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박마차 Mar 09. 2021

캐나다 회사 생존기#14

회사 생활의 가장 힘든 점은 역시사람

나는 악연이라는 말을 믿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인생을 살면서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 지고 헤어져야 할 사람은 헤어지게 되어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만나 지게 된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B 회사를 나보다 2년여 정도 먼저 다녔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일도 모두 마음에 든다고 했다. 작업자들이 자유롭게 공부한 것들을 작업에 대입시킬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면이 특히 좋은 점이라고 말해왔다. 내가 입사한다면 많이 공부하고 배우면서 일도 하고 여러 모로 좋을 것 같다고 추천했었다. 그들이 오기 전까진 말이다.

안토니오 그리고 올리비에......
 B 회사를 다녔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 이름에 치를 떤다. 나와 남편 모두 이 회사를 퇴사 한지 벌써 오래전이지만 아직도 이 이름이 싫다. 사실 B 회사에서 있었던 일은 글로 적고 싶지 않았다. 오래 있지도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너무 힘이 들었던 곳이었기 때문에 굳이 다시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다. 안토니오와 올리비에 콤비는 내가 입사 하기 3개월 전에 회사에 새로 들어온 간부급 인사 드리었다. 안토니오는 프로듀서였고 올리비에는........ 난 이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아직도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해외 출장도 다니고 모든 프로젝트 회의에 들어와 참견을 했고, 아침마다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요란스럽게 농담을 하고 다녔으며 종종 그 농담은 듣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말 그대로 하루 종일 사무실을 휘젓고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감시했다.

같이 일을 하는 동료들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남편이 대부분 일을 할 때 주의 사항이라든지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는지 전부 알려 주었기 때문에 일 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A 회사에서 보다 더 빨리 익힐 수가 있었다. 팀의 팀장이자 아트 디렉터인 그레고리에 대해서는 A 회사를 떠나기 전 한 동료가 그와 이전에 일을 같이 했던 적이 있다며 그에 대해서 말해 주었는데,
[네가 그레고리와 일을 하게 된다면 넌 정말 행운아야. 내가 같이 일했던 사람 중 가장 좋은 사람이었어.]
라고 말했고, 그의 말은 정말 사실이었다.

문제의 안토니오에 대해 본격적으로 얘기를 해 보자면, 안토니오의 롤 모델은 누가 봐도 스티브 잡스였다. 검은 뿔테에 위아래 늘 검은색 옷을 입었으며 애플 맥 북을 한쪽 겨드랑이 늘 소중한 보물 마냥 들고 다녔다. 그는 자신이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디자인에 대한 감각이 출중하며 다른 이들의 의견을 잘 듣고 수렴하는 뛰어난 리더라는 점을 일대일 미팅 때 늘 강조했다. 창의적이고 누가 봐도 멋진 작업들을 진행시키겠다는 사명감이 너무 지나쳤던 탓일까?  우리는 늘 그의 허락을 거치지 않고는 그 어떤 작은 것도 진행시키지 못했다. 심지어 작은 돌멩이 하나에 들어가는 깨진 모양조차도 그의 승인이 나야만 넘어갈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많은 작업 자들은 할 일 없이 그의 얼굴만 쳐다보며 며칠을 보낸 적도 많았다. 회사는 프로젝트마다 아트 디렉터들을 배정해 놨지만 안토니오는 그들의 권한을 모조리 빼앗아 버렸고 그들은 그저 안토니오의 말을 전달하는 메신저로 전락했다. 그렇게 일을 진행할 수 없어할 일 없이 앉아 있는 작업자들을 안토니오는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 게으른 직원들 이라며 싸잡아 비난하곤 했다.  나는 들어가자마자 낡은 레트로 텔레비전을 만들라는 일을 받게 되었는데 안토니오의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총 8대의 텔레비전을 만들고 또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동료들은 나를 한동안 텔레비전 마스터라고 불렀다. 이 경우는 그나마 양호했다. 바닷속에 펼쳐지는 배경 신을 3D 디자이너들이 작업을 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안토니오는 우리가 작업하는 산호초 들을 영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작업을 해 놓으면 회의실에 큰 화면으로 띄어 놓고는 이런저런 온갖 트집들을 잡아가며 다시 또다시를 외쳤다. 이 사람에게 시켜 마음에 안 들면 그 일을 다른 사람이 맡게 해서 웃기게도 한 작업을 같은 작업자가 끝내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의 그런 방식이 맘에 들지 않아 나는 급속도로 회사 일에 대한 흥미를 잃어 갔다. 무엇보다 안토니오는 3D 작업자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콘셉트 단계에서 완벽히 끝나야 한다고 완고하게 주장하던 그는 원화와 3D 간의 차이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2D와 3D는 시각적인 면에서 분명 차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차이를 좁혀 나가며 좋은 결과물을 도출하는 것이 우리 각자의 일이다. 원화 콘셉트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으면 그는 무섭게 3D 디자이너들에게 일의 절차를 무시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며 비난했다. 어떻게 3D로 표현할지 명확하지 않다면 반드시 2D 콘셉트 디자이너들에게 가서 묻고 난 후에 작업을 진행하라며 몇 번을 강조해 말했다. 어느 날 나는 그의 말대로 원화를 보며 작업을 하던 중 뭔가 명확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 의논을 하러 2D 콘셉트 디자이너를 찾아갔다. 나는 손가락으로 화면에 띄운 원화를 가리키며,
[여기 이 부분이 뭔지 잘 모르겠는데, 설명 해 줄래? 알아보기가 힘들어서. ]
[아........ 이게 뭐지?]
원화 가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내가 가리킨 그것이 무엇인지 기억해 내려 애썼다. 곧이어 그녀는,
[이건 내가 작업하다 미쳐 다 지우지 못한 부분 같은데. 무시해도 될 것 같아. 미안해. 깔끔하게 지웠어야 했는데]
라며 멋쩍게 웃었다.
이런 식으로 불쌍한 3D 디자이너들은 콘셉트 원화가들이 지우다 만 실수까지도 그들과 집고 넘어가야 할 만큼 경직되어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캐나다 회사 생존기#1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