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란 카이로스를 찾는 것

by 러닝뽀유

지금껏 삶을 살아오면서 가장 많은 시간동안 대화를 나눈 한 사람을 말하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당신에게는 누가 떠오르는가? 나에게는 처음 만난 그날부터 지금까지 10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이야기를 나눈 한 남자가 있다. 최근 몇년간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이제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태초에 인류가 노래를 악보에 기록한 순간부터 엄청난 양의 곡들을 발표하다보니, 여기서 수십년이 더 흐르면 더 이상 새로운 음의 조합이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뿌리를 찾을 수 없는 이야기는 남편과 나 사이에 없을 것 같았는데, 최근에 내 생각이 가차없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가 있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대화에 도달하게 되었다. 입으로 뱉어낸 적 없는, 무의식 속에서만 존재했던 아내의 생각들이 텍스트로 나오면서 남편은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텍스트로서의 아내를 만났다. 텍스트 속에서 아내는 남편이 오래 전 사진을 보며 그가 담아왔던 공간을 여행했다. 그러다가 텍스트와 사진이 한 데 어우러져 새로운 생각에 닿기도 했다. 글과 그림으로 상상 속에서 또 한번, 따로 또 같이 여행을 떠나는 놀라운 경험이다.

니스 하늘의 연인, 마르크 샤갈, 1964년 작품

글을 쓴다는 것은 엄청난 체험이다. 빈 도화지에 무슨 그림을 그릴지 한참동안 종이만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처럼, 처음에는 글쓰기도 그러했다. 컴퓨터를 처음 배웠던 1997년 어느날, DOS의 까만 화면에 무슨 명령어를 입력해야 할지 몰라서 멍하게 천정만 바라봤던 그날의 기억이 플래시백된다. 빈 화면에 글자를 기다리는 깜빡거림을 무한반복하는 I자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에 잠긴다. 그러고보니, 여느 평범한 날에도 몸은 쉬고 있어도 생각은 잠시도 쉰 적이 없었다는 걸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명상과 멍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기억 속에서 과거의 어느 여행지를 뚜벅뚜벅 혼자 걷기도 하고, 훗날 걷게 될 길을 그려보기도 한다. 글을 쓰면서 생각은 뉘일 자리를 찾게 되었다.


추석을 대구에서 보내고, 인천으로 올라오는 길에 길이 많이 막혔다. 4시간을 예상했던 네비게이션은 실수를 인정했고, 4시간이 7시간 어디쯤 될 것이라고 망상의 시간을 스크린에 띄워주었다. 두 아이는 곤히 잠들었고, 우리는 직진만 연거푸 5시간 해야 했던 미국 고속도로를 떠올렸다. 그러고보니 미국 서부 로드트립에 다녀온지 벌써 3년이 지났다. 20대 때의 3년은 대학교 졸업도 가능할만큼 긴 시기인데, 최근 3년은 빛의 속도로 곁을 스쳐갔다.


어르신들이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 이제서야 진리였음을 알게 된다. "나이 들수록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는데, 하기 싫은 일을 하면 시계 바늘 위를 쿵쿵 뛰어다녀도 시간이 안간다. 절대성을 한참 벗어난 상대성의 원리, 물리와는 담을 쌓아서 그 원리는 이해불가라도, 시간이 상대적이라는 걸 깨닫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쉽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키우고 30대 우리의 시간은 어느덧 저물고 있다. 설렘과 걱정을 동시에 갖고 이른바 '갓생' 살았던 20대였다. 학업, 직장, 연애로 그야말로 옥신각신, 시간과 전쟁하듯 살았기에 세월이 참 길었다. 그래서 피부 탱탱한 20살로 젊음을 돌려준다고 해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우리는 각자 회상한다. 반면 30대의 10년은 20대의 5년보다도 짧게 느껴진다. 직장 적응, 출산, 육아로 분주했으나 순간을 즐겼기에 30대의 시간은 온기를 가진 불꽃으로 아이들에게 쌓이니까 아무렴 괜찮다. 남편과 내가 나이 차이가 1살 밖에 나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나이대가 비슷하니 삶을 걷는 보폭도 비슷하다.


어느덧 귀경길에도 막히는 길을 지났고 문득 지난번 브런치에 연재했던 글이 생각났다. 우리내 인생은 죽기 전에 뇌가 재생해줄 짧은 파노라마 영상 한편 만드는 것일지 모른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이 찰나의 기록을 켜켜이 저장하면서 각자의 지금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그 글을 읽었다는 남편은 나의 생각에 동의했다. 어렸을 때 자전거를 타다가 하늘로 날아갈 듯 떨어진 적이 있었는데, 그간 살았던 인생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는 것이다.


영화 '소울'에서는 지구통행증을 받은 영혼들이 설렘을 안고 지구로 날아들어온다. 우주를 떠돌던 영혼이 만나 지금 여기에 우리,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훗날 기억될 찰나를 쌓는, 인생을 함께 살고 있다.

찰나 중에 더 빛나는 찰나, 그것이 마지막 필름에서 상영될 것이라고 내가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남편은 수많은 찰나 중 괄목할만한 찰나, 그것은 '카이로스'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고 했다. 카이로스의 정확한 의미를 검색해보니, 기회 또는 특별한 시간, 그리스 로마 속의 기회의 신 이름이라고 한다.


네이버지식백과

카이로스를 찾아 지구로 온 여정, 그것이 삶이라는 마음으로, 우리 부부는 기회의 신이 주는 오늘의 찰나를 음미하며 살아보기로 했다. 파라다이스를 찾아 먼 여행을 떠나도, 어찌보면 카이로스는 도처에 있을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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