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새의 선물> 은희경
삶도 그런 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작가 은희경은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이중주>가 당선되면서 등단하였습니다. 같은 해 첫 장편소설 <새의 선물(문학동네), 2014> 이 제1회 문학동네 소설 부문에서 수상합니다. 은희경 작가가 12살에 스스로 성장을 거부한 진희를 주인공으로 한 <새의 선물>은 여성 성장 소설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소설집 <타인에게 말걸기>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상속> 등과 <새의 선물> <마지막 품은 나와 함께> <그것은 꿈이었을까>를 비롯한 다수의 장편소설, 산문집 <생각의 일요일들>이 있습니다.
<새의 선물>의 주인공은 여자′들입니다. 12살 진희와 이모 영옥.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주변에서 평소라면 주의하여 보지 않았던 여자들(외할머니, 광진 테라 아줌마, 장군이네 엄마, 미스 리 등등)의 삶이 있습니다. 외할머니 손에 크는 진희는 엄마를 잃고 아빠와 헤어져 자라며 또래에 비해 조숙한 편입니다. 여자의 삶은 뒤웅박 팔자라는 외할머니의 말씀에 왜 그들은 자신의 삶에 저항하지 않는지 궁금해합니다. 사춘기가 시작되는 나이의 진희는 여자 인생을 결정하는 가장 큰 사건은 ‘사랑’, 특히 이성 간의 감정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모를 비롯한 여자들의 삶을 관찰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기 시작합니다. 진희는 자기 주변의 여성들의 삶을 관조하면서 ‘사랑’이 ‘삶’과 어떻게 관계 맺음을 하는가에 대해 나름의 통찰을 얻습니다. 결국 여자의 삶은 사랑이라고 믿는 것에 결정되고 속박되는 것이라는 결론을 도달한 것입니다.
은희경의 장편 <새의 선물>은 1969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박정희가 3선 연임에 성공하고 미국에서는 아폴로 11호가 인류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합니다. 사회가 떠들썩하게 변화하며 새로운 70년대를 꿈꾸는 시기였지만, 가부장적인 사고방식과 성에 대한 고정관념, 편견은 남자와 똑같은 사회구성원이지만 그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여자에게 불리한 시절이었습니다. 외할머니처럼 여자가 아닌 할머니로 존재하거나 광진 테라 아줌마처럼 피해자임에도 죄인처럼 살아갑니다. 같은 여자이자 미운 정 고운 정으로 맺어진 이모 영옥의 아픔을 바라보는 진희의 시선 역시 여자의 삶의 깊은 이해는 보이지 않습니다. 12살의 진희는 당돌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삶을 너무 빨리 완성했다.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라는 목록을 다 지워버린 그때,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새의 선물>을 읽은 독자에게 자신의 삶을 거리 밖에서 바라보기를 원한 진희가 12살의 나이에 인생의 허와 실을 모두 이해한 것일까요? 라고 묻고 싶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고정화된 여성성에 반대하는, 그래서 사회가 바라는 여자로 성장하지 않기 위해 성장을 거부한 이야기. 성인이 되어서 사회구성원 안에 굳어진 여자의 역할을 거부하며 살지만, 스스로 과거의 여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사랑’이라는 관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은, 허세로운 진희의 이야기. 당신은 어떠셨나요? 정말 궁금합니다.
딴지 한 마디: 앞서 <새의 선물>은 여성 성장 소설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진다고 소개하였습니다. 주인공이 여자(성장하면 소녀에서 여자가 되니까)이기 때문에 성장 소설 앞에 ‘여성’이란 단어가 붙였구나 하고 짐작하지만, 굳이 ‘여성’을 붙여야 했을까요? 대표적인 성장 소설 ‘양철북’을 남성 성장 소설이라고 부르지 않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