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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현 Feb 19. 2022

감정

정확히는  스트레스에 관하여

어릴 적부터 난 굉장히 감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많은 시간 동안 감정을 잘 다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수도 없이 고민했다. 감정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어떨 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징검다리 같은 역할도 해 주지만, 조금만 빗나가거나 엇나가도 징검다리는커녕 무시무시한 무기가 되기도 하니 말이다.


고등학교 때 난 그야말로 ‘감정적인 사람’의 표본이었다. 고등학생 때의 난 감정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하루에도 기분이 열댓 번씩 바뀌곤 했다. 공부도, 인간관계도, 미래도, 전부 다 싫었고 불확실했고 생각하기 싫은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그저 아침에 일어나면 기계적으로 가방을 싸 학교에 갔다가 엉덩이를 반나절 붙이고 책에 글씨를 끄적거리다 시간이 되면 학원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씻고 자는 일상의 반복. 마치 다람쥐가 쳇바퀴를 굴리듯 같은 굴레의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감정도 환기를 시키지 못했던 걸까, 감정적으로 예민해져 있을 땐 금세 모진 단어들을 내뱉으며 시퍼런 날을 한껏 세운 자신을 발견하게 되곤 했다. 물론 지금도 가끔 감정적일 때가 있지만, 그 빈도가 확연히 줄었고 제법 이성적인 사고를 할 줄 알게 되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다.


얼마 전에, 주로 내가 어떤 상황에서 조금 격하게 감정적인 사람이 되는지 막연히 궁금해졌다. 그 궁금증은 이내 스트레스를 받는 요인을 분석해보자는 생각으로 커져갔다. 뭐든지 원인을 알면 그에 맞는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이렇게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그다지 큰 문제도 아닌 경우가 많았다. 우선 내가 어떨 때 스트레스를 받는지가 제일 궁금했다. 매일 밤이면 지치고 한 주가 끝날 때마다 감정적으로 녹초가 되어있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왜 내가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고 필요 이상으로 힘들어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그 원인을 알면 지금보다 더, 훨씬 많이 괜찮아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대략, 이 주 정도의 시간을 가지고 나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내가 주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몇가지가 있는데, 가장 큰 것은 가까운 것들에게서 오는 스트레스였다. 쉽게 말하자면, 나 자신이 나에게 받는 스트레스. 나는 생긴 것과 다르게 성격도 제법 완벽주의고, ‘다른 사람이 잘 해내지 못한 일과 결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바엔 내가 하고 말지’라는 생각이 있어서 여기서부터 오는 압박감에 스트레스를 느낄 때가 정말 많다. 또, 평소 작은 것들도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해치우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지라 만약에 내가 세운 계획이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무너져 버리면 거기서부터 오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아마도 완벽하고 싶은 욕심이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 하지만 적당한 욕심은 늘 원동력이 되어주고 새로운 힘이 되기에 욕심을 적당히 타협하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나에게서만 스트레스를 받는 건 또 아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당연하게도 주변 관계에서도 스트레스를 종종 받곤 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없을 수가 없는 게 주변 사람에게서 오는 스트레스지만, 그나마 그런 스트레스들을 덜 받으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중이다 (나에게도, 주변인들에게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여기서 주변 사람이라 함은 크게 지인, 가족, 친구 등으로 나눌 수 있겠지만, 특히 같이 부딪히는 시간이 가장 많은 만큼, 가족에게 받는 스트레스가 꽤 크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독립하지 못한 성년이라면 다들 어느 정도 갖고 있는, 서로의 가치관이 다름에서 발단되는 가장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대립으로 인해 생기는 스트레스일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언제 가장 많이, 가장 집중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나 생각해보니 시험 기간인 것 같다. 공부할 양이 많은 시험기간엔 특히 더. 아무도 나에게 잘 해내라고 부탁하지 않았지만, 스스로가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 누구도 나에게 좋은 성적과 좋은 결과를 받아오라고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완벽을 추구해 더 힘들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예를 하나 들자면, 지난 연도에 시작한 바디프로필 준비를 위해 운동을 한창 즐겨 할 때는 하루에 정해진 분량만큼 운동하지 않으면 굉장히 불안하고 마치 강박증이 있는 사람처럼 움직이기도 했다. 다행히도 지금은 그 강박으로부터 많이 벗어났다. 생각보다 개복치처럼 예민하고 작은 것에도 쉽게 상처받고 무너지는 나를 볼 때마다 좀 안쓰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다. 그래도 내가 무슨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어떤 상황에서 쉽게 멘탈이 무너지는지, 이러한 상황들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인 것 같다. 적어도 그에 맞는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으니.


내가 스트레스라고 표현한 감정은 주로 분노, 짜증, 우울, 화남 등의 부정적인 색채가 강한 감정들이다. 그래서 그런 감정들을 해소하고자, 펜을 들고 글을 쓰고 감정을 기록한다. 우선 책이든 종이든 심지어는 핸드폰 메모장이던 무엇인가 내 감정들을 해소할 수 있고 끄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실제로 나는 화가 날 때만 적는 수첩도 갖고 있다. 그 수첩엔 꽤 강렬한 글씨체로 휘갈겨 쓴 욕설도 있고, 차분하게 왜 내가 화가 났는지 번호를 매겨가며 사건의 발단부터 전개 그리고 마무리까지 전부 적혀있는 장도 있다. 어쩌면 글쓰기와 기록은 내게 화를 적절히 식혀줄 수 있는, 스트레스를 해소해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처방전일지도 모른다.


막연하게 내가 어떨 때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지 궁금해하고, 그것을 또 해소하려 애쓰는 내 모습이 낯설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이 부분은 내가 나를 가장 사랑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 생각했다. 나부터 나를 사랑해주고 신경 써주고 책임져야 내가 다른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아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도 다시 한번 상기했다. 그리고 가끔은 너무 자신을 죄어가며 완벽을 추구할 필요도 없고, 또 너무 주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필요도 없다.


내가 앞으로 마주치는 모든 감정들이 사랑에서 기반되는 감정이길 소망하며,

오늘 밤엔 가끔은, 아주 가끔은 이기적이어도 괜찮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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