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결국엔 돈, 시작도 돈
성인이 되기 전 나와 내 주변을 서열화할 수 있는 건 사실 성적뿐이었다. 등수별로 도서관자리표를 만들고, 좀 잘한다 싶으면 점수를 리스트업 해서 반별로 돌렸던 서열화의 절정인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서로를 구별 짓는 가장 큰 요인은 성적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대학이라는 곳에 던져지면서 이제 서열화 사회는 떠나온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사회는 고등학교보다 더 큰 서열화 세상이었고 성적뿐이 아닌 많은 다른 요인들로 서로를 개념화하고 인식했다. 그중 하나가 돈이었다.
학부 초반에 가장 생경했던 건 아빠가 병원장이라더라, 누가 발망 재킷 몇천만 원짜리를 입는다더라 라는 이야기들을 정말 공개적으로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잘 사는 애들을 두고 '대구 유지', '서초동부자'등의 별명을 붙였다. 그냥 뒷얘기 수준이 아니라 "어 대구 유지 왔어~?" "ㅇㅇ이 서초동부자잖아~"라는 식의 굉장히 공개적인 이른바 담론이었다. 이게 천박하다든가 무례하다든가의 판단을 하기도 전에 이미 모두가 그렇게 말하고 또 부르고 있었고 어떤 옳고 그름을 생각하기보다는 '아 대학은 이렇게 낯선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직접적으로 나에게 가난하다고 말하거나 부자라고 하는 게 아니니까 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냥 그렇구나라고 여기기도 쉬웠다. 내가 처음으로 남들과의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면서 출발점이 다르다고 느꼈던 건 돈벌이를 시작하려고 하면서부터였다.
부모님은 용돈으로 주시던 월 40만 원은 매일같이 친구들이랑 커피 마시고 밥 먹고, 어디 놀러 가서 옷도 좀 사고 지하철비 내고 나면 2주면 뚝딱이었다. 앓는 소리를 하면서 부모님한테 추가 용돈을 타내다 보면 '대학 오면 내가 놀고 싶은 대로 다 놀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죄다 돈이구나, 다 할 수는 없구나' 하며 아쉬워하기 일쑤였다. 아침 7시에 집에서 나가 밤 12시 반까지 자습을 하던 고등학교에서는 매점 가서 초코 다이제나 망고코코 살 수 있는 몇 천 원이면 생계가 해결됐지만 이곳에서는 밥을 먹는 것도 돈, 친구를 사귀기 위해 어딘가 같이 가는 것도 돈, 내가 걷는 발자국 하나하나가 다 비용으로 잡히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 학기를 살다 보니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알바나 과외를 하며 돈을 벌기 시작했다. 보통의 아르바이트는 한 달 일해야 돈을 받을 수 있는 후불제였던 반면, 과외는 언제나 선불이다 보니 한 번에 목돈을 마련할 수 있고, 내가 이미 아는 내용을 일주일에 두 번 가서 가르치기만 하면 된다니 이런 꿀장사가 있나? 싶어서 처음에는 거의 화수분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중고등학생 시절 시험공부를 가장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 중 하나가 스스로에게 또는 남에게 내가 이미 공부한 내용을 가르치듯이 말해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설명하는 데에는 너무나 자신이 있었다. 더구나 학생 시절 친구들이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부분이 이해가 안 된다고 찾아와서 설명해 주면 <와 너무 쉽다 네가 선생님보다 잘 가르치는 듯>이라고 칭찬도 왕왕해줬기 때문에 마음만은 이미 내가 설리번이요, 신사임당이요, 몬테소리였다.
무엇보다도 스무 살 밖에 안된 나지만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설렘에 과외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씀씀이는 한 1년 넘게 과외해 온 사람처럼 조금씩 불어나갔다. 게다가 최저 시급으로 책정되는 여타 아르바이트와는 달리 시급이 최소 25000원부터 시작하는 과외는 '아니 내가 이런 큰돈을 받아도 되는 것인가' 황송한 마음마저 들게 했다. 시급 25000원이 10년째 동결된 과외시장의 바텀라인이라는 것은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된다.
다만 과외는 그렇게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대구 유지나 창원 유지는 부러웠던 적이 없었는데, 서울에 적이 있고 부모님의 인맥 또는 스스로의 인맥으로 과외를 여러 개 소개받는 친구가 나에겐 가장 부러웠던 일종의 상류계급이었다. 처음으로 서울 사람이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한 번도 부모님이랑 떨어져서 타향에 사는 것이 서글프다고 느끼지 않았는데 나의 첫 돈벌이인 과외를 소개받으려고 하니까 그제야 실감이 났다. 다들 오랫동안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서 그 뿌리를 타고 옆으로 퍼져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나는 부유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제야 허겁지겁 내 힘으로 뿌리를 내려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기 시작했고 앞으로도 내가 계속 서울에서 살아간다는 건 이런 식이겠구나, 오롯이 내 힘으로 터전을 일궈야겠구나 싶었다. 아무도 생판 모르는 남인 나를 도와줄 리 만무한 낯선 곳에 산다는 것이 처음으로 가시화돼서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물론 그때는 이렇게 정제된 단어로 생각하지 않았고 나 같은 타향출신 친구들이랑 과일소주나 거나하게 먹으면서 "어흑흑 나도 과외하고 싶어" 하며 징징댔더랬다.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외롭다.... 오늘도 마음속에서 까만 새가 운다...'면서 똥글도 많이 남겼다. 그러면서 나의 힘으로 이곳에서 과외 자리를 찾는 방법에 대해 조금씩 터득하게 된 게 1학년 2학기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