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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ug 21. 2024

기다린다는 것

기다림. 우리말은 표음문자이니 글자 자체에 어떤 의미가 담기지는 않는다. 그런데 우리가 늘 쓰던 말을 글자로 옮겨놓고 보면 한편으로는 조금 생소하면서도 다른 편으로는 왠지 그 뜻과 가장 어울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 글자는 우리의 삶과 가장 가까운 그림 같기도 하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그래서 목을 쭉 빼고 어딘가를 애타게 바라보는 것 같지 않은가. 


기다리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때론 설렘과 기대 속에서, 어떤 때는 불안과 긴장 속에서 또 다른 때에는 그저 넋 놓고 무언가를 기다린다. 오늘이 그랬다. 그저 맘속으로 막연히 무언가를 기다렸다. 오지 않을 것을 뻔히 아는 데도 혹시나 하는 마음. 비록 힘들어도 그런 기다림이 나는 좋다. 오늘 안 오면 내일도 있으니까.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라는 아일랜드 출신 극작가의 작품에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라는 희곡이 있다. 무대 위에 등장하는 두 부랑아는 누군가를 끝없이 기다린다. 그의 이름은 ‘고도’. 하지만 그는 오늘도 오지 않는다. 극은 한 소년이 등장해 두 사람을 향해 “고도 씨가 오늘은 오지 못하십니다. “라고 말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런 것이 있지 않은가? 오지 않을 무언가에 대한 기다림. 그것은 아픔일 수도 슬픔일 수도 그리움일 수도 있고 기대와 희망과 심지어 행복일 수도 있다. 역시 아일랜드 출신이었던 시인 예이츠는 인생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을 영원히 준비하는 것.”?? 너무 허망한가? 인생이 그렇게 무상한가? 막연한 기다림은 참을 수 있겠지. 어차피 기다림일 뿐이니까. 내일도 기다리면 되니까. 하지만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단정을 지어놓으니 기다리는 나, 준비하는 나는 너무 어리석어 보인다. 


하루하루 무언가를 쓰는 일도 기다림과 다르지 않다.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알지만 마음속 깊이 기다림을 품고 무언가를 쓴다. 쓰는 것은 생각하는 일이고, 행동하는 일이고, 고통스러우면서도 환희에 넘치는 일이다. 기다림과 흡사하지 않은가? 무엇을 기다리는가? 무엇을 원하는가? 그것이 그저 ‘고도’이어도 좋다. 한 자 한 자 적어가면서 우리는 기다린다. 삶의 긴 여정 속에서 휴식처럼, 간절한 바람처럼, 아픈 발바닥을 문지르며 기다린다. 


조병화 시인도 무언가를 기다린 모양이다. ‘기다림이 없는 인생은 지루할 거다/ 그 기다림이 너무나 먼 인생은/ 또한 지루할 거다/ 그 기다림이 오지 않는 인생은/ 더욱더 지루할 거다’ 하지만 기다림은 역설적으로 지루하지 않다. 지루한 일을 어찌 평생 계속할 것인가. 기다림은 흥분이다. 기다림은 그리움이다. 기다림은 즐거움이고 즐길만한 외로움이다. 기다림은 또한 변화하는 것이다. 기다림을 통해 우리는 성장한다. 인내를 배우고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 물론 사람마다 그 깨달음은 각자 다르겠지만. 


기다림에 대한 짧은 상념 끝에 맨 마지막에 도달한 생각은 이랬다 : 기다림은 ‘무엇을’이라는 목적어가 아닌 ‘왜’라는 의문사가 더 어울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왜 기다리는가? 시간은 두 종류만이 있다고 했던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보게 되는 시간과 그것을 기다려온 시간’ 과연 그 기다림의 끝은 올 것인가?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기다림의 내용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왜’ 기다리는 지를 혹시 알게 된다면 말이다. 그것 역시 ‘무엇’보다 더 희미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한 번쯤 생각해 봐야겠지. 하지만 우연히 알게 되더라도 나의 ‘왜’는 결코 말할 수 없다. 나만의 비밀이니까. 


‘숲의 한 모퉁이에서 누군가 오기를 기다릴 수만은 없다. 때론 그 누군가를 찾아 나서야 한다.’ 그래. 그래야 ‘왜’ 기다리는 지를 조금은 알게 되겠지. 방구석에 틀어박혀 생각에만 골몰하는 것은 기다림이 아닐지 몰라. 일어나 누군가, 무언가를 찾아 나서야지. 그러면 어찌어찌 알게 될지도... ‘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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