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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기고래 May 10. 2024

과외도 구직세계는 레드오션 - 2

그래서 어떻게 과외를 구하는가!

지난 글에 이어 과외를 구하는 세 번째 방법은 여러 동네에 직접 발품을 팔아 내 전화번호와 프로필을 적은 전단지를 붙이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역삼동이나 청담동 같은 소위 부자 동네에 가는 게 우리들 사이에선 효과가 좋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대치동이나 목동은 학원 강사 프로필이 워낙에 화려해서인지 과외보다는 학원이 좀 더 유세한 느낌이라 오히려 잘 가지 않았다. 전단지를 주로 붙이러 가는 시기는 학기 중보다는 방학 때였다. 동네에 있는 큰 아파트 단지 여러 곳을 돌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이렇게 전단지를 붙여서 얻은 과외는 시범과외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아무래도 지인을 통한 어떤 믿음의 벨트가 없다 보니, 이 사람에게 과연 우리 아이를 맡겨도 되나 의구심이 드는 게 당연한 일일 거다. 



그럼에도 이 전단지 붙이는 방법의 가장 큰 장점은 한번 학생을 맡고 수업을 잘하기만 하면, 고구마 수확할 때처럼 줄줄이 과외가 들어온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되면 단지 내에서 여러 과외를 하게 되니까, 이 과외에서 저 과외로 갈 때 이동 시간이 적기도 하고 다들 같은 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분석해야 할 학교 기출 족보도 하나로 통일돼서 교재 연구나 문제 만드는 시간이 엄청나게 줄어든다. 또 운이 좋으면 그룹과외를 하게 되는데 그룹과외야 말로 대학생 과외교사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꿈의 직장이었다. 수업에 쓰는 시간과 에너지는 거의 비슷한데 페이는 순식간에 2-4배가 되기 때문이다. 방학 문법 특강과 같이 일종의 프로젝트성 그룹 과외를 하고 온 친구는 한동안 쿨하게 커피나 와플을 친구들에게 사주곤 했다. 정말 이 전단지 붙이기는 한번 시작하게 되면 너무 좋은 과외였지만 사실 그 문은 소수에게만 열려있었는데, KMO를 준비하거나 특목고 입시 준비생들에게 효과가 좋아서 주로 과학고나 외고를 나온 친구들에게 성공률이 높았다. 아무래도 게시판 곳곳에 붙는 과외 학생 구인 벽보 중 학부모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그런 키워드가 효과적이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학원에서는 같은 비용으로 소수의 학생들끼리 해당 내용을 배우기는 어려워서가 아니었을까 추측할 뿐이다.


정작 나는 전단지를 붙여본 적은 없지만 친구가 전단지를 붙이러 갈 때 도와주려고 따라간 적은 있다. 아파트 단지에 전단지를 붙이려면 관리사무소의 직인이 찍혀있어야 가능했기 때문에 먼저 관리사무소로 가서 <안녕하세요 저 과외학생 구하는 전단지 붙이려고 하는데요>라고 세상 가장 어색한 인사를 한다. 우리 어릴 때 친구 집에 전화하기 전에 언제나 하는 절차가 있지 않나. <안녕하세요 저는 ㅇㅇ이 친구 xx라고 합니다. ㅇㅇ이랑 놀고 싶어서 그러는데요 혹시 ㅇㅇ이 집에 있으면 바꿔주실 수 있나요?>라는 멘트를 열심히 외우고 막상 전화를 걸면 전화를 받은 친구 엄마는 안녕하세요 까지만 듣고도 <어~ xx구나~ 잠깐만> 하고 친구를 바꿔주시기 마련이었다. 관리사무소에서 전단지 허가를 받을 때도 똑같았다. 관리사무소 문 앞에서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대학교에서 ㅇ을 전공하는 학생입니다. 단지에 과외학생 구하는 전단지를 붙이려고 하는데요 혹시 절차가 어떻게 되나요>를 열심히 연습해서 들어갔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안녕하세요만 했는데 <과외 광고 붙일라고요? 요거 작성하시고 신분증 주세요>라고 자동응답기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 이마에 과외 학생 구함이라고 쓰여 있기라도 한 것인지...!? 그때는 너무나 의아하고 신기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딱 봐도 대학생 같은 애들이 방학 기간에 우물쭈물하며 손에 어떤 전단지 뭉치를 들고 들어오면 물어보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 뻔히 보일 것 같긴 하다. 직인을 받고 단지에 따라 다르지만 5만 원이 넘지 않는 선에서 수수료를 내면 관리사무소에서 알아서 붙여주시는 곳도 있었고 우리가 직접 붙여야 하는 곳도 있었다. 전단지를 붙이러 가면 이미 붙어있는 다른 전단지들이 괜히 견제되기도 하고, 우리 전단지가 눈에 더 잘 띄어야 하니까 스티커보 붙여보고 형광펜으로 여기저기 키워드 색칠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전단지를 붙이고 돌아오는 길에 혹시라도 바로 전화가 올까 봐 폰을 벨소리 모드로 바꿔놓고 광고문자인 줄도 모르고 울리는 알림음에 일희일비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괜히 공부방 벽보 같은 걸 보면 그때 기억이 나서 남 일 같지가 않다. 비뚤게 붙어있거나 압정이 대충 박혀서 떨어질랑 말랑하면 괜히 내 일 마냥 다시 고쳐서 붙여놓게 되는 건 과외알바가 너무 간절했던 예전의 나와 내 친구에게 전하는 응원의 마음인 것 같다. 


과외를 구하는 네 번째 방법은 지금은 김과외 같은 앱이 대신하고 있는 과외중개사이트에서 달에 5만 원 정도의 수수료를 내고 학부모들에게 내 프로필 보내기였다. 그때만 해도 앱이 아닌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주로 프로필을 보내게 됐는데 이 중개 사이트에서는 주로 교대를 다니고 있는 학생들이 인기가 참 좋았다. 그들은 사이트 메인에 이달의 과외교사처럼 사진과 약력이 걸려있곤 했는데 그게 그땐 또 어찌나 부럽던지 ㅎㅎ 나 같아도 곧 선생님이 될 재목들에게 아이를 맡기고 싶겠다는 생각이 들어 괜히 주눅 들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이 과외중개사이트를 통해 학생을 구하면 항상 과외를 오래 하기가 어려웠다. 이유를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인터넷을 통해 과외를 구하는 분들은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과외를 구하셨던 건지 다른 경로를 통해 구한 과외에 비해 현저하게 짧은 기간 동안만 과외를 할 수 있었다. 시범과외를 통해서 이미 친 중간고사 해설을 다 해줬는데 시범과외비도 주지 않고 연락을 받지 않으신다던가, 3-4달 과외를 하는데 매번 과외비 지급을 미루고, 연락이 되지 않으셔서 과외비를 두 번밖에 못 받고 결국 그만두게 된 경우 모두 중개사이트를 통해 구한 과외들이었다. 


사실 과외를 진행하면서 문제의 원인은 학생보다는 학부모님에게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수업에는 지장이 생기고 피해를 보는 건 학생인데 이걸 학생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시험을 대비하려면 목표와 기간을 정해서 함께 노력하고 학습량도 그에 따라 정해야 하는데 기약 없이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수업은 그걸 어렵게 만들었다. 물론 학생을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건 부모님이겠지만 나는 나름의 책임감과 애정을 가지고 학생을 대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닥칠 때마다 학생에게 최선을 다 할 수 없게 돼서 내가 다 미안했다. 그래서 예전에 이런 일이 생기면 뭔가 내가 학생을 제대로 돕지 못한 것 같고, 사명을 다 하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 죄책감 그리고 정말 나는 최선을 다했나 하는 자기 검열 때문에 수업을 하는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데도 쉽게 그 과외를 그만두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수많은 학생들과 부모님들을 만나고 또 나의 한계도 인정하게 되면서 이제는 그런 학부모님을 만나면 <우리의 인연은 여기 까지구나~ 어쩔 수가 없다>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만둔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마치 이 아이의 인생을 바꾸겠다는 말도 안 되게 비대한 자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었던 것 같다. 그간 내가 학생들을 꾸준히 가르치면서 그들도 나를 성장시켰구나 라는걸 새삼 깨닫는다. 이 시리즈는 10년간 내가 만난 과외학생들, 학부모님들 그리고 그동안 돈벌이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어떻게 변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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