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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Feb 24. 2024

셰익스피어와의 대화

16164월의 어느 날 스트레트포드-어펀-에이븐(Stratford-upon-Avon)의 성삼위 교회(Holy Trinity Church) 앞마당에서 셰익스피어 선생을 만났다. 당시 선생은 런던에서의 오랜 극작 활동을 마감하고 고향에 돌아와 3년째의 해를 보내고 있었다. 선생은 건강이 안 좋은지 조금 말라 보였고 안색도 창백했다. 멀리 아든 숲을 망연히 바라보던 선생은 고개를 돌려 나를 힐끔 보더니 손짓으로 자리를 권했다.


Q. 셰익스피어 선생님. 시간을 내어 만나주셔서 고맙습니다. 건강은 어떠신지요?


- 기운이 런던에 있을 때만 못하군요. 하긴 제법 긴 시간 글쓰기에만 전념을 했으니 몸이 많이 상했을 거요. 서른 남짓까지는 배우 생활과 극작을 함께 했지. 참 열정에 넘쳤던 시절이었소.


Q. 극작가로 큰 성공을 거두신 선생께서 갑자기 귀향을 하신다는 소식에 모두들 놀랐겠습니다. 후대의 평자들은 선생의 마지막 작품인 ‘폭풍’(Tempest)에서 프로스페로(Prospero)가 마법의 책과 지팡이를 땅에 묻은 것이 절필을 암시하신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만...


- 작품은 작품일 뿐이죠. 그것은 그저 우리의 삶이 마법의 힘이 아닌 신의 섭리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말하려 했을 뿐이요. 선생은 어떤 세상에서 오셨소?


Q. 400 년 후의 세상에서 왔습니다. 서기로 2024년.      


- 먼 시간을 거슬러 오셨군. 그래 그 세상의 사람들은 많이 변했겠지요?


Q. 그들이 사는 모습은 아마 상상조차 못 하실 겁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이야 어디 변하겠습니까? 선생이 쓰신 37 편의 희곡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 그렇겠지.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같은 2000년 전 그리스 작가들의 작품들이나 그 시절의 역사책들이 모두 내 희곡의 소재였으니 말이요. 세월이 흘러도 사람은 그리 변하지 않지요. 사실 내 글의 내용은 창작은 없었소. 모두 빌려온 얘기들이었으니까.   


Q. 하지만 선생의 글귀들은 제가 사는 세상에서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즐겨 암송하고 있지요. 그 아름답고 유려한 대사들은 글 쓰는 모든 이들의 전범이 되어있을 정도니까요.


- 저런. 그것 참 대단한 영광이군요. 나는 사실 문학사 속에 내 이름이 기록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소. 그저 내 작품이 런던의 극장에서, 여왕 폐하의 궁정에서, 귀족들의 정원에서 공연되는 모습이 행복하고 가슴 벅찼을 뿐이지요.


Q.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선생께서 실존한 작가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었습니다. 왜 그런 소문들이 돌게 되었을까요?


- 허. 그런가요. 아마 나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어서 일거요. 유럽은 글보다는 말에 의지하는 전통이 강하지요. 심지어 위대한 여왕 폐하에 대한 기록도 별로 없는 마당에 천한 연극이나 하는 나 같은 사람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지.


Q.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치세에서 글을 쓰셨지요? 역사에서는 영국이라는 나라가 가장 번창하던 시대로 기록되고 있습니다만.


- 참으로 역동적인 시절이었소. 종교 때문에 싸우는 일도 줄어들었고, 사람들의 삶도 많이 편해졌지요. 우리의 해군이 칼레 해전에서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퇴시켰을 때는 얼마나 가슴이 벅찼었던지! 우린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소. 꿈과 열정이 가득한 때였다오.


Q. 외람된 말씀이지만 선생의 삶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어서 혹자는 당대의 사상가 프란시스 베이컨이 선생의 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했다거나, 심지어는 여왕의 사생아이셨다는 주장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 그런 불경한 말이!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겁니다. 작가의 생애나 배경이 뭐 그리 대수겠소. 나는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썼고, 관객들은 그것을 보고 웃고 울었지. 그거면 충분하지 않겠어요?


Q. 알려진 바에 따르면 선생께서는 문법학교를 다니시다가 열대여섯부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셨다고 하더군요.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셨는데도 그런 훌륭한 작품들을 남기셨으니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 공부를 학교에서만 하는 것은 아니지요. 세상이 모두 배울 책이고 가르치는 교사예요. 하긴 내가 런던에서 이름 꽤나 얻게 되니 대학 나온 작가들이 날더러 ‘벼락출세한 까마귀’(upstart crow)라고 부르기도 했었소. 존경하는 벤 존슨(Ben Jonson) 선생은 나를 가리켜 ‘라틴어도 못하고, 그리스어는 더욱 못한다.’(small Latin, less Greek)라고 하셨다더군. (웃음) 그런데 그건 저를 얕보신 말씀은 아니었소. 그런 내가 제법 좋은 글을 쓰고 있다는 칭찬이셨지.


Q. 선생의 작품 가운데 후대에 가장 알려진 것은 네 편의 비극입니다. ‘햄릿’(Hamlet), ‘리어 왕’(King Lear), ‘오셀로’(Othello), ‘맥베스’(Macbeth) 같은 작품들 말입니다. 작가로서 가장 성숙한 시기의 작품이었죠?


-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 작품들을 쓰던 시기가 내게는 가장 힘든 때였어요.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집안에도 안 좋은 일이 많았소. 게다가 나를 후원해 주던 귀족 분들이 정치적으로 몰락했던 때이기도 했고. 그 우울한 시절이 내게는 새로운 깨달음을 많이 주었던 것 같소. 인간에 대해서도, 세상에 대해서도 제법 눈을 뜨게 된 것도 같고. 아픈 만큼 성숙해진 것은 사실일게요. 내가 쓴 소네트 집도 그 시기에 나왔지요.


Q. 후대의 비평가들을 위해 선생의 작품들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글쎄요. 글이란 것이 쓸 때는 내 마음에 있지만 쓰고 나면 읽는 사람의 마음을 따르는 것이어서 제대로 답이 될지는 모르겠소. 하지만 같이 이야기하다 보면 혹 생각나는 것이 있을 수도 있겠지.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인간의 성격적 결함 즉 하마르티아’(hamartia)를 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만심과 탐욕, 의심과 질투, 우유부단함과 광기 등 인간이 지니는 부정적인 속성들이 비극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성격의 비극’(tragedy of character)이라 불리기도 한다. 셰익스피어 선생을 만난 김에 그를 연구하는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Q. 햄릿은 왜 아버지를 죽인 원수 ‘클라우디우스’(Claudius)에게 복수하는 것을 그토록 망설였을까요? 심지어는 절호의 찬스를 맞이하고도 그가 기도하는 중이라는 이유로 뽑아 든 칼을 휘두르지 못하지요. 햄릿에게 과연 복수의 의지가 있기는 했던 걸까요?


- 햄릿은 복수를 망설인 적이 없었소. 단지 확신하지 못했던 것뿐이지. 생각해 보세요. 클라우디우스의 범죄에 대해 들었던 것은 아버지 유령으로부터 요. 유령의 말만 듣고 어찌 살인을 실행할 수 있었겠소. 그래서 극 중에 유랑 극단에게 연극을 시키잖아요. 아버지가 살해되는 순간을 재현해서 살인을 확인하려 했던 거지. 현실적으로도 클라우디우스는 이미 왕위에 올랐잖소. 왕을 시해하는 일이 마음만 먹는다고 쉽게 이루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Q. 하지만 햄릿의 시절에는 유령이란 존재가 실재하는 것으로 믿어지고 있지 않았던가요? 게다가 햄릿은 왕자라는 신분이었으니 왕에게 접근하기도 쉬웠을 거고요.


- 아마 어머니 거트루드(Gertrude) 때문이었을 거요. 햄릿은 어머니를 증오했어요. 아버지가 세상을 뜬 후 얼마 되지 않아 숙부였던 클라우디우스와 결혼해 여전히 왕비의 자리를 유지했지. 아버지를 죽인 원수가 어머니의 남편이 된 거요. ‘약한 자요, 그대 이름은 여자’라고 외치던 햄릿이지만 어머니에 대한 인간적 연민도 있었을 테니까. 원래 햄릿 왕자는 감성적이고 마음이 여렸어요. 그래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독백을 하잖소.  


Q. 그 독백에 관해서도 의견이 많았지요. 복수를 앞둔 햄릿의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원수를 ‘죽이느냐 살리느냐’라는 뜻이 아니냐는 논쟁이었어요.


-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대사를 보시오. 혹시 알고 있소?


갑작스러운 주문에 당황했지만 워낙 유명한 구절이어서 다행히 기억하고 있었기에 셰익스피어 앞에서 햄릿의 독백을 암송하게 되었다. , 어찌 이런 일이!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무도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견디어 내는 것,/ 아니면 고통의 바다에 항거해 무기를 들고/ 그것에 맞서 끝장을 내는 것./ 어느 것이 더 고귀한 일인가?”


Q. 선생 앞에서 햄릿의 독백을 읊조리게 될지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가문의 영광이올시다.


- 하긴 나도 400년 의 세상에서 온 분이 내 작품의 한 구절을 외우고 있는 것이 신기하고 또 감격스럽기는 합니다. (웃음) 햄릿의 독백은 삶에 대한, 운명에 대한 두 가지 태도를 말하는 것이었소. 물론 복수의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은 사실이지만 세상살이에 복수만 있는 것은 아닐 테니 작가가 던지는 삶에 대한 질문으로 보아줄 수도 있겠지요. 나는 ‘사느냐 죽느냐’가 더 멋있어 보이는데... 뭔가 형이상학적이고 존재론적 질문 같아 보이지 않소?


Q. 햄릿의 어머니 얘기가 나와서 하는 얘깁니다만 19세기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연구하고 치료하던 그가 햄릿과 관련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라는 표현을 사용했지요. 그가 만든 용어인데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어머니를 이성으로 인식하고 그로 인해 아버지를 적대시한다는 내용입니다, 그의 견해에 르면 햄릿이 복수를 망설이는 이유는 아버지를 죽인 클라우디우스에게서 자신의 무의식을 느끼고 자신과 그를 동일시하는 데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했지요. 이에 대해 선생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런 얘기가 있었소? 놀라운 비약이요. 그러면 햄릿이 마지막 순간 클라우디우스를 칼로 찌르는 것은 곧 자신을 죽이는 것과 같다는 얘긴데... 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소. 아무튼 흥미롭군요. 후대의 사람들이 아마도 내가 모르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한 건지도 모르지.


Q. 그런데 왜 선생의 비극에서는 그렇게 죽음이 많은 걸까요? 악인뿐 아니라 선한 사람들마저 다 죽지 않습니까? 햄릿도, 거트루드도, 오필리어와 레어티스도, 죄 없는 모두가 죽으니 말입니다. 다른 비극 작품에서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우리는 선생의 비극을 ‘잔인성의 비극’(tragedy of cruelty)라고도 부른답니다.


- 그들은 죽을 수밖에 없어요. 햄릿 대신 독주를 마신 거트루드나 햄릿의 냉대로 미쳐버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오필리어, 그리고 햄릿의 의해 아버지 폴로니우스가 죽임을 당하고 여동생 오필리어 마저 호수에 몸을 던진 것을 알게 된 레어티스까지... 그 극한의 상황에서 그들이 어찌 살아남을 수 있었겠소. 나는 개인의 죽음을 넘어 사악한 본성에 의해 파괴되는 선(善)의 비극을 그리려 했었지.


셰익스피어는 잠시 눈을 감고 자신이 그려낸 비극의 세계를 회상하는 듯했다. 그리고 다시 평온을 되찾은 뒤 내게 차를 권하며 무심히 맥베스(Macbeth)의 독백을 들려준다.

     

꺼져라, 꺼져라. 짧은 촛불이여/ 인생은 단지 걸어가는 그림자, 가련한 배우/ 제 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으스대고 안달하다가 마침내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되는구나/ 인생은 이야기, 바보들의 이야기/ 함성과 분노로 가득하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도다.    

     

독백을 마친 셰익스피어는 삶의 무상함과 비극의 무게가 버거운 듯 얼굴을 찌푸리며 혼잣말처럼 이렇게 말한다.


-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은 쓰지 말 걸 그랬어. 지금 생각해도 젊은 두 사람에게 내가 너무 몹쓸 짓을 한 것 같아. 옛날 얘기에 나온 것이긴 하지만 줄리엣에게 이상한 약을 먹여 죽은 것처럼 보이게 하고, 그것을 본 로미오가 독약을 마시고, 깨어난 줄리엣이 자기 가슴에 단검을 박아 넣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작위적인 것 같단 말이지.


Q. 애달픈 러브스토리의 원형이 되었지요. 그 작품은.


- 사랑이란 게 참. 예부터 사랑은 운명이라 했지요. 그런데 사람의 운명에는 두 가지가 있소. 하나는 모이라이(Moirai)의 운명. 모이라이는 운명의 세 여신이요. 첫째는 운명의 실을 잣고, 둘째는 그것을 사람에 맞추어 자르고 셋째는 그것을 주인들에게 나누어주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숙명인 셈이요. 다른 하나는 악령 다이몬(Daimon)의 운명. 그건 내 속의 무언가가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이끌어가는 파멸의 운명이요. 로미오와 줄리엣이 원수 집안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은 모이라이의 운명이지만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다이몬의 운명이 개입한 것이요. 그러니까 내가 로미오와 줄리엣에게 다이몬의 운명을 선물한 것이나 마찬가지지. 에우리피데스가 쓴 ‘메데아’(Medea)는 사랑 때문에 자식을 죽이는 다이몬의 저주를 받지요. 나 역시 그처럼 문학의 역사에 한 번 더 파멸의 사랑을 적어놓은 셈이고.                    


Q. 하지만 선생의 희극은 사랑의 완성을 그리고 있지 않나요? ‘선생의 비극은 죽음으로 끝나고 희극은 결혼으로 끝난다.’라는 말이 있어요.


- 내가 왜 사랑의 완성을 결혼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소. 나 자신도 여덟 살 연상의 여인과 결혼한 뒤 그것에서 벗어나려 런던으로 무작정 상경한 처지였는데. (웃음) 첫 쌍둥이를 낳았을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그 후론 애정이 식었던 모양이요. 하지만 분명 사랑의 끝은 결혼일 수밖에 없지 않소? 언제까지 사랑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Q. 선생께서는 비극과 희극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아주 다르게 그려내고 있는 것 같은데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요? 예를 들어 햄릿의 오필리어는 너무 내성적이고 유약해 보이고, 맥베스 부인은 남편 보다 더 탐욕스럽다가 죄의 가책으로 자살하고, 오셀로의 아내 데스데모나는 남편의 의심을 받아 목 졸려 죽고, 리어 왕의 두 딸은 왕국을 물려받을 욕심으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얘기하다가 결국 아버지를 배신하고 파국을 맞지요. 하지만 희극 속의 여인들은 선하고 현명하고, 용기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잖아요.


- 비극 속의 여성들은 모두 남성들로 인해 고통을 받는 거요. 거트루드는 남편이 죽자 자신을 향해 구애하는 시동생의 사랑을 받아들인 죄밖에 없어요. 남겨진 아들을 위해서라도 의지할 곳이 필요했으니까. 여인과 어머니로서의 사랑 때문에 희생되는 겁니다. 오필리어는 사랑하는 햄릿의 냉대뿐 아니라 그에 의해 아버지가 죽임을 당하는 것까지 보게 되었으니... 어리석은 오셀로의 손에 살해된 데스데모나는 말할 것도 없고. 아버지를 배신한 리어 왕의 두 딸도 결국 남자를 놓고 벌어진 갈등으로 몰락하고 말지. 그들은 그저 희생자예요. 하지만 희극은 해피엔딩을 보장해야 하는데 남자들이란 그다지 현명한 존재가 못 되거든. 그러니 행복한 결말을 위해서는 여인의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게 된 것이요. ‘한여름 밤의 꿈’(Mid-summer Night’s Dream)에 등장하는 여인 허미아(Hermia)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사랑을 위해 고난을 이겨내자고 연인인 라이샌더의 용기를 북돋우지요. ‘12야’(The Twelfth Night)에 나오는 남장 여인 비올라---남자로 변장한 그녀의 이름이 세자리오였던가---는 다른 여인을 사랑하는 공작의 사랑을 마침내 얻어내지 않았소?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멋진 판결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Shylock)을 굴복시킨 현명한 여인 포셔(Portia)가 등장하지요.


희극 속의 여인들을 얘기하는 셰익스피어의 얼굴에 열정과 생기가 돋는 것을 보고 나는 잠시 그의 성 정체성을 의심하는 평론가들을 떠올렸다. 그들의 주장은 사랑의 연가 소네트에 등장하는 사랑의 대상이 남성임을 연상하는 데서 비롯된다. 소네트에는 연모의 대상이 나의 사랑하는 소년’(my lovely boy) 혹은 아름다운 청년(the fair youth)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그와 사랑을 나누는 검은 머리 여인’(The Dark Lady)에 대한 질투와 혐오의 감정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Q. 하지만 ‘베니스의 상인’ 포셔에 대해서는 다른 평판도 있더군요. 판사를 가장해 법복을 입은 그녀의 판결은 무효라던가, 유대인에 대한 기독교도들의 편견에 대한 비판 같은 것 말입니다. 그래서 후대의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선생 같은 위대한 작가조차 인종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고 있음을 개탄하기도 합니다. 오셀로도 무어 출신의 흑인이고 말입니다.


- 그거 유감이요. 하지만 유대인이나 흑인들은 백인과는 다르지. 그들은 우둔하고, 탐욕스럽고, 색정적이기까지 하니까. 샤일록은 정의를 말하면서 백인들이 노예를 부리는 것은 그들을 돈 주고 샀기 때문이라고 떠들어대잖소. 그러니 돈을 갚지 못한 안토니오의 살 한 파운드를 요구하는 것은 곧 법의 정의라는 주장이요. 하지만 그것은 한 인간의 목숨을 돈으로 좌우할 수 있다는 야만적인 생각의 결과요. 포셔는 그에게 자비를 간청했어요. 기독교가 가르치는 사랑의 정신 말이죠. 그것을 거부한 샤일록은 심판받아 마땅한 것이고.


Q. 그렇다면 왜 선생께서는 샤일록의 대사를 그렇듯 설득력 있게 묘사한 거죠? 그가 울분을 토로하는 장면에서 독자나 관객들은 샤일록에게 동정심을 느끼게 되기도 하거든요.

     

유대인은 눈이 없소? 유대인은 손도, 오장육부도, 수족도 감각도, 감정도 격정도 없단 말이오? 기독교도들이 먹는 것과 같은 음식을 먹지 않고, 같은 무기에 다치지도 않으며, 같은 병에 걸리지도 않고, 같은 방법으로 치료되지도 않으며, 같은 겨울과 여름에 추워하고 더워하지도 않는단 말이오? 우리의 살은 찔러도 피가 나지 않고, 간질여도 웃지 않소? 독을 먹어도 죽지 않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복수하지 말아야 하는 거요?“


- 글쎄. 내가 샤일록의 마음속에 들어갈 때는 그의 편이 되는 모양이지. 그 순간은 그의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요.


Q. 그것이 존 키츠(John Keats)라는 시인이 말한 ‘부정적 능력’(negative capability)라는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 존 키츠? 그런 시인이 있소?


Q. 19세기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이에요. 어찌 보면 선생의 후예라 할 수 있죠. 그가 선생의 극작과 관련해 그런 말을 했었어요.


-그게 뭐요? 내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뜻이요?


Q. 선생께서는 가부장제를 주장하십니까 아니면 페미니스트이십니까? 인종 차별주의자이십니까 아니면 박애주의자이십니까? 선생의 작품에는 너무도 많은 주의와 주장들이 섞여 있어서 도무지 무엇이 선생의 의도인지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지요. 키츠라는 시인은 그것이 선생이 가진 감수성 즉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수용력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분명한 주장과 노선이 없다는 뜻처럼 비치기도 한답니다.


- 아! 그건 그럴 수밖에 없어요. 앞서서도 말했지만 나는 내가 생각해 낸 이야기를 쓴 적이 없소. 모두 이전에 나온 이야기들을 다시 쓴 거지.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소. 나는 인간의 모든 면을 그려보고 싶었다는 거요. 그들의 심성, 감정, 약점과 단점까지. 그래서 나의 작품 하나하나에서 각기 다른 인간의 속성을 발견하기를 바랐는지 모르지요.


Q. 얘기가 너무 무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가벼운 얘기 좀 해 볼까요? 선생의 소네트 말입니다. 사랑의 시들인데 선생께서는 사랑이 무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남녀 간의 사랑 말입니다. 갑자기 선생의 말이 떠올라서요. ‘미친 사람, 사랑에 빠진 사람, 시인은 모두 상상력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다.“라고 하셨죠?


-내가 그렇게 썼던가? 그 순간에는 분명 그렇게 느꼈을 거요.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시인이 되지. 그리고 열정에 사로 잡혀 분별을 잃고 마니까.


Q. 그렇다면 사랑은 변할 수 있는 것일까요? ‘한여름 밤의 꿈’에서는 요정의 왕 오베론이 만든 팬지꽃 마법의 약을 잠든 사람의 눈에 바르면 잠에서 깨어나 처음 본 대상과 사랑에 빠지잖아요. 그렇게 사랑은 옮겨갈 수 있는 건가요?


- 오베론이 있다면 그럴 수 있겠지. 선생의 세상에도 분명 오베론이 있을 거요. 사랑을 변하게 만들 수 있는 무언가가 말이요. 생각해 보시요. 그것이 무엇일지.


Q. 하지만 소네트에서는 사랑의 불변함을 토로하셨잖습니까. ‘사랑은 폭풍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고정된 표식.../ 사랑은 시간의 노리개가 아니다/ 그녀의 장밋빛 입술과 뺨이 시간의 낫이 휘두르는 속에 있더라도/ 사랑은 잠시의 시간 속에서 변하지 않고/ 죽음의 순간까지 버텨내는 것...’ 기억하시죠? 심지어 선생께서는 그것이 틀린 것이라면 다시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더 이상 글도 쓰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러길 바랐지요. 내가 사는 세상은 모든 것이 변하고 있소. 한 때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었는데 이제는 그저 태양의 주변을 돌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지. 상상 속으로만 존재했던 바다 건너의 세계가 이젠 눈으로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대상이 되었소. 모든 것이 바뀌고 있는 세상에서 한 가지 변치 않을 무언가가 있었으면 했어요. 그리고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고 싶었소. 언젠가 변한다 하더라도 당장은 사랑하는 두 마음이 하나로 합쳐지길 바랐지. 그래서 나의 희극에서는 결혼이 해피엔딩인 거요.


Q. 셰익스피어 선생님. 4월의 스무세 번째 날에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 그렇게 되는 거요? 나의 운명을 내가 어찌 알겠소. 하지만 미래에서 온 분이시니 그날을 알고 계시겠지. 그런데 그날은 내가 태어난 날 아닙니까? 허허 이 세상에 온 날 세상을 떠난다... 그거 참 흥미롭군. 아직 묘비에 적을 글도 써놓지 못했는데... 이곳 교회당에 묻히게 되는 건가? 그래도 살아있는 동안 선생 같은 후대의 사람을 만나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서 즐거웠소.


Q. 선생께서는 오랜 세월 동안 기억되실 겁니다. 호메로스나 단테보다도 위대한 만대의 작가로서 말입니다. 그리고 묘비에는 이렇게 새겨질 겁니다.


“ 벗들이여 부탁하네. 제발 참아주게.

여기 묻힌 것은, 티끌도 파헤치지 말아 주게.   

무덤의 돌 하나 건드리지 않는 자에게 축복이,

내 뼈를 옮기려는 자에게 저주 있으리.“


셰익스피어와의 만남은 마치 꿈처럼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의 유해가 보관되어 있는 성삼위 교회의 마당에서 몇 년 전 영국의 한 대학 연구팀이 레이저 투시로 그의 관 속을 들여다보았다는 보도를 떠올렸다. 관 속의 그의 유골 중 머리 부분이 사라졌다는 괴이한 내용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하지만 이미 사라진 그에게 물어야 소용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가 후손인 내게 물을 것이 뻔하다. 그의 묘비에 글을 새긴 누군가는 그 대답을 알고 있을까. 하지만 셰익스피어 선생이 묘비에 새기고 싶었던 글귀는 햄릿의 독백 속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죽는 건 잠드는 것. 그뿐이겠지./ 잠들어 마음의 괴로움과 육신이 겪을 수만 가지 고통을 끝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바라마지 않는 최고의 순간이 아니겠어.”  


* 위의 글은 계간 '미래시학'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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