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대문학을 공부하며(5)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원치 않는 결혼을 한다면? 상상만 해도 너무 끔찍하다. 지금이야 주변에서 부모에 의해 성립되는 혼인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중국 여성들은 이런 현실을 마주해야만 했다. 입센은 그런 수많은 여성에게 <인형의 집>을 통해 든든하고 굳센 ‘맏언니’가 되어주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려은, 풍원군, 빙심과 같은 똑 부러진 동생들이 생겨났다.
려은의 <돌아갈 곳은 어디인가>를 읽으며 나중에 결혼을 하거든 배우자 될 사람이 ‘우리 임신했어요’ 라는 말을 쓸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 청춘남녀가 서로 사랑해 결혼한 후부터의 모든 일은 둘이 힘을 합쳐 함께 하는 것이란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작품이었다. 아직도 임신과 육아는 여성의 구역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음에 개탄스러울 뿐이다.
풍원군의 <단절>과<여행>은 내 심장을 미친듯이 뛰게 만들었다. 이전부터 부모님께 남자친구와의 교제 사실을 말씀드리면 돌아오던 것은 늘 탐탁치 못한 반응이었던 반면, 남동생의 외박과 연애에는 간섭조차 하지 않으시던 모습이 생각나 풍원군의 소설에 더더욱 이입하게 되었다. 글을 읽다가 화가 나 씩씩거리기도 처음이다. 글을 읽을수록 수많은 물음표가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현대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 중 왜 이 주제만이 유일하게 10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어두운 그늘 아래 숨어있는가? 왜 지금도 여성에게만 순결과 정조를 강요하는가? 누구나 평등한 21세기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찌하여?
빙심의 <장홍의 누나>를 읽자마자 할머니와 엄마가 떠올라 애써 눈물을 참느라 혼났다. 할머니의 아버지는 훈장님이었다. 남자 형제들에게만 지식을 가르쳐 주시던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서당에서 공부 대신 이른 나이에 시집을 요구하셨고, 가난한 칠 남매의 넷째로 태어난 엄마는 막냇삼촌의 학비를 대기 위해 대학을 포기하고 사회로 뛰어들어 직장 생활을 하셨다. 불과 몇십 년 전에도 남존여비의 봉건관념이나 경제적 곤란으로 인해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거나 포기하게 되는 것은 여성들이었다는 사실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문득 내가 대학교에 합격했을 때 할머니와 엄마가 나보다 더 기뻐하시며 눈물까지 보이시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들이 보인 눈물은 더는 이런 아픔을 대물림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의 눈물이었을까, 당신의 뜻을 이루지 못했던 서러움의 눈물이었을까? 짐작하건대, 기쁘면서도 슬픈 묘한 감정의 눈물이었으리라.
100년 전 여성들의 고군분투로 인해 지금 내가 자유를 누리듯,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구현해 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