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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ca Kim Aug 08. 2020

더 이상 같이 못 살겠다.

결정의 기로


호스트 가족의 안 좋은 점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하니 온갖 정이 다 떨어진다.

내 처지가 처량하고 불쌍해, 왠지 더 나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현실을 부정하며 신세한탄을 하기보다는 어떻게 해서든지 해결책을 마련해야 했다.


맞서 싸우거나, 이 가족을 떠나거나.


일단 시간 날 때 틈틈이 주위에 어떤 기회가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검트리라는 호주 내 구인구직 웹사이트를 통해 직업을 찾아보니 꽤나 많은 가정에서 오페어를 구하고 있었다. 

일단 내게 지난 몇 개월 동안 쌓아온 경험이 생겼다. 그리 길진 않지만 자격증과 함께 이 경험은 내 어깨에 든든한 힘을 실어주었고 나는 당당하게 구직란에 광고를 올렸다. 그리고 내겐 몇 번의 기회가 주어졌다.




첫 번째는, 홍콩 출신의 의사 부부였는데 그들의 바쁜 일정 때문에 내가 병원에 직접 방문을 했고, 구내 카페에서 면접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내게 어린 딸아이를 돌보는 조건으로 시간당 25불이라는 큰 금액을 제시했다. 현재 받고 있는 시급보다 4배 정도가 많다. 입이 딱~ 벌어졌다. 살면서 이렇게 큰 시급을 제안받아본 적은 처음이다. 돈이 좋긴 좋구나!! 기분이 좋아져서 콧구멍이 벌렁벌렁거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집이 시내에서 너무 멀다는 것과 일하는 시간이 문제였다.

부부가 일하느라 너무 바쁘니 자연스레 내 일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내 소중한 시간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이곳에 영어, 경험을 쌓으러 온 것이지 돈이 주 목적이 아니었기에 안타깝지만 그들과 일을 하지 않기로 했다.




두 번째 집은 골드코스트 해변가에 위치한 집이다. 수영장이 딸린 2층 집이고 전망 좋은 방을 내가 쓸 것이라고 했다. 또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애완동물이 있다고 했다. 

남자아이가 3명이 있는 집인데 아이들 사진을 보니 영화배우 뺨치는 외모다. 

정말 잘생겼다! 꿈꾸던 외국 생활을 실현할 수 있는 완벽한 가정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12월까지 일해줄 사람을 찾고 있는데 내 비자가 11월에 만료되는 점이다. 그리고 시드니가 아니라 골드코스트라는 점이 설레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두렵게 만들었다. 이제 적응 좀 했나 했는데 또다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처음부터 시작하려고 하니.. 그 시간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아는 나였기에 망설여졌다. 그래서 이것도 패스!




그리고 세 번째로 면접을 본 집은 North Sydney에 위치한 작지만 깨끗한 아파트였다. 나는 큰 집을 기대하고 갔는데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집보다 작아서 사실 조금 실망했다. 이들에게는 12개월 된 Xibia라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정말 귀여운 아기다. 

그리고 아이의 엄마와 이모와 함께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이들은 인상도 선하고 친절했으며 인심도 후했다. 나는 그들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집이었다. 그리고 주급도 지금 사는 집보다 100불 많았는데,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거기에다가 50불을 더 올려주겠다고 했다. 일하는 시간도 7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로 일찍 마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돌보아야 할 아이도 한 명뿐이고, 집안일을 거의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누가 봐도 이 조건이 백 배 천 배 나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선뜻 YES를 외치지 못했다.


일단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양해를 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기분이 이상하다.  


그간 정든 벨라와 그레이스가 자꾸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내가 가고 나면 홀로 남겨질 그 아이들 때문에, 그리고 내게 친할머니처럼 잘해주신 아이들의 할머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정이란 참 무서운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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