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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마차 Apr 19. 2021

k-장녀와 우울증

나는 왜 자존감이 낮을까?

어렸을 때 나는 만화를 정말 좋아했다. 텔레비전에서 주말 아침에 방영해 주는 만화 시리즈를 보려고 아침 일찍 설레며 일어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고, 10대가 되어서는 출판 만화에 푹 빠져 대부분의 용돈을 만화책 사는데 탕진했다. 이렇게 좋아해 마지않는 만화를 업으로 삼으려 대학을 만화학과로 가려는 꿈을 꾸었을 정도니 만화에 대한 나의 사랑은 진심이었다.


그때 봤던 티브이 시리즈 만화에서는 대부분 권선징악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주제를 매주 볼 수 있었는데 줄거리가 이렇다 보니 좋은 편 나쁜 편은 늘 흑과 백처럼 나누어져 있었다. 외모 만 척 봐도 각이 나왔다. 그때의 나는 늘 나쁜 편 에 눈이 면저 갔다. 대부분 나쁜 편의 대장은 외모도 화려하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그 모습이 매력적으로 느껴져 반하고는 했다. 하지만 나쁜 편을 응원하는 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나쁜 편을 응원하고 좋아하는 내가 나쁜 어린이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겉으로는 늘 착한 편을 응원하는 척했다. 그렇게 나는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되었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적부터 나에게 욕심이 많고 이기적인 자기밖에 모르는 아이라고 자주 말했다.  나와 반대로 순하고 수줍음 많은 성격을 가진 동생과 비교가 되면서 나의 단점이 더욱 부각되었다. 나이가 든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부모님의 관심을 동생보다 더 원했던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했던 평범한 여자 아이였다. 그런 내가 딸로서 버거웠던 탓일까? 아니면 나의 그런 성격을 초장에 잡아 눌러야 하는 위기의식이 있었던 걸까?  사실 이건 아직도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때문에 나는 내 성격이 싫었다. 내가 못되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엄마가 나를 싫어하는 것이고, 나의 나쁜 성격 때문에 만화를 볼 때도 악당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나는 이 비밀을 무려 고등학생 때까지 지키고 살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독립을 하기 전까지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늘 화가 나 있는 사람이었다. 가족끼리 거실에 나와 주말 저녁에 재미있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온 가족이 웃을 때도 엄마는 좀처럼  웃지 않았다. 재미있는 장면이 나올 때면 나는 버릇처럼 고개를 돌려 엄마 얼굴을 살폈다.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웃지 않을 걸 알면서도 자동적으로 고개를 돌리는 내 모습이 싫어진 적도 많았지만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엄마는 어린 동생과 나를 살갑게 안아준 적도 없었고 사랑한다고 말해 준 적도 없었다.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 엄마의 몸에 잠깐 기대기라도 하면  맨살에 닿은 벌레를 쫓듯 찰싹 때리며 우리를 내쳤다. 그때 수 없이 당했던 거절의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 흉터처럼 남아있다.


 엄마가 우리를 사랑하지 않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엄한 훈육만이 제대로 된 교육법이라고 굳게 믿었고 지체 없이 행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믿는다.  때문에 학교에서 80점을 받아오면 틀린 20점  때문에 칭찬받지 못했고, 학교에서 모범생으로 학교 생활을 잘해도 청소 빨래 같은 집안일을 못 했기 때문에 꾸중을 들어야 했다. 엄마는 늘 잘한 것보다는 못한 것에 대해 가혹하고 집요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를 기쁘게 하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뭘 해도 부족하고 인정받지 못한 채 자존감이 낮은 아이로 성장하고 있었다.


다소 무거울 수도 있는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 전 많은 고민을 했다. 자칫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도 모르고 저 혼자 잘나서 큰 줄 아는 배은망덕한 여자의 한풀이로 읽힐 수 있을 것 같아 자꾸만 망설여졌다. 나는 9년째 우울증, 공황장애와 싸우고 있다. 상황은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면서 현재까지도 치료 중이다. 그동안 끝도 없이 나를 괴롭히는 이 병이 내가 순전히 못돼먹고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나 밖에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생겼다고 믿고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았다. 캐나다에 온 후 의사와의 긴 상담에서  이 병의 원인이 어디서 출발되었는지에 대한 견해를 2년 전에 듣게 되었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이유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부모님을 원망하거나 부모님을 변화시키려 한다든가  또는 사과를 받고 싶다던지의 의도는 전혀 없다. 부모님은 없는 살림에 최선을 다해 나와 동생을 기르고 가르치셨고 노력하셨다. 다만 나와 같은 이유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쓰게 될 글 들이  도움이 되길 간절히 빈다. 내 잘못이 아니었다. 부모님이 불행해하고 가족이 해체되는 일련의 사건들은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그 모든 상처들을 치료하고 끊어진 관계의 다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 역시 내 능력 밖이었다.  이 단순한 원리를 깨닫고 오롯이 나를 돌아볼 수 있기까지 안타깝게도 몇십 년이 걸렸버렸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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