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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Apr 09. 2023

생후 40일만에 주식을 산 아기

배우자 출산휴가는 총 10일이 주어지며, 1회 분할해서 사용할 수 있다. 난 아내가 출산할 때 분만병원과 조리원에 있는 기간 동안 쓴 5일을 먼저 썼다. 그러고 남은 5일을 산후도우미 선생님이 떠난 다음 날인 얼마 전 사용했다. 이 5일 동안의 목표는 두 가지였다. 첫째, 산후도우미 선생님이 떠난 빈자리를 최대한 메꾸는 것. 둘째, 아기의 은행 및 주식 계좌 개설하기. 첫째는 실패했고, 둘째는 시행착오 끝에 성공했다.


은행, 주식 계좌개설은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생각해 둔 일이었다. 아직 아기는 내 품에 안기기만 하면 울지만, 먼 훗날 성인이 됐을 때 불어난 통장과 주식잔고를 보면 아빠 덕이라며 내 품에 안기며 웃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월급쟁이는 꼬박꼬박 적금 넣는 게 최고라는 우리 부모님의 가르침은 내 대(代)에서 끝내기로 일찌감치 마음먹었었다. 아기가 앞으로 갖게 될 ‘시간’이라는 가장 큰 무기를 그저 예적금으로만 무디게 둘 순 없었다.


출산휴가 마지막 날, 난 미리 발급한 미성년자 계좌를 만드는 데 필요한 구비서류를 챙겨 은행으로 향했다. 인터넷 후기를 찾아보니, 미성년자 계좌개설은 시간이 상당히 소요돼 여유 있게 가길 권했다. 집 근처 은행에서 대기인원 4명이 적힌 번호표를 손에 쥐고 내 순서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창구 직원에게 아기의 미래를 챙기는 어엿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인터넷에 재차 계좌개설 후기를 찾아보았다. 아차 싶었다. 필요서류는 다 챙겼는데 인감도장을 놓고 온 게 그제야 생각났다.  자필서명으로 될까 싶어 내 번호가 호출된 뒤 은행 직원에게 물어봤으나 대답은 안된다였다. 이런 기본적인 것도 깜빡하다니. 은행직원 눈엔 멋쩍게 일어서는 내 뒷모습은 어엿하기보단 어리버리해 보였을 것이다.


30-40분의 기다림을 허투루 쓰고서 집에 돌아왔다. 별안간 피로가 몰려왔다. 침대에 드러누워 낮잠을 자고 싶었다. 하지만 출산휴가 마지막 날이라 오늘을 놓치면 당분간 기회가 없었다. 인감도장을 챙겨 6시까지 영업하는 다른 영업점으로 향했다. 다행히 은행에 도착해 얼마 기다리지 않아서 내 차례가 왔다다. 인터넷 후기대로 계좌개설은 시간이 상당히 소요됐다. 직원이 청약통장 개설 시 2만 원 지급이벤트를 진행 중이라며 개설을 권유해 예금, 청약, 주식 계좌 3개를 만들었다. 개설하는 동안 창구 태블릿에 내 서명을 대략 20번도 넘게 한 것 같다. 일부 항목의 서명란에는 ‘ooo(딸 이름)의 법정대리인 부 내 이름 모 아내이름’ 이렇게 길게 써야 했다. 법정대리인은 서명도 길구나 싶었다.


딸의 이름이 선명히 찍힌 통장을 들고서 집으로 들어와 마무리 절차를 진행했다. 이제 내 스마트폰에는 나와 딸아이 것까지 공동인증서가 두 개다. 인터넷뱅킹은 공동인증서를 발급받고 바로 이용이 가능했다. 주식계좌는 증권사 고객센터에 전화해 별도 인증절차를 거치고서야 계좌가 활성화됐다. 계좌개설 다음날엔 얼마 전 아기가 어른들에게 받은 용돈 30만 원을 이체해 줬다. 25만 원어치의 ETF와 배당주를 매수했다. 앞으로 아기가 커가면서 받는 여러 용돈들은 되도록 예금 통장에 넣어주고, 매월 꼬박꼬박 안정적인 ETF와 배당주를 매수할 예정이다. 아기의 자산을 차곡차곡 늘려주며 동시에 경제교육도 어렸을 때 잘해주고 싶다. 아직 아빠로서 안기, 재우기는 무척 서툴지만 법정대리인으로서 챙길 일만큼은 확실하게 해내야겠다 마음먹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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