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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Jul 28. 2024

천재를 찾아서...

교육에 관한 편견

교육을 통해 우리는 지식의 전달을 이루어낸다. 물론 지식만은 아니다. 삶의 규범, 도덕,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키워내는 것도 교육의 기능이다. 또한 집단 내에서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하지만 교육을 받은 사람이 이 모든 미덕을 다 몸에 지닐 수는 없는 모양이다. 학식이 높은 사람이 더 위선적이고 이기적인 경우를 우리는 허다하게 목도하고 경험한다. 지식 기반 교육, 전문가의 육성이라는 현대의 교육 가치가 불러온 폐해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학 교육에서 인문학의 배제이다. 이미 다수의 대학에서 인문대학이 폐지되고 보다 실용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지식의 영역들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과거에는 직업교육의 영역이던 분야들 즉 완전한 지식의 체계를 갖추지 못한 것들도 취업이라는 현실을 고려해 대학의 학과로 들어서고 있다. 이제 문과대학의 졸업생들에게 취업의 기회는 극적일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래서 모두 생계와 출세에 도움이 되는 학과에만 관심을 쏟는다. 국가의 최고 인재들이 의대와 법대만을 추구하는 것도 그 일례이다. 그렇듯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육은 인격보다는 지식, 교양보다는 실용성을 앞세우고 있고, 교육의 이론들도 그럴듯한 명분으로 이를 당연한 것으로 포장한다. 온라인 교육의 확산으로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는 고대의 유산으로 남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교육은 타락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식자(識者)에 관한 흥미로운 구분이 있다. 첫째는 ‘교육받은 사람들.’ 이들은 도서관과 같다고 한다. 그들의 마음에는 도서관의 선반에 쌓여있는 지식과 사실과 격언들이 가득하다. 둘째는 ‘지성적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컴퓨터와 같다. 수많은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고, 갖가지 생각들을 논리적으로 연결한다. 전자가 ‘know-how’를 지니고 있다면 후자는 이른바 ‘know-where’를 아는 사람이다. 일차적 지식을 실용과 응용으로 발전시킨 단계일 것이다. 그러나 이 둘로써 미래의 세계는 올바르게 전개될 수 있을까? 유식함과 영민함만으로 복잡 미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현대의 교육에는 인간이 없다. 그저 지식만을 추구하고 가장 효과적인 성공의 방식만을 가공해 낼 뿐인 것이다.


마지막의 유형은 ‘천재들’이다. ‘천재는 마술의 정원과도 같다. 사실(事實)들은 더 깊은 진실이 되고, 논리가 꽃피어 직관(直觀)이 되며 지식은 스스로 생명을 갖는다. 교육은 마음을 지식으로 채우고, 지성은 그것을 가공하여 확장시키지만 천재성은 마음의 불을 지핀다. 열정과 경이로움의 자양분을 얻어 속으로부터 봉오리를 틔우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라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목표는 ‘천재’의 육성이다. 과연 우리는 천재가 될 수 있을까? 진실을 깨닫고 올바른 논리로 자신의 지식에 생명을 불어넣는 멋진 인격체로 발전할 수 있을까? 지식과 지성의 측면에서 인간은 이미 스스로 만들어낸 AI를 당할 수 없다. 물론 세밀한 면에서는 아직도 AI가 인간을 대신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래서 더욱 공포감을 느낀다. 오직 지식과 지성으로 판단하는 현대의 프랑켄슈타인들의 ‘딥러닝’이 가져올 현실이 그다지 멀지 않았다는 두려움이다.  


평범한 우리가 천재가 될 수 있을까? 얕은 지식에 몰두하고 간신히 지성의 끄트머리를 붙들고 있는 우리가 열정과 경이의 세계를 찾아낼 수 있을까? 무수한 미사여구 속에서 우리는 가장 간단한 한 가지 사실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사람을 만드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자신의 능력으로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이들을 만들어야 한다. 인류는 그러한 의식 속에서 발전해 왔고, 오늘의 문명을 이루었다. 한 번의 클릭으로 피라미드를 만들고 우주 전체를 여행하다가 한 순간 전원 버튼을 눌러 현실로 돌아오는 군중들이 유토피아를 발견하고 그곳의 미덕을 전하고자 했던 ‘유토피아’의 주인공 ‘라파엘 히슬로다에우스’가 될 수 있을까?


현대의 천재는 아인슈타인에게 있지 않다. 천재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품고, 열정과 경외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교육받은 사람은 가르쳐서 만들고, 지성적인 사람과는 더불어 논의할 수 있다. 하지만 천재 앞에서는 경외심에 빠질 수밖에 없다. 마치 새로운 무언가가 세상과 상호작용을 하며 이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이며 그래서 인간은 놀라운 세상을 만들어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AI로서는 이룰 수 없는 세상, 사람과 사람이 한 데 얽혀 울고 웃을 수 있는, 서로의 체온을 느껴 올바른 직관과 삶의 의미를 알게 되는 천재들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돈과 출세의 노예가 된 인간 군상을 해방시켜야 한다. 자신의 내면을 깊게 성찰하고 자신의 잠재력과 의지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찾고자 하는 진정한 인간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한 가르침이 없다면 우리는 교육으로 위장한 무지(無知), 지성의 가면을 쓴 ‘위선’의 함정에 빠져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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