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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Jun 26. 2024

정치, ‘타자화’, 혐오, 도덕적 악마화

최근 뉴욕 타임스 칼럼에 흥미로운 제목의 글이 게재되었다. 그 제목은 이런 것이었다. “정치학자들은 왜 우리가 서로를 이토록 미워하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혐오와 극렬한 증오의 심리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오늘의 정치학자들이라면 당연히 고심해야 할 명제로 보인다. 뉴욕 타임스의 글에는 다섯 명의 정치학 교수들이 공저로 내놓은 ‘당파적 혐오감과 민주적 규범의 침식(侵蝕)’ (Partisan Antipathy and the Erosion of Democratic Norms)이라는 논문에 대한 분석이 실려 있었다.    


이들 학자들은 ‘타자화’(Othering)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혐오와 반감이 강할수록 게리맨더링, 자신들에게 불리한 장소에 설치된 투표소 숫자의 축소, 상대측에 호의적인 판사가 내린 판결 결과의 부정, 폭력과 위협 등 반민주적인 전략의 사용 위험성이 커진다고 분석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타자화’를 측정하는 다음의 아홉 가지의 질문을 제시하고 있는 점이다. 응답자들은 질문에 대해 1에서 6까지의 숫자로 의사를 표현하게 되어있는데 숫자가 클수록 상대에 대한 적대감이 큼을 나타낸다. 


(1) 그들과 내가 다른 행성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2) 나는 절대적으로 그들과 다르다. 

(3) 그들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4) 그들에 대한 나의 감정은 압도적으로 부정적이다. 

(5) 그들에 대한 격렬한 증오심을 가지고 있다. 

(6) 그들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부정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7) 그들은 전적으로 비도덕적이다. 

(8) 그들은 모든 점에서 사악하다. 

(9) 그들에게서는 조금의 성실성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설문에 대한 한국 유권자들의 응답은 차치하고라도 오늘날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도 이 설문에 드러나는 타자화, 혐오감, 상대의 도덕성에 대한 비난 등은 결코 예외가 아님을 느끼게 된다. 


나와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을 타자화하고, 그들을 비도덕적인 존재로 혐오하는 행위는 선과 악에 대한 상대적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될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자신의 정파적 정체성이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다. 심리학에서도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에 대해 무관용과 경직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자신이 선호하는 것을 도덕적으로 옳다고 믿는데서 기인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적인 결과라 하더라도 자신의 선호와 다를 경우 단호히 거부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타임스는 또 다른 학자(스탠퍼드 대학 샨토 이옌가 교수)의 2012년도 논문을 소개하면서 당파적 적대감의 가장 큰 위험은 맹목적인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지도자에 대해 무비판적일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 비윤리적, 불법적 행위에 연루된 지도자들에 대해 관용적이라는 것이다. 최근의 조사에서는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인 행위에 연루된 공직 후보자에게 찬성투표를 던지겠느냐’는 설문을 던지고 있는데 이러한 행위들에는 중범죄, 외국 정부로부터의 뇌물 수수, 비밀 문건의 처리 소홀, 성희롱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미국 국내 정치와 관련된 것이므로 이 질문들은 현재 강력한 미국의 대선후보들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이지만 그에 대한 응답의 결과는 이번 한국의 총선 결과와 관련해 흥미롭다. 결과는 미국의 공화당 지지자들이 비리에 대해 더 관용적이었는데 성희롱 혐의를 받고 있는 후보자에게는 62 퍼센트가 여전히 우호적이었고, 중범죄를 저지르거나 국가 안보를 해친 후보에게도 40 퍼센트가 찬성 표심을 드러내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당파적 적대감이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보이고 있는 증오적인 상호 비방이나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일방적 정치 행태는 당파적 혐오나 반대자에 대한 타자화가 극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당이나 지지자 모두의 각성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정치에 있어 상호 존중이나 유연성, 타협의 태도는 요원할 것인가? 그러한 정치적 상호 악마화의 궁극적인 종착점은 또 어디일까? 걱정은 우리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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