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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맛있는독서 Jan 02. 2024

17. 매혹적인 독서의 시간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원고지를 앞에 둔 당신에게>_금정연


숨죽이며 책장을 넘기던. 어린 독자의 방으로 오직 매혹만이 존재하던 순수한 독서의 시간으로. 우리가 시작했고. 언젠가 떠나왔지만, 결국에는 다시 찾게 될 ‘잃어버린 세계’로.

(p.193)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원고지를 앞에 둔 당신에게>(어크로스, 2017)라는 제목을 보고  어떻게 하면 ‘멋진’ 작법을 할 수 있는가를 조목조목 설명하는 걸까?라고 나름대로 짐작을 했었습니다. 작가는 제목에 ‘멋진’이라는 단어를 넣는 것에  상당한 부담감을 느꼈다고 서문에 고백합니다. 결국 편집자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도 정말 ‘멋진’ 신세계가 아니었다는 아이러니로 설득했다고 합니다.


 서평은 한 권의 책이 아닌 하나의 문장에서 시작한다.

(p.10)


라는 작가의 표현에 격한 공감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평을  쓸 때는 결국 책 속에서 가장 큰 울림을 준 하나의 문장에서 나의 이야기가 시작되곤 합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 혹은 자기의 생각을 글로 씁니다. 그렇다고 독자가 작가의 생각대로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독자에게는 작가의 글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가 중요합니다. 책을 읽을 때 마음에 드는 문장에 표시를 하기도 하고 표시된 문장 위주로 재독을 하기도 합니다. 작가의 고뇌 속에 골라진 수많은 단어들이 적당한 자리를 잡고, 아름답게 어우러진 문장 속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문득 빛을 냅니다. 작가는 서문에 “하나의 문장은 그 자체로 완벽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문장을 다른 맥락 속에 위치시킬 때, 다른 문장들과 만나게 할 때, 완벽함이 생각만큼 대단한 가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된다.”(p.10)라고 적었지만 ‘하나의 문장’을 발견한 그 순간이 독자가 자신이 읽은 책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를 깨닫게 되는, 가장 완벽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원고지를 앞에 둔 당신에게>에서 작가 금정연은 1부 ‘삶과 문장 사이’에서 18권, 2부 ‘독자와 작가 사이’에서 16권, 총 34권의 책을 꺼내 듭니다. 1부에서는 책을 고르는 기준, 완벽하거나 마음에 들었던 문장에 대한 이야기, 서문과 제목, 삶에서 깨닫게 된 앎을 이야기합니다. 특히 서문에 관한 내용 중에서 작가는 ‘서두일미’라는 표현으로 서문의 맛을 “어떤 책을 맛보는 데 가장 좋은 것은 그 책의 서문을 읽는 것”(p.54)이라고 말합니다.  나 역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매우 흥미로왔습니다. 2부에서는 독서가이자 서평을 쓰는 작가의 입장에서 글을 쓰는 행위들과 관련된 마감의 압박, 글감의 고민, 직업인으로서 느끼는 감정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순수한 독서가가 가지고 있는 “오직 매혹만이 존재하던 순수한 독서의 시간”(p.193)에 대한 그리움도 담고 있습니다.   

  

 작가 금정연은 과거 온라인 서점 인문 분야 MD로 일하다가 서평가로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스스로를 ‘서평을 쓰지 않는 서평가’로 소개하지만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서평을 읽게 만드는 서평가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서서비행>, <난폭한 독서>, <아무튼, 택시>, <담배와 영화>,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습니다>를 썼고 <문학의 기쁨>, <지금은 살림력을 키울 시간입니다>, <나의 복숭아>를 공동 저술하였습니다. 영화 <나랏말싸미>의 시나리오를  작업했으며 23년 7월 푸른숲에서 정지돈과 공동집필한 에세이 <우리는 가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를 출간하였습니다.  

    

 우선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원고지를 앞에 둔 당신에게>를 읽으며 금정연 작가의 방대한 독서량생각보다 긴 독서의 기록들이 놀랍기만 하였습니다. 책 속에서 생각의 문을 왈칵 열어 제키는 문장을 발견하는 기쁨이 중요한 독자라면,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원고지를 앞에 둔 당신에게>는 작가가 어떤 문장에서 그러한 경험을 했는지, 그 작품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라고 딴지를 거는 것이 또 다른 즐거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독서라는 매혹적인 시간을 사랑하는 독자에게 금정연 작가만이 줄 수 있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한 번쯤 읽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하지만 솔직히 누군가가 추천하는 책들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던 독자라면, 금정연 작가가 말하는 문장들이 흥미를 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독서란 매우 개인적인 사유가 일어나는 활동이니까요. 그럼에도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면, 금정연의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원고지를 앞에 둔 당신에게>를 읽어 보는 것이 썩  괜찮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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