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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Nov 28. 2021

어머님은 닭볶음탕이 쉽다고 하셨어

엄마가 해주는 게 최고

"닭볶음탕은 왜 이렇게 비싸게 파는지 모르겠어. 얼마나 만들기 쉬운데."


닭볶음탕을 파는 식당에 갈 때마다 매번 엄마는 말씀하신다. 엄마의 주장에 따르면, 닭볶음탕은 만원 후반-2만 원 초반 정도가 적절하다는 것이다. 닭볶음탕은 대개 한적한 교외에 위치한 식당에서 3-5만 원 대 가격으로 판매된다. 식당에서 토종닭을 쓴다면 조금은 납득이 가는 가격이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닭볶음탕 가격의 부조리함을 엄마에게 들어온 터라 성인이 되고 나서도 닭볶음탕은 사 먹지 않았다. 비싸게 느껴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엄마가 해주는 닭볶음탕이 제일 맛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집 근처 태권도장을 다녔다. 학교를 마친 뒤 집에 와 곧장 도복으로 갈아입고서 오후 시간을 태권도장에서 보냈다. 1년 간 태권도장을 다니며 다소 왜소했던 나는 온몸 구석구석에 살집이 붙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태권도장에서 열심히 땀 흘리고 나면 오후 6시 정도였다. 10살짜리 배에서도 천둥이 우르르 쾅쾅 몰아쳤다. 요동치는 배를 붙잡고서 집에 가면 엄마가 차려준 저녁밥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하던 메뉴는 닭볶음탕이다. 밑이 넓은 냄비에 한가득 닭고기와 각종 야채가 맵쪼름한 양념에 어우러져 날 반겨줬다. 닭볶음탕을 먹을 땐 어김없이 밥 두 공기를 말끔히 해치웠다. 배가 어느 정도 부를 때쯤 클라이맥스가 찾아온다. 남은 밥을 야트막한 쟁반에 덜어 엄마가 손수 찢어준 살코기와 양념을 얹혀 비빈다. 배가 부른데도 너무 맛있어서 끝끝내 다 먹었다. 태권도장에서 뛰어논 10살짜리 어린애는 그렇게 엄마의 닭볶음탕 코스를 양분 삼아 쑥쑥 커갔다.


성인이 되고 대학교에 입학한 뒤 타지 생활을 시작했다. 집밥을 먹는 일은 소원해졌다. 교내 구내식당의 3-4천 원 대 메뉴에서 닭볶음탕이 나올리는 만무했다. 그럼에도 종종 닭볶음탕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전주에서 수원까지 엄마가 한두 달에 한 번씩은 올라오셨기 때문이다. 엄마가 올라오셨을 때 수원터미널로 마중을 나갔다. 양손에는 내 자취방 냉장고에 넣을 밑반찬부터 하루 묵을 때 필요한 엄마의 옷가지까지 한가득 짐으로 가득했다. 엄마가 들고 오신 짐을 건너쥘 때 느껴졌던 묵직함에 죄송하고 감사했다.


올라오는 게 힘드시니 이렇게 자주 안 올라와도 된다 했지만, 엄마는 내가 졸업하고 자취방을 비울 때까지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주 올라오셨다. 엄마는 괜찮다 하셨다. 올라오셔서 나를 위해 밥을 짓고, 어질러진 자취방을 치워주고 나면 되려 힘을 얻는다 하셨다. 하나도 힘들지 않다 하셨다.


힘드셨을 것이다. 아들을 위해 1박 2일을, 작디작은 자취방에서 침대도 마다하고 침대 옆 한편 딱딱한 바닥에서 주무시고, 밥과 청소까지 하시고 내려가셨다. 고된 1박 2일이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단 한 번도 힘들다고 하지 않으셨다. 오롯이 아들 하나를 위해 고단함을 감추시고, 전주로 내려가는 버스에서 혼곤히 잠드셨을 엄마의 몸은 세상 어떤 물질보다 무거웠을 것이다.


엄마가 내려가는 평일 낮엔 대부분 수업이 있어 집을 비웠다. 학교 다녀오면 먹으라고 항상 가스레인지에 먹을 걸 올려놓고 가셨다. 그중 하나는 닭볶음탕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텅 빈 자취방에 덩그러니 놓인, 닭볶음탕이 담긴 냄비가 날 반겨줬다. 깨끗해진 방에서 자그마한 테이블을 펴놓고 덥힌 닭볶음탕을 먹었다. 보글보글 닭볶음탕이 익어가며 내는 소리와 냄새는 초등학생 시절 그때와 똑같았다. 혼자서 먹는 것 빼곤.


"닭볶음탕은 왜 이렇게 비싸게 파는지 모르겠어. 얼마나 만들기 쉬운데."


결혼하면서 내가 나름 요리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레시피를 알음알음 따라 하는 수준이긴 해도, 찌개부터 파스타, 리조또에 이르기까지 여러 메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아내의 칭찬을 받아냈다. 닭볶음탕도 두 번 정도 만들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다. 직접 해보니 알게 됐다. 엄마가 닭볶음탕이 비싸다고 한 이유를. 닭볶음탕을 만드는 데 닭 한 마리와 야채 정도만 필요하니 만원이 채 들지 않았다.


그리고 한 가지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레시피를 보면서 내가 만든 닭볶음탕은 엄마와 비교하기엔 한참 모자랐다. 20여 년간 먹어왔던 엄마의 닭볶음탕엔 손맛 뿐만 아니라 사랑과 고단함이 고루 뱄기 때문임을 안다. 엄마의 '얼마나 만들기 쉬운데'에 담긴 숭고함과 깊이를 내가 만든 닭볶음탕을 먹고서야 비로소 알아가고 있다. 닭볶음탕을 사먹지 않는 이유는 더 명확해졌다. 다음 번 전주에 내려가면 엄마가 해주신 닭볶음탕을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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