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by 서울경별진

나는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스무 살 때는 그저 그림을 배우고, 디자인을 배우고, 아르바이트하며 끼니를 굶으면서도 학원을 다니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좋아하는 것들을 배울 때는 금방 손에 잡힐 듯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고된 생활에 친구들도 떠나고, 가족들을 위해 안정된 직장 에 다니며 돈 벌겠다고 이력서만 1년 내내 넣다가 겨우 입사한 회사에 벌써 10년이 되어간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말할 수 없이 고된 시간들이었다.


그 잔해들은 아직도 내게 고스란히 스며있다. 그래서인지 종종 깊은 생각에 빠지고는 한다. 나는 이 깊은 몰입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한때는 그것을 내버려 뒀지만, 이제는 벗어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다른 이가 보기에는 한심해 보일 수도, 어쩌면 바보 같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나만의 방법으로 열심히 살아내는 중이다.


얼마 전 직원과 함께한 식사자리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예전에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버려서 불안했는데, 이제는 그 일들이 다 끝나고 나니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일어날까봐 불안해. 그리고 알 수 없는 커다란 공허가 찾아오더라고.


가슴이 뻥하고 뚫린 것처럼.' 인생에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좋지 않은 일이 너무 오래 지속됐다. 그러니 나는 나 자신에게도 회복할 시간을 주기로 한다. 내가 90% 정도까지 회복된다면 진짜 사랑을 알게 되지 않을까.


아무튼, 나는 이런 나를 돌보기 위해서 노트를 하나 샀다. 자문자답 노트다. 내게 질문을 하면, 나는 질문에 대답을 하며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것이다. 여름이 되기 전에 작성한 질문에는 가고 싶은 여행 모두 적어보기와 하루가 주어지면 하고 싶은 일 적기였다. 나는 죽기 전에 꼭 파리 여행을 가고 싶다고 적었다.


사실 나는 다른 이에게는 긍정의 말을 잘 하지만, 내게는 그렇지 못하다. 내가 파리에 갈 수 있을까? 내 마음은 '글쎄.'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파리에서의 일주일 스케줄을 적었다.


하루가 주어진다면 나는 경주여행과 성수동 카페 가기, 전시회 가기를 적었다. 조금만 부지런해진다면 주말에라도 갈 수 있겠지만 아직은 밖으로 나갈 자신이 없다. 노트를 덮고 여행 가는 상상을 해본다. 이틀이 지나도 여행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주말이 되자 나는 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행 갈 생각을 하니까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 지네. 왜 하고 싶은 일을 적어보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아. 희망이 생기는 것 같아.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좋아하는 일을 해야 산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오늘도 하루 종일 즐거운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서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서 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다. 그리고 다시 노트를 폈다. 하지만 오늘은 답을 적기가 어려웠다. 가장 좋았던 날을 적으라고 하는데, 도저히 기억이 나질 않았다.


분명 좋았던 날이 있을 텐데. 다른 이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기를 원하는지,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 모두 적을 수가 없었다. 나는 옛 고전을 즐겨 읽는다. 그러면 그 당시 예술가들의 성격, 습관, 재능, 사랑, 가족 등에 대해 알 수가 있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근접하게 알아볼 수 있다. 그들에 대해 알고 나서 작품을 보고, 들으면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다. 어떤 감정으로 썼는지, 어떤 사랑을 하며 그렸는지에 대해 말이다.


현재는 예술가에 대한 기록이 쓰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이 그에 대해 이야기해주어야 기록이 남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곁에 있는 지인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를 기억해줄 사람이 있을까.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남아야 할까. 다른 이를 믿는 것처럼 나 자신도 믿고 있냐는 질문까지 읽고 나니 막막해졌다. 결국, 한 줄도 적지 못하고 넘겨버렸다. 나는 나를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걸까.


생각해본 적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다른 이가 나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하지만 나를 정말 잘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렵다. 내겐 쉬운 것 같은 일들이 어렵다. 오늘이 아닌, 다른 날 질문을 받았다면 웃으며 적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행복한가? 하는 질문에도 오늘은 답을 하지 못할 것 같다.


몇 년 전, 카페에서 재즈 음악과 라테 한잔 마시면서 행복하다고 한 적이 있다. 그날은 정말 행복했다. 그 잠깐, 그 몇 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행복은 정말 가끔 찾아오는 선물 같다.


나는 왜 지금 당장 행복을 느끼지 못할까. 불행한 하루도 아니었는데. 노트에 빈칸을 채우기 위해 나는 이 고민을 다시 시작할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알 수 없는 더 깊은 무언가를 생각하고, 해답을 찾으며 오늘보다 더 나아질지도 모른다.


'그냥 지금은 아무 생각하지 말고, 좋아하는 일을 해봐. 전시회 가고 싶으면 가보고, 먹고 싶었던 거 있었으면 먹어보고, 꽃 보고 싶으면 보러 가고, 바다 보고 싶으면 가보고.' 얼마 전 내가 누군가에게 해 준 말이다.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알고 보면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라고 한다. 그렇게 나는 내게 하고 싶은 말을 다른 이에게 해주고 있었다.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지라는 말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나는 나보다 다른 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아픈 곳을 안아주고, 위로해주고 상처를 보듬어 주고 싶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배워가는 중이다.


기적은 생각보다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한 번의 기적을 생각하며 살면, 내 마음이 지금보다는 더 나은 하루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내게도 기적이 일어나면 좋겠다. 소원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요즘 내가 자주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