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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마차 Jan 11. 2021

캐나다 회사 생존기#

나는 어마 무시한 태권도 유단자 (2)

 


게임 회사 사무실 분위기를 보자면 아무래도 개방된 공간에서 함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소음 문제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직원들은 이어폰을 귀에 꼽고 음악을 듣는다든지 하면서 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마틴이 우리 팀으로 합류한 그날 분주히 그의 책상을 정리하고 있는데 레오가 마틴 근처에 서서 자리를 지키고 서성이고 있었다.  나는 이어폰을 빼고 무슨 일인지 지켜봤다. 레오가 마틴의 팔을 그의 팔꿈치로 슬쩍 치면서 작은 소리로 말을 했다.
[태권도를 진짜 잘한다고 힘이 진짜 쎄.]
[알았다고.]
마틴은 곤란한 듯 레오를 자꾸 밀쳐냈다.
[물어봐봐. 진짜 인지 아닌지.]
[ 나중에 물어볼 거야. 저리 가라고.]
마틴은 낮은 소리로 웅얼거리며 레오를 다시 한번 밀쳐냈다.
레오는 포기할 생각이 없는 듯 계속해서 마틴을 밀어붙였다.
[무슨 일이야?]
나는 그 둘을 바라보며 물었다.
마틴이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대답을 하지 않자 레오가 끼어들었다.
[미아, 네가 얼마나 태권도를 잘하는지 마틴에게 얘길 했는데 믿지를 않아.]
[야! 믿는다고 했잖아.]
마틴은 레오를 툭 치며 말했다.
레오는 내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맞아. 레오가 뭐라고 말했는지 모르지만 사실이야. 송판 격파나 발차기 등은 뭐... 우습지.]
나의 말에 레오는,
[들었지?  조심해 마틴.]
[뭘 조심해 이 정신 나간 놈아!]
마틴은 레오를 가볍게 밀쳐 내며 함께 유쾌하게 웃어 보였다.

이렇게 마틴과의 첫 대면은 통상적인 첫인사 대신 태권도에 대한 거짓말로 시작되었다. 안드레와 레오의 계획은 예상했던 대로 싱겁게 끝나고 말았지만 적어도 그들 중 적잖은 사람들이 동양인은 무술에 뛰어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이 흥미로운 일에 대해 남편에게도 이야기를 했고 놀랍게도 남편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남편이 카센터에서 일을 하고 있을 당시 같이 일하던 동료 한 명이 진지하게 무술을 할 줄 아느냐고 물어봤고 남편은 천연덕스럽게 할 줄 안다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다면 누군가 너의 뒤에서 살금살금 다가가 너를 공격하려고 할 때 너는 무술을 할 줄 아니까 재빠르게 대처하겠네?]
라고 물었다고 한다. 또다시 남편은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그렇다고  말했고, 얼마 후 그 친구가 살금살금 남편의 등 뒤로 다가오는 걸 느꼈다고 한다. 남편은 그저 팔꿈치를 구부려 어깨 높이로 올린 다음 몸을 휙 돌려서 그 의 얼굴 바로 근처까지 팔꿈치를 갖다 대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친구는 마치 유령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해 줬다. 아마도 그 동료는 아직도 남편을 무술에 능통했던 동양인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서양인이 동양인들에 대해 갖고 있는 정형화된 이미지는 생각보다 많다. 그 반대의 경우도 물론 존재한다. 이번 일 말고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한국인의 정형화된 이미지에 대해서 종종 겪은 일이 있었다. 특히 북한에 대한 이야기는 선입견 중 최고였다. 언론에서 김정은에 대해, 북한에 대해 보도를 할 때면 나는 동료들의 걱정거리 중 하나였다. 그들은 내게 한국에 있는 너희 가족은 괜찮냐, 전쟁이 일어나면 어쩌냐, 한국 국민들은 어떤 상태냐 등등 저마다 걱정 어린 질문을 했다. 북한이 국제 사회에서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이 정도 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전 세계 문화나 역사에 관심이 많은 마틴은 종종 내게 동양의 문화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곤 했다. 항상 느긋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을 가진 마틴이 딱 한 번 정색한 적이 있었는데, 보통의 어느 날 아침 인터넷에 뜬 뉴스를 보면서 마틴과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였다. 미국에 대한 기사였는데 나는 그 기사를 보고 아무 생각 없이, 
[미국과 캐나다는 거의 같은 문화를 가지고 있지 않아?]

라고 말을 했다. 한국에서 캐나다를 흔히 북미라고 해 왔기에 별 뜻 없는 질문에 마틴의 얼굴에 웃음끼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캐나다와 미국은 완전히 달라.]
라며 단! 호! 히! 잘라 말했다. 그는 내게 언성을 높이지 않았고, 우리는 곧 다른 주제로 넘어가 즐겁게 얘기를 주고받았지만  한 번만 더 그렇게 얘기하면 그땐 진짜 화를 낼지도 모른다는 표정처럼 보였다. 


역시……. 세상은 넓고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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