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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별의 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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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경별진 Aug 20. 2023

결혼했어요

서른 하고도 여섯 해가 지나는 여름날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에 대한 말들이 참 많지만 이제 겨우 50일 된 나도 자그마하게 생각해 본 것들을 적어보려 한다.


‘아, 내 집을 찾았구나.’ 그가 건네준 첫 편지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그의 편지를 집에서 열 번도 넘게 읽었던 것 같다. 며칠은 잠들기 전에 책처럼 읽었다. 서툰 한국말로 적은 문장들이 마음에 은은하게 자리를 잡았다. 평생을 기억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의 편지를 읽고 나서 나는 느꼈다. ‘아, 이 사람이랑 결혼하겠구나.’


따뜻했다. 그의 온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슬픔으로 가득 찼던 내 작은 공간에 마침내 내가 좋아하는 색의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작은 공사가 시작됐다. 뾰족해졌던 것들이 둥글게 깎여지거나 새로운 기대감을 짓기 시작했다.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이었다. 누군가와 손을 잡고 같이 걸어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 말이다.


행복해졌다. 마음이 밝아져 갔다. 기름때처럼 꾸덕하게 들러붙고, 흙탕물로 뒤덮인 것 같았던 탁한 글들은 이제 쓸 수 없을 것 같지만 괜찮다. 서로의 행복을 바라며 사는 것만큼 소중한 삶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걸로 충분하다.


그 마음이 모든 것을 증명해 줄 것 같다.


쓰디쓴 사탕을 입에 문 것 같은 기분에도 그를 보면 그저 웃어 버렸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나는 그와 함께 보낼 노년을 미리 보는 것 같았다.


사실, 결혼을 할 만큼 넉넉한 형편은 못되었다. 그래도 해야 했다. 그에게는 내가, 내게는 그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확신이 컸다. ‘완전하다.’의 뜻을 내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이 다가오게 된 것이다. 그것은 마치 서로의 결핍을 서로만이 채워줄 수 있는 그것과 같다.


어느 날 회사 직원의 카톡이 울렸다. 직원의 아빠였다. 아빠의 다정한 카톡에 부러움이 넘실댔다. ‘우리 공주님~.’ 나는 아빠에게 공주님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없었다. 언니에게 공주님이라는 단어가 너무 부럽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두 번째 만남에서 내게 공주님이라고 했다. 마음이 와르르 녹아버렸다. 신이 내게 주신 싸인 같았다.


영화 기사 윌리엄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가난한 이들만이 사랑을 위해 결혼할 수 있죠.‘ 그렇다. 나는 사랑을 위해 결혼을 선택했다. 오로지 사랑 하나만을 바라봤다. 그와는 그것이 가능했다.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나다운 것이 좋다. 나다워 보이지 않는 것은 어쩐지 내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셀프 웨딩촬영을 준비했다.


셀프웨딩 촬영, 힘들지 않겠냐고들 했지만 엠디일 하면서 혼자 착장 준비했던 경험을 살려 어렵지 않게 준비했다. 준비하는 동안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내게 어울리는 드레스는 뭘까? 입어보지 못하고 선택해야 했다. 맞지 않은 드레스를 혼자 꾸역꾸역 입어보며 눈물이 났다.


‘드레스 같이 골라줄 친구가 없다니.’ 참 외롭게 느껴졌다.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선택하고 만들어온 삶이었다. 다행히 곧 도움의 손길이 나타났다. 신은 역시 나를 잊지 않으셨다.


틈틈이 장소를 찾아보고, 소품들을 준비했다. 가족들도 함께 도와주었고, 나의 선택들을 존중해 주었다. 촬영날 아침, 엄마에게 물었다.


‘청순한 화장으로 할까? 귀여운 화장으로 할까?.’

‘너답게, 귀엽게 해.‘라고 했다.


사실 청순하고 여성스럽게 비치길 바랐다. 하지만 역시 나다운 모습이 가장 자연스럽고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나는 평소보다 1.5배 정도 과한 귀여운 화장을 했고, 역시 엄마 말을 듣길 잘했다.


여름이 되면 이런저런 생각이 난다. 아빠는 항상 마당에 나무로 평상을 만들어줬었는데, 낮잠도 자고, 수박도 먹고 했었다.


믹스커피에 얼음을 타달라는 심부름도 시켰었다. 아빠가 일하는 공장에는 엄청 큰 선풍기가 있었다. 조용하게 더운 공기를 가르던 아빠의 타카소리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렇게 아빠는 여름 하늘 사이로 떠났고, 여름의 빈 공백 사이로 내 글이 처음 나왔다. 그리고 여름에 태어난 그를 만났다. 그리고 그와 손잡고 다시 시작할 여름.


’ 아빠, 나 결혼한다.‘


결혼을 약속한 날부터 속으로 열 번도 더 말했다. 들렸을까? 라는 질문도 함께 말이다.


아빠는 분명 이 사람을 좋아했을 거야.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일주일정도 같이 먹고, 자고, 24시간 붙어있다가 마침내 느껴졌다. 아 결혼이 이런 거구나. 그와 나 사이에 끈끈한 무언가가 연결되어 도저히 끊을 수 없는 매듭이 지어진 것 같았다.


좋다. 참 좋은 기분이다.

드디어 내가 꽉 채워진 기분이 들었다.


결혼을 했다.

사랑만으로 결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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