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마침내 재선 레이스에서 하차했다. 그의 건강에 대한 의심은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최근 공화당의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TV 토론에서도 노령에서 오는 몇 가지 문제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유에서 바이든의 대선 경쟁력을 우려한 민주당조차 그의 후보 사퇴를 요구해 왔던 것이다.
바이든 만이 노령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인 트럼프 역시 81세인 바이든 보다 두 살 더 적은 79세이다. 사실 미국의 상원의원들의 평균 연령은 65세 이상이다. ‘초고령 국회’이니 미국의 정치는 이른바 ‘노인 정치’(gerontocracy)라 불릴 만하다.
미국대선에서 나이 문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4년 선거에서 재선에 나선 공화당의 레이건 대통령은 민주당 후보였던 먼데일이 당시 73세의 레이건에게 대통령이 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지 않으냐고 비판하자 이렇게 응수했다. “나는 이번 선거에서 나이 문제는 거론하지 않을 겁니다. 상대 후보가 어리고 미숙한 것을 정치에 이용할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 정치사에서도 초대대통령 이승만은 73세의 나이에 대통령이 되었고, 4.19로 하야할 당시의 나이는 85세였다. 김대중 대통령도 75세에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물론 오늘날 노령의 기준은 많이 바뀌었지만 그들이 취임하던 당시의 연배로는 분명 노령의 대통령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인 해리스 폴(Harris Poll)은 최근 내놓은 ‘새로운 시대의 노인‘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 80세‘를 ’ 노인‘의 평균적 연령으로 제시하였다. 우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개인별 차이는 있겠지만 80대에도 건강을 유지하며 활발히 활동하는 시니어들이 점점 늘어가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노령의 정치가를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혹은 지자체의 장으로 선출하는 것은 유권자들의 몫이다. 중요한 것은 유권자들이 그들의 대표를 선출하는 선택의 폭이다. 국제연합(UN)의 기준에 따르면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이면 고령 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로 구분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평균수명의 증가, 출산율 저하로 인해 고령화 속도가 매우 빨라 2000년에 고령자 인구 비율이 7.2%에 이른 이후 2018년에는 14.3%로 고령 사회로 진입했고 2026년에는 20.8%로 초고령 사회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 인해 우리의 정치도 점차 고령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노동력 부족, 생산성 저하 등으로 인한 경제 성장의 둔화, 노인 부양비 상승, 의료 및 복지비용 증가 등 경제적 부담 외에도 정치의 노령화가 우리 정치권에 새로운 문제로 등장할 것이다. 이는 유권자들의 선택을 크게 제약할 우려를 낳기도 한다.
노령의 정치인이 공직을 맡는다 해도 잘못된 것은 없다. 유권자들이 노회한 정치가가 국가를 이끌어가길 원한다면 선거의 결과가 그리 되는 것은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집권한 정치가의 연령이 평균적 노동인구의 연령보다 훨씬 높음으로써 젊은 세대들이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더구나 대통령의 건강은 국가 기밀에 속해 국민들은 대통령의 육체적, 정신적 상태에 대해 아무런 정보를 갖지 못한다. 가끔 미국의 의회에서 건망증을 비롯한 인지능력 저하에도 불구하고 의원직을 90대에까지 유지했던 의원들이 있었던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하물며 핵단추 위에 손을 얹고 있는 대통령이겠는가!
최근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대통령이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가장 대중들과의 접촉이 적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2024년 1월 현재 바이든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에 비해 기자회견의 수가 현격히 적었다. 트럼프가 300회, 오바마가 422 회의 회견을 가졌던 반면 바이든은 불과 86회에 그쳤다. 게다가 2년 연속 미국 최대의 스포츠 행사인 슈퍼볼에서의 인터뷰마저 거절했다. 이는 다수의 국민들 앞에서 비공식적으로 대통령이 이야기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것에 다름없었다.
사실 현대에 이르러 백악관은 대중과의 직접 접촉보다는 온라인 매체나 잘 연출된 영상 등으로 국민들에게 다가가는 전략을 구사했다. 하지만 바이든의 연령문제라든가 공공의 무대에서 사라지는 상황은 대중들의 신뢰감을 상실하는 요인이 되어 왔다. 국민들은 그가 숨어있다고, 심지어는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트럼프라는 독특한 후보가 갖는 위험성, 외교와 경제 분야에 있어서의 성취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대통령은 대중의 마음에 의혹을 불러 일으켰고 마침내 재선의 길에서 탈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의 정치사에서도 노령의 대통령은 있었고, 초고령사회로 접어드는 현재의 추세에서 대통령의 나이가 향후 한국 정치의 화두가 될지도 모른다. 나이 드는 것이 공직 취임에 제약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고령의 문제가 애써 도외시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나이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능력이 공직을 수행하기 적절치 않다고 판단할 때 자신의 직무를 과감히 포기하는 것, 그것이 현대 정치가의 덕목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