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님의 스스로 학습법
자기주도학습의 첫걸음은 엄마와 함께 (엄마표 가정학습)
“자, 오늘부터 자기주도학습 시작!”
이러면 그날 바로 실패의 쓴 맛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아이는 어리고, 어린이는 자기 통제력이 부족하다. 솔직히 성인도 혼자 자율학습을 하라고 하면 책상 정리 1시간, 핸드폰 사용 1시간, 이제 공부 좀 해볼까 하면 배고파서 식사 1시간, 겨우 공부 시작했는데 식곤증으로 졸기 시작......정신 차리면 다음 끼니 시간이다. 공부 앞에 통제 가능한 자기조절력은 아마도 없지 않을까 싶다. 하물며 어린이는 더 하지 않을까.
그래서 매일의 규칙을 만들고, 루틴을 만드는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내가 잠을 자고 쉬는 나의 방이 집중해서 공부하는 조용한 공간이라는 인식과, 공부하는 내 방에 몸과 마음을 적응해가는 과정도 꼭 필요하다. 이는 아이 혼자의 힘으로는 부족하고, 부모의 도움이 반드시 요구된다. 아이의 자기주도학습 성공을 원하는 만큼 부모의 조력 또한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고로 과거에 자기주도학습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경험이 있다면, 그것은 내 아이와 맞지 않았던 부분도 물론 있겠지만, 부모는 아이의 자기주도학습을 돕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아도 좋을 것 같다. 무엇이든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없으니까. 모두가 노력해야 가능하다.
우리 집 자기주도학습은 식탁에서 시작되었다. 이름하여 ‘엄마표 가정학습’.
초등학교 2학년, 아직 너무 어린 나이에 충격적인 10점 시험지를 받았던 그날 밤, 나는 아이를 다짜고짜 식탁에 앉히고는 받아쓰기 공책을 폈다. 그리고 무작정 외우도록 시켰다.
우리나라 국어는 정말 어렵다. 어려운 국어를 깍두기공책에 쓰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따옴표 위치, 쉼표와 물음표 위치, 그리고 들여쓰기, 띄어쓰기......솔직히 성인도 100점은 힘들다. 맞춤법은 맞을지 몰라도 문장 부호나 띄어쓰기는 별도로 공부하지 않으면 한두 개는 틀릴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 국어이다. 이렇게 성인도 어려운 국어를 초등학교 2학년 아이에게 암기시키면서 처음에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고, ‘내 아이에게 장애가 없었다면 과연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생각이 많으면 뭐 해, 어차피 해야 할 공부인 것을. 이내 부정적인 생각들을 애써 억누르고, 받아쓰기 암기를 시켰다. 그 옛날 30년 전, 어쩌면 40년 전에도 했을 것 같은 ‘전설의 깜지 공부법’과 비슷한 방법으로 쓰고 또 쓰도록, 띄어쓰기에 맞게 말하고 또 말하도록 시켜서 결국 받아쓰기 100점을 받았다. 아이가 굉장히 기분 좋게 시험지를 내게 보여줬던 기억이 난다. 적어도 10점짜리 구겨진 시험지가 가방 속 책들 밑에 깔린 채로 발견됐던 것과 비교하면 아이는 표정부터 확실히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아이가 공부한 것에 대한 가장 확실한 보상은 스스로 이루어 낸 100점이라는 결과구나!’
결과가 보여주는 짜릿한 맛을 나도, 아이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10점 시험지가 70점이 되고, 80점, 100점이 되긴 했지만, 이게 완성은 아니었다. 받아쓰기는 초등 저학년까지는 계속 될 것이고, 받아쓰기보다 더 어렵고 힘든 공부들을 적응해 가려면 공부 습관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그래, 어차피 같이 공부하려고 자세 잡고 앉은 이상, 뭐라도 해보자.
처음에는 방문 학습지를 신청했다. 하지만 실패. 돈만 들었지, 아이가 흥미를 갖지 못했다. 흥미 없는 아이 덕에 방문하신 선생님도 힘들어 하셨다. 4과목이나 신청해서 원래는 한 과목에 10분 티칭인데, 40분 간 한 자세로 앉아 계시는 것도 쉽지 않으셨을 것이고, 아이 또한 협조를 못해서 40분 집중이 굉장히 지옥같은 시간이었다. 결국 방문 학습지를 중단하고, 유료 교육방송 구독을 신청했다. 아이에게 교육방송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는 전용 패드를 주고 “이거 하고 있어~”라고 시킨 후 나는 주방으로 가서 설거지를 하거나 둘째 아이를 돌봤다. 아이는 집중을 못했고, 심지어 패드 속 화면의 여기저기를 눌러보고, 온갖 흥미 있는 것들만 골라서 엄마 몰래 보기도 했다. 분명히 수학을 틀어줬는데, 아이는 곤충을 보고 있었다. 나는 나대로 유료 콘텐츠만 믿고 ‘우리 애가 공부 잘 하고 있겠지’하는 거짓된 믿음을 쌓아가며 설거지와 빨랫감 정리 등 집안일에 몰두했고, 아이는 그 틈에 재미있는 콘텐츠만 마음대로 골라 본 것이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위약금을 내고 교육방송 콘텐츠 구독을 해지했다. 그리고 서점에서 EBS 교재를 과목 별로 구입해서 내가 직접 ‘엄마표 과외’를 해보기로 했다.
초등학교 2학년 2학기 문제집을 보니 딱히 어려울 것이 없었다. 일단 개념부터 국어와 수학 위주로 과외처럼 설명했다. 수학이 약간 어려웠고, 아이의 청각 장애로 인한 듣기 수준이 많이 뒤쳐진 상태였기 때문에 같은 말도 아주 쉽게,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로만 말해야 했다. 저녁 식사 후 샤워를 마치고,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가라앉힌 후 식탁에 앉아서 ‘엄마표 과외’를 시작했다. 아이가 아직 어리기도 했고, 잠자는 방과 놀이방만 구분해놓았지, 따로 공부할 수 있는 방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식탁에서 시작했지만, 나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생각 없이 놀던 아이를 어느 날 갑자기 잡아다가(?) 앉혀놓고 했던 가정학습이라 오히려 식탁이라는 개방되고 편한 공간이 공부의 위화감을 낮춰주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엄마표 과외’의 시작은 수학 중에서 달력에 관한 단원이었다. 문제집에 ‘뒷부분이 찢어진 달력’ 그림이 있고, 날짜를 맞히는 문제. 구구단 7단만 알면 되는 문제이긴 하지만 아이에게는 많이 낯 선 느낌이었다. 언어 수준이 낮은 내 아이에게 수학의 셈보다 더 어려운 것은 문장으로 된 문제의 해석이기도 했다. 문해력도 문제, 어휘력도 문제, 뭐 하나 그냥 넘어가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 모자는 하루에 단 30분을 공부하더라도 매일매일 해보자는 약속을 하고, 주말 중 하루를 제외한 주6일의 저녁 시간을 매일 공부로 채워나갔다. 그것도 방이 아닌 부엌의 식탁에서.
사교육의 유혹을 뿌리치고 자기주도학습을 하기로 결심했다면, 사실 제일 좋은 것은 어릴 때부터 습관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잘 다니던 학원을 종결하고 갑자기 시작하는 자기주도학습의 경우, “자, 오늘부터 자기주도학습을 할 거야. 파이팅!”이라며 시작하기에는 아이에게 너무 큰 짐을 혼자 들게 하는 것 같은 부담을 줄 수 있다. 어리면 어릴수록, 더 많은 부모의 관심이 필요하고, 초등학생 고학년이나 중학생, 다 큰(?) 고등학생일지라도 자기주도학습의 습관이 잡힐 때까지 부모의 개입과 관심이 반드시 요구된다. 무엇이든 그냥 얻어지는 것은 없다. 사교육비를 아끼고 스스로 공부하려는 의지와 습관이 생기려면, 옆에서 다독여주기도 하고, 초행길의 내비게이션이라도 함께 봐줄 수 있는 학습 메이트인 엄마의 조력은 아이의 자기주도학습 성공을 위한 가장 큰 자양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