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둥지가 아들에게 들려주고픈 말

by 러닝뽀유

누군가는 말한다. 아이가 그렇게 어릴 때 떠나는 건 가성비 진짜 떨어지는 거라고. 나중에 커봤자 기억도 못할거라고.


머리가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는 확신한다. 아이의 마음 깊은 곳에 함께한 시간이 저장되어 있다고. 문득 너무 아름다운 곳에 도착했을 땐 아이의 휘발될 기억을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대신 사진과 영상으로 찰나의 기쁨을 담는다.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 아래에 아이의 반짝이는 머릿칼을 넘겨주고 촉촉한 뺨을 어루만져준다. 잠시 우리는 머물러 갔지만 사진은 타임머신처럼 그 시절 그곳으로 우리를 데려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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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책장을 정리할 때의 일이었다. 아기 때 읽었던 책에 먼지를 훌훌 털어내고 표지를 닦았다. 신기했던 건 책 한권을 집어들더니, "이거 나 아기 때 진짜 좋아했는데, 또 읽어줘"하는 것이었다. 일도 하면서 아이 키우느라 한참 바빴을 때, 자기 전에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한입의 덥석' 그 책에 꽤 자주 손이 갔다. 반복되는 그림에 글자가 얼마 없어서 피곤한 몸으로도 무리없이 읽어줄 수 있어 내가 부린 잔꾀였다. 수많은 잔꾀 중 하나가 아이에게 좋은 씨앗이 되었다니 희한하다. 8살이 된 아이는 4살 꼬마의 표정으로 과거의 포근한 추억을 곱씹듯 책 속 이야기에 온 몸을 맡겼다. 여행도 이와 마찬가지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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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시절은 세상에 엄마 아빠만 오롯이 존재하는 나이다. 부모는 아이의 가장 안전하고 따뜻한 둥지가 된다. 제2외국어를 습득하는 데는 이른바 황금기가 존재한다는 학설이 있다. 늦어도 사춘기 이전까지 제2외국어에 노출되면 언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가 아이다울 수 있어서, 순수한 눈으로 편견없이 세상을 온 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어린이와 함께 여행한다는 것은 동행자에게도 행운이다. 어린이의 눈동자로 바라본 세계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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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잠깐만 보이지 않아도 마음이 요동치는 사람, 바로 어린이다. 이들에게 여행은 24시간 부모와 종이와 풀처럼 딱 붙어있을 수 있는 행복을 준다. 혼자 신발을 신고 세상으로 걸어나가는 방법을 알려주고, 매일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이 축복의 인사를 선물해준다. 많은 날을 어린이집에서 결석해야 했지만, 지구는 아이에게 학교라는 터전을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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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의 트랙에 서있는동안은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는게 쉽지 않다. 생계를 하는 곳에 뿌리를 두는 기간은 평일 퇴근 후도, 주말도 육체와 정신은 일에서부터 완전히 분리되기 어렵다. 이따금 떠난 여행은 그간 짖누르던 사회적, 경제적 의무에서 잠시나마 OFF 버튼을 눌러주었다. 여행은 그냥 멈추고,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바라보라고 했다. 고맙게도 여행의 순간, 아이는 항상 거기에서 우리를 기다려주었다. 나는 20개월의 제법 큰 아기에게 아직도 모유를 먹인다. 모유를 한 모금 먹는 순간, 아기는 엄마의 존재를 확인하고 사랑을 재충전한다. 가족의 따뜻한 온기와 정성스런 마음이 만나는 곳, 그곳을 우리는 '여행하는 둥지'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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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와 떠나는 여행, 물론 힘들 때도 많다. 한식이 익숙한 아이의 배를 든든히 채워주는 일은 물론이요. 졸릴 때 그늘을 만들어주는 일도 필요하다. 욕구가 좌절되었을 때 아이를 달래는 일, 면역이 부족할 때 컨디션이 돌아올 때까지 밤새 옆을 지켜주는 일은 나를 온전히 내려놓고서야 가능했다. 철없는 우리에게 여행은 멋진 인생 선생님이었다. 돈은 행복을 보장하지 않지만, 가족을 든든하게 지켜주기 위해서 절실한 존재라는 걸 일러주었다. 여행으로 통장 잔고는 가벼워졌다. 하지만 이는 일시에 불과했다. 결핍을 알고 자란 우리 부부는 돈이 얼마나 감사하고, 때로는 무서운 존재인지 알고 있다. 내일 더 넓은 세상을 보려면 오늘 앞을 보고 열심히 걸어야 한다는 걸 체득했다. 때론 소중하게, 때론 냉정하게 돈을 다루고, 매일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경제 공부를 한다. 이젠 혼자가 아닌 둘, 둘이 아닌 넷이 되었기에 세상 끝에서 헤매일지라도 든든하고 그 길에 감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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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사진을 펼쳐보이며, 두 아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아들아.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단다. 세상은 너를 향한 선물로 가득차있다. 환희에 가득찬 마음으로 두근두근 선물 보따리를 펼쳐보는 일, 그것이 여행이다. 축복과 같은 여행을 허락한 세상에 감사의 마음으로 우리의 몫을 다해보자. 때로는 슬픔이 있을거야. 하지만 엄마 아빠와 거닐었던 수많은 길 속에 너를 향한 사랑이 숨어있다는 걸 꼭 기억해. 우리를 선택해서 지구에 온 너, 언젠가 또 다른 여행하는 둥지에서 행복을 꾸릴 너를 응원한다. -엄마 아빠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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