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불꽃같은 3일 여행기
네이버는 뉴욕을 '세계에서 가장 트렌디한 도시'라고 소개한다.
한국에서 14시간의 비행시간, 상당히 먼 거리다. 남자 어린이 둘과 함께 가기에 상당히 어려운 행선지다. 괌이나 하와이, 작정하고 멀리 가더라도 LA를 갈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 부부가 뉴욕을 선택한 것은 '뉴욕'이기 때문이다.
보여주고 싶었다. 두 아들에게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화려한 작품을. 만약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하루만에 인간군상을 관찰하고 싶은데 어디로 갈지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나는 의문의 여지 없이 '뉴욕'을 외칠 것이다. 바바리코트를 입고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센트럴파크를 걷고 싶었다. 하루 종일 발이 닳도록 인간이 만들어낸 미술관과 박물관을 걷고 싶었다. 남편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카페에 앉아서 종일 사람들 지나가는 표정만 봐도 행복할 것 같다고 했다.
아이들에게도 말했다.
"그곳엔 세상 모든 문명이 섞여 있고 발걸음이 바쁜 사람들이 많으니 정신차리고 엄마 아빠 손 꼭 잡아야 해. 그리고 여유가 생기면 주위를 둘러봐. 가슴 뛰는 무대가 펼쳐질거야. 특이한 복장을 한 사람이 있어도 너무 뚫어지게 쳐다보지마. 그래. 뉴욕은 누구나 이상해도 괜찮은 자유를 주는 곳이니까. 정신없이 걷다보면 누가 관광객인지, 누가 여행객인지 모를거야. 캐리어를 든 사람, 서류가방을 든 사람이 걸음을 재촉하는 곳, 뉴욕에 갈거야."
비행기 좁은 좌석에서 아이 둘과 몸을 구겨넣은지 13시간이 되었을 때다. 남자 아이들과 장거리 비행을 하면 언제 양해를 구해야 하는 순간이 나올지 모른다. 그래서 뉴욕행 비행은 더욱 피곤했다. 모든 것은 끝이 있기에 아름답다. 기장은 40분 전 승객에게 방송을 했다. 착륙을 위해 고도를 낮출테니, 등받이를 당기고 좌석 팔거리는 제자리에 두라고 했다. 비행기 창문 덮개를 열자, '오!마!이!갓! 탄성이 터져나왔다. 마치 OFF 버튼을 누른 듯 피로는 완전히 사라졌다. 문명이 주는 신선한 전율이 가슴을 뛰게 했다. 브루클린 브릿지 너머로 맨해튼이 한눈에 들어온다. 4년만에 다시 찾은 뉴욕이다.
일단 체크인 후 캐리어도 좀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고 싶었다. 14시간 한숨도 못잤건만, 뉴욕에서는 딱 3일만 머물 수 있기에 첫날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아이들은 도착 즉시 몸무게 가득 실어 우리 부부에게 몸을 맡기고 세상 모를 꿀잠에 빠져들었다.
가성비 뉴저지 숙소로 가는 길에 포트 어쏘리티 터미널을 지나가야 했다. 뉴욕 대중교통 일주일 패스를 호기롭게 샀는데, 뉴저지 가는 버스 티켓은 안타깝게도 따로 돈을 내고 사야 했다. 길을 헤매다가 우연히 터미널 밖으로 나오는 순간! 뉴욕 맨해튼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4세 때 이후 두번째로 뉴욕을 찾은 8살 아들은 10초 동안 입이 떡 벌어졌다. 눈 앞에는 8살 아들은 이제서야 평생 뇌리에 스칠 진정한 여행을 하는 중이다.
자랑스럽게도 타임 스퀘어 전광판의 한 가운데에 삼성 광고가 우리를 반긴다. 낡고 고풍스러운 건물 사이 사이에 새 빌딩들이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간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도시 서울을 생각나게 한다. 서울에 인종의 다양성 파렛트로 물들이고 크기를 10분의 1로 압축하면 미국판 맨해튼쯤 될 것 같다. 아이와 신호등을 건너니 풍만한 가슴을 드러내고 화려한 화장을 한 게이가 담배를 물고 아이에게 윙크를 한다. 미소를 주고 받으며 사람들은 일상처럼 종종걸음을 재촉한다.
친절은 국민성이 아니라, 확실히 살고 있는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뉴욕에서는 엘리베이터 뒷 사람의 문을 잡아주는 일이 드물었다. 도로에선 건너려는 사람만 보아도 멀리서도 멈춰서던 미국인들이었다. 적어도 다른 도시에서는. 미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 뉴욕이다. 횡단보도에 빨간 불이 들어와도 사람들은 일단 몸부터 들이밀었으며, 차들도 마찬가지였다.
차든 사람이든 한 발짝만 더 나가면 아찔한 사고로 이어질 것 같다. 하지만 뉴요커들은 나름의 '룰'로 서로의 안전을 지킨다. 왜 이렇게 양보를 하지 않을까, 교통법규를 준수하지 않을까 궁금했다. 뉴요커들은 모두가 경보선수이다. 그 놀라운 속도의 발걸음이 참 신기했다.
1시간 정도를 걸었을 때 난 알게 되었다. 뉴욕 지하철은 너무 더러워서 잘 안타게 된다는 것. 차, 사람, 신호등이 너무 많아서 아무리 빨리 걸어도 속도가 안난다는 것이다. 그래도 정신 없이 걷다가 정신 차리고 거리를 보면 영화 속 풍경 그 자체이다. 성공에 대한 야심이 도시 전체를 압도하고, 그 속에 사람냄새가 로맨틱하게 살아숨쉰다.
빽빽한 도시이면서도 전혀 답답한 느낌을 주지 않는 이유. 센트럴파크에 있다. 맨해튼 섬 한 가운데 알짜배기 땅에 떡 하니 푸르름이 자리잡았다. 1856년 조경가 옴스테드는 '도심에서 자연으로 최단 시간 탈출'이라는 철학으로 인류의 걸작 센트럴파크를 설계했다. 인공호수, 산책로, 카페, 야생보호구역까지 포함하는 센트럴파크의 면적은 약 103만평이다.
이곳에선 아무 곳이나 돗자리 없이 누우면 그곳이 바로 안방이다. '잔디를 보호합시다' 슬로건은 없다. 대신 뉴요커들은 일광욕할 자유를 선택했다. 파크를 바라보며 편하게 미술도구를 들고 거대한 작품을 완성하는 할머니 뒤로 유유자적 보트를 타는 연인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유모차를 끌고 9월의 뉴욕을 걷는다. 더위와 추위도 없는 9월의 뉴욕이 우리를 허락했다. 파란 하늘에 살랑 바람이 분다. 3일간의 뉴욕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짧고 깊은 뉴욕과의 만남, 바쁨과 평온 속의 여행이 가끔 아니 꽤 자주 생각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