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이라도 이곳이 배경이라면 로맨틱하겠지
한번씩 악몽을 꾼다. 시험이 다음날인데 아직 시험범위 조차 몰라서 안드로메다를 헤매고 있는 악몽은 그나마 낫다. 시험이 몇 시간 후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해법을 모르는 수학 문제로 머리 쥐어 뜯으며 헤롱거리는 새벽은 워스트 악몽 1순위였다. 20대의 악몽은 학창시절의 시험으로 물든 새벽이 주로 등장한다.
그런가하면 30대의 악몽은 20대 연애 소재가 단골 소재였다. 이를테면 이런 내용이다. 청첩장이 나왔고, 결혼이 내일 모레인데, 결혼할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 상황 설정이다. 악몽 속 나는 결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벼랑 위에 서있다. 이건 필시 악몽일꺼야 생각하면 꿈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현생에 결혼한 남자가 옆에 누워있다. "그래. 사랑해서 한 결혼이라 다행이다"라며 오늘 하루 더 잘해주기로 결심한다.
20대의 수많은 밤을 괴롭혔던 10대의 시험 악몽은 40대를 앞둔 나에게 출몰 빈도가 갈수록 낮아진다. 그 때의 고민은 지금 더 이상의 고민이 아니다. 나의 악몽 빅데이터를 통해 살펴보면, 10년 주기로 생애 주요 과제가 바뀌고 곧장 그 다음 10년 때 악몽으로 발현된다. 돌이켜보면 10대는 시험 잘 치는 것이 주요 과제였다. 인생이 시험 성적순으로 결정된다는 말을 밥 먹듯이 들었으니 얼마나 위협적이었겠는가. 20대는 내 사람을 찾는 것이 주요 과제였다. 전국 1,300만 남자(*2021년 기준, 대한민국 20/30대 남자의 합은 대략 1천 3백만 명이다) 중 1명을 잘 찾을 확률이니까, 로또를 2번 맞을 확률만큼 희박하다 볼 수 있다.
자칭 '악몽 10년 주기설'로 곧 다가올 나의 40대 악몽 베스트셀러를 예측해보자면 30대 때 가장 머리를 싸맨 고민이 테마가 될 것이 분명하다.
뉴욕 여행 중 어느 호텔에서 조식을 먹던 날, 앉을 자리가 없어서 서있는 4인 가족에게, 우리 테이블 하나를 내어준 적이 있다. 미국인 엄마는 고마운 마음을 온 몸으로 표현하며 "당신은 엄마니까, 지금 제 마음 알거예요. 진짜 고마워요" 라고 했다. 그쪽도 이쪽도 자리가 없어서 좁은 테이블에 4명이 옹기종기 앉았지만, 인종을 뛰어넘어 함께 엄마 마음을 나누는 기분에 마음이 따뜻했다.
30대 나의 가장 큰 산은 '진로'이다. 오피셜한 직업이 있고 없고를 떠나, 세상 엄마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아이에게 열어주고 싶은 미래의 세상, 아이를 위해 지금 할애하고 있는 시간 사이에서 오가는 수없는 생각의 깊이를 말이다.
뉴욕 밤거리를 걸었다. 13시간의 시차를 구름 타고 넘어가, 뉴욕 JFK 공항에 아침에 내렸다. 행여나 주변 승객들에게 피해줄까 전전긍긍하느라, 뜬눈으로 14시간 비행기에서 보냈다. 비행 내내 잠을 자지 않은 씩씩했던 남아 2명은 도착과 함께 온 몸을 나에게 맡겼다. 종잇장처럼 너덜너덜해진 몸을 움직여 비행기를 걸어나갔다.
뉴욕에서 머무는 날이 단 3일이기에, 첫날도 놓칠 수 없었다. 여행은 의도한 고난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걸었더니 체력의 한계에 다달았다. 저녁 7시가 되니 어질어질해서 나는 눈을 감고 걷고 있었다. 전국 1천 3백만 명 중에 나와 살고 있는 남자 1인은 앞서서 걸어갔다. 작년에 우주에서 날아온 아기 남자는 등에 들쳐업었다. 8살 남자어린이는 동생의 유모차에 대자로 누웠다. 뉴욕인지 동네인지 아이들은 영문을 모른채 깊은 잠에 들었다. 오직 기록만이 그날의 기억을 뒤로감아 보여줄 것이다. 남편이 사진을 찍고,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다.
인생은 악몽보다 행복하고, 스릴러 영화보다 꿀맛이다. 로또보다 신기한 확률로 누군가와 만나고, 남편과 아내를 반반씩 닮은 생명들과 가족을 꾸리는 하루를 살고 있으니, 그저 기적이다. 뉴욕에서의 첫 날은 길에서 걸으며 반쯤 잔 것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눈만 감으면 잠에 들 것 같은 시차를 정신력으로 이기다못해 눈을 감고 걸었다. 걸으며 잠잔 적은 평생에 처음이다. 그래도 마냥 좋은 가을의 뉴욕이니까. 40대의 악몽은 아무리 길을 헤매더라도 그 배경이 뉴욕이라면, 가족과 함께라면 더 없이 좋겠다.
<뉴욕에서 남편이 찍은 사진과 아내가 끄적인 글로 구성하였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