실습을 추억하며 일본 해부실습 교환학생을 다녀오기도 했지만, 숱한 여행 속에 느낀 것이 있다면 여권에 찍힌 도장 개수가 내 인생 경험치에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글쓴이의 여행에 대한 주관적인 입장으로 이는 다음 글에 기회가 된다면 다루어보고 싶다.)
그래도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내가 했던 수많은 시도들을 되짚어보며 그럼에도 내가 착실하게 단무지 숙성 작업을 거치고 있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습관화 가 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휴양지로 훌쩍 떠나 반짝거리는 햇살을 바로 보거나, 침대와 동기화가 되어 넷플릭스를 볼 때, 물론 그 순간만큼은 정말 행복하고 소확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아드레날린이 온몸에 퍼지는 듯하지만, 다시 방학이 끝나고 기나긴 시또시(*시험 또시험)의 사이클을 반복할 때에는 오히려 그때와 대조되는 내 삶에 더욱 우울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과 중에서도 초 이과 루트를 밟아온 내가 엉성한 글솜씨로 이렇게 구구절절 글을 써 내려간 목적이 드디어 드러난다. 단무지가 되지 않고자 하는 습관화 도전 첫 번째로 내가 선택한 것, 바로 글쓰기이다. 개강까지 남은 시간 35일, 이 여름방학 기간이 내가 앞으로 가지게 될 여름방학 중 가장 길 것이 확실하므로(*의대에서는 본과 3학년부터는 병원 실습을 돌게 되어 방학이 4주 이하가 되고 인턴이 되어서는 방학의 개념조차 그리운... 이하 생략)이 도전을 시작하기에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생각된다. 이 외에도 매년 신년 목표처럼 갖고 가는 운동과 독서와 함께 스페인어, 투자 공부에 대해서도 습관화를 목표로 도전하고 있는데 꾸준히 하면서 진행과정을 적어 내려가 보고 싶다. 단무지에서 조금은 궤도를 이탈한 무씨가 되어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4년 차 무씨도 도전을 하는 마당에, 나보다 잠재력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생각되는 당신도 포스트잇에 새로운 목표 하나를 적어 내려가기를 응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