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눈물이

by 서울경별진

특별히 특별하지도 않은 보통의 하루가 지나간다. 매일 똑같지만 똑같지 않은 회사일을 하고, 하루 종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리저리 치여 어지럽게 보내다가 모두가 퇴근을 한 고요한 저녁시간 때에 느지막이 자리 정리를 하고 터벅터벅 걸어 나온다.


우연히 선곡한 음악이 마음에 들어 차에 타자마자 음악을 틀고 1시간 넘는 퇴근길에 들어선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데 흘러나오는 음악 사이사이로 오늘 있었던 어떤 하나의 사건이 불쑥 떠오른다. 결국 음악은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집에 도착한다.


뭔가를 하고 싶은데, 하고 싶지가 않다. 좋아하던 영화보기, 책 보기도 즐겁지가 않다. 마침 재미있어 보이는 드라마가 연속방송 중이라 가만히 앉아 보니 새벽이 넘었다. 힘들 때는 나오지 않던 눈물이 대사 한 줄에 주르륵 흐른다. 짧은 장면 하나에 마음이 동해졌다.


주말이면 한 주 동안 먹을 음식과 도시락 반찬을 사러 간다. 마트에 가면 사람들을 보게 된다. 가족들, 친구들, 커플, 노부부. 의도치 않게 그들의 대화가 들린다. 평범한 대화들. 무엇을 살까 고민하는 대화들. 한 노부부는 카트도 바구니도 없이 야채 코너만 둘러보고 있다. 그냥 그들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봤다고 이야기하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살아있다는 것이.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의 존재는 참 오묘하다.


울고 싶지 않은데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 특별히 슬프지도, 불행하지도 않다. 그저 조금 울적하긴 한 것 같다. 이 감정은 무엇일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알게 될 수 있는 걸까.


오랜만에 책이 가득한 언니 책방에 앉아 생각해놨던 것들을 털어낸다. 바닥에 앉아있는 나를 보고 언니는 내가 앉을 만한 작은 소파를 하나 사야겠다고 했다. '코로나가 끝나면 고아원에 자원봉사를 가고 싶어.' 작년 목표 중에 하나가 두 번째 정기후원을 하는 것이었다.


나의 첫 후원 아이는 나와 함께 한지 5년이 다돼간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편지도 주고받을 수가 없다. 잘 지내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아빠의 야채장사는 어떻게 되었는지, 아픈 막냇동생의 건강은 어떤지, 밥은 잘 챙겨 먹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은 요양병원에 계신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이다. 가까이에 있어도 멀리 있는 것처럼 만날 수가 없다.


가까이에 있어도 멀리 있는 것처럼 만날 수가 없다.


두 번째 정기후원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나는 내가 책임지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싶었다. 사실 나는 20대 초반에 첫 후원을 했다. 적은 아르바이트비로 적금도 들고 청약저축도 했었다.


하지만 1년도 못 가서 다 해약해야만 했다. 나와 내 가족들도 책임지지 못할 상황에 누군가를 돕거나 돈을 모은 다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남을 돕기 전에 내 가족부터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직장을 다니고 몇 년 후 나는 다시 후원을 시작했다. 그 아이만큼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끝까지 책임지고 싶었다. 그리고 두 번째 후원을 계획했다. 생각한 지 1년쯤 지났을까, 나는 드디어 계획했던 두 번째 정기후원을 얼마 전 시작했다.


사실 아이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재능기부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재능이라곤 보이지가 않는 것 같다. 요즘은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노래 한 곡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나는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적지만 후원금을 보내주는 일이다. 그 일이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인 것 같다.


내가 누군지, 내가 어떤 생각으로 후원을 하고 있는지 아이들은 모를 거라는 사실이 조금 외롭지만 그래도 꾸준히 책임지고 싶다. 그리고 나의 세 번째 후원 계획은 언제 이뤄질지 모르겠지만 꼭 아이들을 만나서 마음을 나누고 싶다.


어쩌면 이 쓸쓸함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곳이 없어서 인지도 모른다. 사람을 만나면 기쁘지는 않은데 웃고 이야기하며 즐거운 기운을 쏟아내지만 여전히 속은 허하다. 꽁꽁 숨겨둔다.


그래서 문득문득 쌓인 감정이 나도 모르게 건드려지면 순간적으로 눈물이 흐르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하루는 괜찮고, 하루는 안 괜찮다.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이 안 괜찮음을 해결하는 방법을 나는 아직도 찾지 못했나 보다.

이전 01화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