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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승호 Mar 16. 2024

고3이 뭐라고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딸이 고 3이라서 친구들이 함께하는 제주도 부부 동반 여행에 동행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랜만에 함께하는 부부 동반 여행인데 웬만하면 함께 하자고 했더니 “아니, 딸내미가 고 3이

라니까. 고 3! 고3 부모가 어떻게 여행을 가?”라며 소리를 높이더군요. 그 기세에 눌려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전화를 끊긴 했지만 씁쓸함을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고 3 학부모는 여행을 가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자신 있게 펼치는 사람이 어디 이 친구뿐이겠습니까. 고 3이 벼슬이고 고 3 학부모도 벼슬인 사회. 고 3이면 가족 모임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고,아니, 참석하는 것이 이상하고, 고 3 학부모는 1년 내내 부모님을 찾아뵙지 않아도 되는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고 3아 공부의 노예 되는 게 이해되지 않는데  고 3 부모까지 노예가 되어야 하는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고 3은 정말로 쉼 없이 공부만 하며, 또 부모가 옆에서 보살펴 주어야만 성적을 올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일까요? 고 3 담임을 여러 번 해 본 현직 교사로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대 아닙니다. 고 3 학생들에게 “친척들이나 주변 어른들이 고 3이라고 애쓴다고 하면 겸연쩍지 않니?” 물으면 아이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고 3 학생도 고 3 학부모도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속이고 다른 사람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고 3이라 해서 쉼 없이 공부하는 것 아니고, 쉼 없이 공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설령 쉼 없이 공부한다고 해서 실력이 향상되는 것도 아닙니다. 

 고 3 학부모가 자녀를 위해 자신의 일까지 내팽개치고 해야 할 것은 없습니다. 희생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도와줄 일이 없습니다. 부모가 여행을 가지 않는 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은 엄청난 착각입니다. 수능을 한 달 앞둔 어느 날 모 방송국에서 학교에 취재를 왔습니다. 그날 저녁 뉴스에는 열심히 수업에 임하고 있는 우리 학교 

학생들의 모습을 담은 자료 화면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기자의 설명이 흘러나왔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돕니다. 1분 1초가 아까운 수험생들은 선생님의 설명을 하나라도 놓칠까 선생님 설명에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합니다. … 수험생들은 갈수록 커지는 부담감을 뒤로한 채 출제 유형별 문제 풀이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 뉴스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습니다. 기자의 설명이 사실과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지요. 그날 화면 속 아이들은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 외에는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긴장감 없이 졸다가 자다가를 반복하였습니다. 선생님의 설명을 귀담아 듣는 아이보다 피곤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아이가 훨씬 많았습

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은 고 3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3월 중순까지 고 3 교실에는 긴장감이 돌고 열심히 공부하는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하지만 3월이 채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졸고 자고 떠들기 시작합니다. 물론 기자가 거짓말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 겁니다. 다만 뒷모습을,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지요. 거기에 어설픈 상상력과 시청자들의 기대를 반영하여 의도치 않은 엉터리 보도를 한 것이겠지요. 

 고 3 자녀에게 무관심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지나친 관심,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관심, 부담을 주는 관심, 시간을 빼앗는 관심은 아이의 마음에 부담과 고통을 주어 오히려 공부를 방해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를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 즐겁게 생활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취미 생활을 즐기면서 삶을 가꾸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아이도 행복한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할 수 있습니다. 고 3 학부모님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아이에게 뭔가 해주고 싶으시죠? 고 3 학부모로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지요? 안 하면 나쁜 부모인 것 같은데 뭘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우시죠? 고 3 학부모라고 특별히 아이에게 해 줄 일은 없습니다. 없는 일을 억지로 만들어서 할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돕는다고 나섰다가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

다. 쓸데없는 참견으로 아이를 귀찮게 하고 짜증나게 하는 부모가 되고 싶진 않으시죠? 그러니까 공부는 학생이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되새김질하셔야 합니다.

 쓸데없는 참견으로 아이들 공부 방해하지 마시고, 부모님께서는 본인의 일과 취미 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즐겁게 지내세요. 아이들을 믿어 주고, 아이들에게 스스로 할 기회를 주고 지켜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부모님이 해 줄 수 있는 일은 세 가지밖에 없습니다. 믿어 주는 것, 아침밥 먹도록 하는 것, 일찍 자도록 지도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스스로 하도록 기회를 주고 도와달라고 부탁할 때에만, 그것도 아이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이 될 때에만 도와주시면 됩니다.”

 말을 물가에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억지로 먹일 수 없는 것처럼, 부모가 학생에게 억지로 공부를 시킬 수는 없습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가 즐겁고 신나게 공부할 마음을 가지도록 하는 것인데 채찍보다는 당근이 좋고 믿음과 격려와 칭찬, 그리고 기다림이 중요합니다. 주말이면 산이나 들이나 바다에 사람들이 북적입니다. 자연 속에서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런데 그 인파 속에 중·고등학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공부 때문입니다. 공부를 핑계로 아이들은 계절의 변화도 느끼기 어려운 닫힌 공간에 머물러 있습니다. 계절이 바뀌는 것도, 꽃이 피고 지는 것도 모른 채.

 공부가 뭐라고 시멘트 공간에 갇혀 새소리 바람 소리조차 느끼지 못하고, 고 3이 뭐라고 온 가족이 볼모로 잡혀 숨죽이고 살아야 할까요? 정작 고 3은 특별 대우를 원하지도 않는데 왜 특별대우를 해 주지 못해 안달일까요? 공부하는 고 3도 있지만 공부하지 않는 고 3도 많습니다. 공부에 재주가 없고 무엇보다 지쳤기 때문입니다. 누가 지치게 만들었을까요? 못난 어른들입니다. 공부도 노동입니다. 고 3도 인간입니다. 고 3이라고 특별한 존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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