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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기고래 May 03. 2024

과외도 구직세계는 레드오션 - 1

 그래서 어떻게 과외를 구하는가!

  요즘에야 과외를 소개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이 성황리에 영업 중이지만 내가 과외를 구하던 10년 전만 해도 그런 앱이 전무했다. 과외의 세계에서도 구직시장은 시뻘건 레드오션이었는데 흔히들 대학생이 과외를 얻기 위해 많이 쓰던 방법은 네 가지 정도였다.


그중 첫 번째는 페이스북에 본인의 친척이나 아는 학생을 과외해 줄 사람 찾는 글에 가장 먼저 지원하기다. 지인을 통한 과외교사 구직 시장에서는 스피드가 무엇보다도 관건이었다. <이러이러한 학생 있고 지역은 어디, 성적은 어느 정도, 페이는 협의가능, 과외할 사람>이라고 쓰인 글에 누구보다 빠르게 <저요>라고 댓글을 달아야 했다. 다 고만고만한 스펙을 가진 같은 서울대생들이기 때문에 소개해주는 지인 입장에서도 어떤 정량화되거나 객관적인 기준으로 한 사람을 고르기는 어려워서, 제일 먼저 손 드는 사람에게 과외의 동아줄을 내려줄 수밖에 없다. 나는 운이 없던 것인지, 충분히 성실하게 페이스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이 방식으로 과외 구하기는 2학년 말-3학년 초에 접어든 이후에야 가능했다. 이때쯤엔 인턴을 하기 시작하는 친구들도 있고, 남학생들은 대부분 군대에 가기 때문에 지원자의 모수 자체가 현저히 줄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한다.


이렇게 지인을 통해서 구한 과외의 특징은 아무래도 아는 사람을 통해서 과외를 받았으니 학생이나 학부모님에 대한 정보도 자세하고 풍부하게 알 수 있어 수업 방향을 잡기가 편하며, 과외 학생이나 학부모님 입장에서도 좀 더 나를 믿고 과외를 맡기기가 좋다. 따라서 내가 아주 깽판을 치지 않는 이상 쉽게 잘리지 않고 학생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을 잡고 목표를 향해 함께 달려 나가기가 좋다. 과외라는 게 나만 잘해서 될게 아니고 학생이 시험 결과를 통해서 나의 성과를 증명해줘야 하는 일이다 보니 5년마다 무언가 보여줘야 하는 대통령처럼 눈앞의 성과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이 있다. 이 친구는 기초가 많이 부족하지만 언어적인 센스가 있어서 시험에서 매번 감으로 찍기는 잘하지만 이 답이 왜 정답인지 설명하지는 못한다. 이런 경우엔 장기적인 관점에서 당장 시험 성적을 많이 올리지는 못하더라도 독해의 가장 기본적인 구문 분석이나 어휘, 문법 디테일부터 다시 공부시켜야 한다. 하지만 그러면 단기적으로 시험 성적이 오르기 어렵고, 학생도 학부모님도 불만스러워진다. 따라서 단기 계약직인 과외 교사는 매 달마다 모가지가 걱정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득이 되는 지도 방식보다 눈앞의 시험 성적을 올리기 위한 단순암기나 문제풀기꼼수 전달에 치중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지인을 통해서 과외를 구하게 되면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조금은 더 오래 과외 교사를 믿어주시는 경우가 많아서 다른 과외보다는 비교적 소신껏 수업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또 이렇게 소개받은 과외는 과외 학생이나 학부모님도 너무 골치 아프지 않은 그야말로 매너 과외일 확률이 높다. 매너 과외라는 말이 조금 우스울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도 세상에는 이상한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많다. (물론 이상한 과외 교사도 많을 것이다) 내가 과외를 하며 만난 변태 학생이나 갑질 학부모에 관한 얘기는 차후에 자세히 풀어보도록 하겠다. 아무래도 서로 아는 사람을 통하다 보니 정말 안 좋은 케이스가 걸러지게 되는 것 같다.


 두 번째 방법은 학교 커뮤니티 과외 구하기 게시판에 구인글이 올라오면 내 프로필을 정리해서 쪽지를 보내는 방법이다. 우리 학교 커뮤니티에는 과외 구하기라는 게시판이 있었는데 이곳에는 자신의 가족을 위한 과외교사, 아니면 원래는 본인이 수업을 하고 있었지만 유학이나 취직 기타 이유로 수업을 못하게 돼서 후임을 구한다든가,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학생의 다른 과목 과외 선생님을 구한다든가 등의 사연이 올라온다. 거의 대부분 글쓴이에게 쪽지로 자신의 스펙과 연락처를 보내면 작성자가 학부모님과 상담 후 연락 준 사람 중에 적임자를 찾아 과외를 인수인계하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으로 과외를 얻으려면 우선 어느 정도 경력이 쌓여야 한다. 지인도 아닌 생판 남에게 쪽지를 받아서 과외를 연결해 주는데 주선자도 학부모님에게 이 사람이 이렇게 이렇게 잘 가르치고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할 거리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1학년은 사실 이 방식으로 과외를 구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물론 예외는 있다. 가끔 어떤 학부모님들은 입시를 갓 겪은, 나이가 많지 않은 신입생들이 입시의 트렌드를 가장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해서 최대한 어린 과외교사를 찾는다고 못 박기도 한다.) 과외구인 짬이 좀 찼을 때, 나는 아예 핸드폰과 노트북 배경화면에 과외 구하기 게시판으로 바로 가는 링크를 아이콘화해 두고 시간 날 때마다 들어가곤 했다. 그리고 내 경력이나 특이사항, 수업 방식 등을 미리 메모장에 써두고 그걸 복붙 해서 보내곤 했다. 이것은 마치 물고기를 잡기 위해 떡밥을 미리 뭉쳐놓는 것과 같다. 저 멀리 대어가 나타났는데 그때서야 부랴부랴 손에 떡밥 뭉쳐서 낚싯바늘에 걸면 물고기는 이미 다른 베테랑이 잡아가고 없다. 언제든 낚싯대를 던질 수 있게 학생의 나이, 과목, 원하는 수업방식에 걸맞은 자기소개를 여러 종류 만들어놓고 맞춤형 떡밥을 던져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 제발 저를 뽑아주세요>라고 외쳐야 했다.


이렇게 얻은 과외는 그야말로 극과 극이라는 말이 딱이었다. 학생도 학부모님도 너무 좋은 분이셔서 자기도 이 과외를 놓치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후임을 구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도저히 이 과외를 계속할 수가 없는데 학부모님이 서울대 학생으로 후임을 구해달라고 이야기해서 그야말로 폭탄 돌리기처럼 과외를 넘기는 경우도 있었다. 폭탄 돌리기라는 말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엔 놀랍게도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아이에게도 소리 지르고 과외교사에게도 소리 지르고 남편에게도 소리 지르는 그런 어머님도 계신다. 내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안 좋은 방식으로) 과외도, 너무 좋아서 평생 연락하고 지내고 싶은 과외도 모두 과외 구하기 게시판을 통해 만난 인연들이다


이 방식으로 과외를 구하면 비교적 과외하기가 수월한 것이, 학부모님이 이미 대학생 과외교사에게 충분히 익숙해져 계신 경우가 많아서 대학생의 시험기간에 대해서나, 페이를 협상할 때 따로 길게 말씀드리지 않아도 배려를 잘해주셔서 과외교사 입장에서 참 편하고 좋았다. 또 전임 과외교사와 직접 소통을 할 수 있으니 선생님 입장에서 이 학생이 어떤 학생인지, 어떤 부분이 부족하고 수업은 그간 어떻게 해왔는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게 아주 큰 장점이다. 전임 과외 교사와 소통하지 못하고 과외를 이어받게 되면 학생이나 학부모님을 통해서만 그간 어떻게 수업을 해왔고 학생의 강점과 약점을 전달받게 되는데 아무래도 그러면 100% 정확한 이야기를 알기가 어렵다. 학부모님들은 대부분 우리 아이는 머리는 좋지만 노력을 안 하는 게 문제라고 하시고, 학생들은 어디까지 진도 나갔는지, 단원평가는 어떤 식으로 해왔는지 등 뭘 물어도 모른다고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나도 사람인지라 전임 선생님에게서 <이 학생은 제가 참 아끼는 너무 성실하고 맘씨가 고운 학생입니다, 이 학생을 위해 자신이 이런저런 노력을 해왔는데 아쉽게도 더 이상 수업을 하지 못하게 됐다, 부디 잘 부탁드린다>는 얘기를 들으면 책임감이 아주 조금이라도 더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과외 학생에 대한 책임감이 남다른 선생님들 중에는 이렇게 과외를 넘겨주실 때 직접 카페에서 만나 이제까지 제작했던 과외 관련 자료를 공유해 주시고, 학생의 학업적인 특성뿐만 아니라 성격은 어떤지, 그래서 수업이나 숙제 지도편달은 어떻게 하는지, 학부모님은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시는 걸 선호하는지 등등을 정말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다. 이럴 때는 정말 내가 단지 어떤 '일'을 전달받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한 가족과 맺은 인연을 그대로 전달받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괜히 맘 한편이 따뜻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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