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기주도학습인가?

사춘기님의 스스로 학습법

by 이보람

왜 자기주도학습인가?


학부 때 교양 과목으로 교육학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23년쯤 지났지만, 그 수업에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 과제가 있는데, 바로 ‘책상 서랍 속의 작은 동화’라는 장예모 감독의 중국 영화를 학우들과 함께 감상하고, ‘교육과 관련지어 영화 감상문 작성하기’. 쉽지만 어려운 과제였다.

2002년 대학교 새내기였던 나에게 ‘그냥 영화 감상문’도 아니고, ‘교육과 관련지은 영화 감상문’이란 굉장히 ‘대학교스럽고’, 대단히 고차원적인 ‘논술 그 이상’의 영역이었다. 숨 쉴 틈 없이 박진감 넘치는 SF영화나 내가 좋아하는 범죄 스릴러 영화와는 180도 다르게, 중국의 시골 내음이 공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이 영화는 너무나도 잔잔했다. 막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의 티가 너무 나지 않으면서도(나의 부족한 문장력이 탄로 나지 않으면서도) 나름 고품격으로 과제를 수행하고 싶은 마음, 뭔가 이 과제로 이름을 날려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독서 감상문이든 영화 감상문이든 무슨 감상문만 쓰라고 하면 한숨부터 나오는 나였기 때문에 꽤나 고민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굳이’ 교육과 관련지어 힘겹게 작성해서 제출한 후, 교수님께서는 수업 시간에 짬을 내어 영화에 대한 교육학적 피드백을 전해주셨다. 선 피드백, 후 감상문이었다면 덜 창피했을 것을......선 감상문, 후 피드백이었던 현실이 굉장히 원망스러웠던 순간이었다.


영화의 내용은 대강 이렇다. 시골 초등학교의 임시 교사가 된 소녀가 학생 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한 학생이 돈을 벌기 위해 학교를 떠나고 만다. 소녀는 그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고 끝내 학생을 찾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학생과 교사가 모두 성장하며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 가는 잔잔한 이야기. 여기에서 ‘교육’을 어떻게 찾으란 말인가.....


하지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했던 그 수업의 기억은 약 23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영화 속 남자 아이가 칠판에 그린 꽃. 사실 누가 봐도 꽃은 아니다. 그저 동그라미 밑에 작대기 하나 직 그어 놓은, 꽃보다는 막대 사탕과 더 비슷한, 좋게 말하면 심플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유치하기까지 한 ‘막대사탕 닮은 꽃’, 어쩌면 ‘꽃 닮은 막대사탕’일지도 모르는 그림이다. 남자 아이가 그린 ‘꽃’은 사실 누가 봐도 이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시선에 맞게 ‘꽃’이라고 인정해 줌으로써 그 그림은 정말 꽃이 되었다. 남자 아이는 정말로 꽃을 그렸다. 아니, 꽃을 안 그렸지만 꽃이라고 이름해서 꽃이 되었다.

이 대목에서 교수님은 교육을 말씀하셨다. 아이의 시선으로 보고, 인정해주는 교육. 참을 더욱 진실한 참으로 만들어주는 교육. 특별한 개입이랄 것은 전혀 없지만, 동등한 시선과 애정 어린 인정이 아이를 한 층 성숙하게 변화시키는, 교육 중에서도 참교육이었다는 감상이 갓 스무 살 된, 어른의 모습을 했지만 그 속은 아직 덜 여문 나에게 진한 감동이 되어 향기를 안겼다. 맞다. 교수님의 말씀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변화일지라도 사람을 통해 그것을 이끌어 내는 것, 사람을 사람 되게 하고, 사람이 살아 갈 원동력을 다져주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참교육이었다.


교육과 학습을 이야기할 때 흔히 이렇게들 말한다. 교육은 비자발적인 것으로 내가 받는 것, 그래서 ‘교육을 받는다.’라고 하고, 학습은 내가 스스로, 능동적으로 배우고 익히는 것, 고로 ‘학습을 한다.’라는 서술어를 사용한다. 맞다. 교육은 정해진 공간에서 일정한 목표와 계획 하에 교육자와 학습자가 나뉘어 스스로의 역할을 수행한다. 교육자는 가르치고, 학습자는 배움에 전념한다. 이에 비해 학습은 개인이 자기주도적으로, 또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지식이나 기술 등을 습득하는 과정이다. 이 둘은 핵심 주체가 다르다. 교육의 주체는 교육자이고, 학습은 학습자가 메인이 된다. 그러기에 교육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고, 학습은 능동적이며 유연하다. 하지만 이 둘은 상호 보완적이어서 교육은 학습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학습은 주체자 스스로의 방법으로 소화하고 흡수한다.

학생들에게 있어 학교 공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진정한 성장은 학교의 구조적인 공간과 인력, 그리고 전문화된 시스템 안에서 학생 개인의 스스로 배우고 확장하려는 자발적인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진정한 내적 변화와 성장, 가시적으로는 성적 향상이 따라올 수 있다.


교육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하지만 그 변화를 외부로부터 오는 것에만 의존한다면 결국 궁극적인 변화에 이르지 못한다. 학습에 대한 자발적 의지가 있는 능동적 인간이 스스로 배움에 참여하고 그 안으로 들어갈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교육은 지식의 전달이라는 단순한 목표 그 이상으로 인간의 사고방식과 삶의 태도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위대한 힘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의무 교육으로 할당된 수업만 듣고, 달달 암기하는 것만으로는 교육에 의한 변화의 중심에 깊게 자리 잡기 어렵다.

진정한 변화는 주체적으로 배움을 선택하고 스스로 주도할 때 가능하다.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언제부터인지 ‘자기주도학습’이라는 말이 화두가 되고, 너도 나도 ‘자기주도학습’, 서점에 가도 ‘자기주도학습’......모두가 갈망하지만 쉽사리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마치 ‘미션임파서블’의 연장선 같은 느낌의 ‘자기주도학습’을 두고, 이것을 왜 해야 하는지 나름의 당위성을 생각해보았다.

어차피 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의무 교육 과정 가운데 있는 내가,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공부하고 싶은지, 그것을 위해 어떤 공부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지, 스스로를 파악하고 그에 따라 본인이 주도하는 행동을 할 때 비로소 자기주도학습이라는 ‘미션임파서블’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런 주체적인 고민과 학습을 통해 교육은 비로소 내 삶 속에 잔잔하게 녹아들어 진한 변화를 만든다. 이러한 고민이 없다면? 또는 고민 자체가 불가능하다면? 그건 아쉽지만 늘 수동적으로 학교와 학원에서 교육 ‘당하는’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케이팝, 케이뷰티, 성형 강국, IT 강국 등 여러 수식어를 갖고 있는 대한민국이 유독 교육 분야에서만 수동적이라는 현실이 정말로 안타깝다.


대한민국의 역동적인 청소년들이여. 그리고 그의 위대한 부모님들이여. 깨어나 움직여라.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며 유연하게 대처하라. 어차피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남들처럼 수학능력시험이라는 단 하루 지옥같은 시험으로 미래의 운명이 결정되는 이 나라에 태어났다면, 좀 더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주체적으로 학습을 끌고 나가보자. 확실하고 선명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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